새로운 에너지 전환의 시작
2019년 정부가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은 우리 사회가 새로운 에너지 전환의 시대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수소는 우주 물질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풍부하며, 연소 시 물만 남기는 ‘궁극의 청정에너지’로 불린다. 하지만 수소는 스스로 에너지원이라기보다는 ‘에너지를 저장하고 옮기는 매개체(Energy Carrier)’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수소를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지가 진정한 친환경 여부를 결정한다.
전 세계 400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RE100 캠페인(‘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 The Climate Group·CDP 주관)은 기술기준에서 “수소는 재생에너지를 이용하여 만들어질 때만 재생에너지로 인정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수소경제의 핵심은 단순히 ‘만들 수 있는가’를 넘어 ‘어떻게 깨끗하게 만들 것인가’에 있다. 탄소경제가 자원개발과 확보 중심이었다면, 수소경제는 기술력과 효율이 핵심 경쟁력인 것이다.
세계의 경쟁, 한국의 도전
2050년 전 세계 수소산업은 연 2.5조 달러 규모로 성장하여 3,0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호주산 갈탄 등 해외 미이용 에너지를 활용한 수소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독일과 미국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호주는 수소의 수출 자원화를 추진하며, 중국은 수소차 중심의 기술 패권 경쟁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수소차·연료전지 등 활용 기술에서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생산·저장·운송 분야는 여전히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수소는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하나는 화학공정에서 부산물로 얻는 부생수소이고, 다른 하나는 물을 전기분해하여 생산하는 수전해(그린수소) 방식이다. 부생수소 중심의 공급 구조는 다른 공정에 의존하는 특성상 원하는 만큼 생산하기 어렵고, 규모의 경제도 역시 달성하기 쉽지 않다.
수전해(전기분해) 기반의 그린수소는 전력단가와 효율 문제로 아직까지 경제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 청정수소 기술혁신은 바로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비전에서 현실로 – 제도화로 맞이한 전환점
2021년 수립된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은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에 근거한 첫 법정 계획이다.
이 계획은 수소를 전력계통 안정화의 한 축으로 제시하며, 전력-수소(P2G) 전환 구조를 통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방안을 담았다.
정부는 2030년 수소가격 3,500원/kg, 2050년 2,500원/kg으로 제시하며 기술혁신을 촉진했다. 또한 수소환원 제철 등 산업 탈탄소 기술을 포함해 ‘비전의 시대’에서 ‘기술의 시대’로 나아갈 기반을 마련했다.
한전의 기술개발, 현실적 수소경제를 향해
한전은 ‘현실적인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기술개발을 이어왔다. 전력연구원을 중심으로 그린수소 생산, 청록수소 생산, 수소에너지 트레이딩 모델 등 다양한 연구를 추진하며, 폭넓은 기술 포트폴리오를 갖추었다.
한편 전력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도 수소경제 구현에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능형 발전소 운영기술(Intelligent Digital Power Plant, IDPP)이다. IDPP는 플랜트의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최적 운전이 되도록 제어하는 시스템으로, 효율과 안전이 최우선인 수소생산 과정에서 경제성과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핵심기술이다.
시장으로 옮겨간 수소 – 혼소발전과 CHPS
2024년 정부는 「청정수소발전의무화(Clean Hydrogen Portfolio Standard, CHPS)」 제도를 시행했다. 화력발전 연료에 수소(또는 암모니아)를 혼합 연소하거나 수소(또는 암모니아)만으로 발전하도록 하는 것으로, 이때 사용하는 수소(또는 암모니아)는 청정수소 인증을 받은 것이어야 한다. CHPS 제도의 도입으로 한전을 비롯한 전기사업자는 청정수소로 생산된 전기를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이 제도는 기술 중심의 수소경제를 실제 시장으로 옮기려는 노력의 일환이다(현재는 제도 보완 중).
농업부산물에서 수소로 – 바이오수소2.0
한전과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이하 KENTECH)이 함께 추진 중인 ‘바이오수소2.0’은 농업부산물(왕겨, 볏짚 등)을 활용한 ‘건식 혐기소화 기술(Anaerobic Digestion of Organic Solid, ADOS)’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KENTECH의 이형술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국내 원천기술로, 고체 유기물을 미생물로 분해해 메탄(CH4)을 생성하고, 이를 다시 스팀 개질(Steam Methane Reforming, SMR) 방식으로 수소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기존의 하수슬러지나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한 방식보다 에너지밀도가 높고 원료공급이 안정적이며, 무엇보다 악취나 폐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지역 농업부산물을 대량으로 활용할 수 있어 ‘폐기물 처리형’에서 ‘지역 생산형’ 청정수소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한전은 여기에 IDPP 기술을 접목했다. ADOS와 IDPP의 결합으로 생산효율과 청정인증 신뢰도를 높인 지능형 수소플랜트 모델이 완성되었다.
영암 수소도시 – 기술과 지역의 결합
이 기술은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9월, 국토교통부의 ‘수소도시 조성사업’에 영암군이 최종 선정되었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지역개발을 넘어, 청정바이오수소를 매개로 한 지역 순환경제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전의 ‘청정바이오수소 프로젝트(바이오수소2.0)’가 자리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전라남도와 영암군이 주관하고, 한전·KENTECH·MC에너지가 참여하는 산학관 협력체가 구성되었다. 지역 농민은 원료를 공급하고, 민간기업은 설비투자와 운영을 맡으며, 한전과 KENTECH은 기술을 지원한다. 이렇게 생산된 수소는 지역 교통, 발전, 관광 인프라에 활용될 예정이다. 한전이 오랜 연구개발과 기술사업화를 통해 쌓아온 역량이 지역, 대학, 민간기업의 힘과 어우러져 새로운 수소경제의 사업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영암 삼포지구의 Velocity River Park는 F1 경기장, 수상레저시설, 골프장, 호텔이 함께 있는 복합 공간으로, 이곳이 청정수소 생태계의 거점으로 조성된다.
수소도시란?
수소경제가 지속가능하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기술이 실제로 검증되고, 사람과 도시가 그 변화를 체감해야 한다. 2021년 기본계획에서 제시된 수소도시·클러스터·규제특구 등이 바로 그런 공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중 국토교통부 주관의 수소도시는 생활·교통·발전 등 도시의 모든 영역에서 수소를 직접 활용하는 실증 무대로, 국민이 수소경제를 ‘눈으로 보는’ 대표 모델이다. 수소도시는 2020년 시범도시 조성 이후 2023년부터 현재까지 12개 도시가 조성 중이다.
영암군 수소도시 조성도
기술이 지역을 살리고, 지역이 기술을 키운다
영암 수소도시 조성사업(2026~2028년)은 총 350억 원 규모로 추진된다. 국비·지방비가 각 115억 원, 민간 자본이 120억 원 투입되며, 청정수소 생산시설, 저장·운송 인프라, 수소모빌리티 구축이 포함된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 농가 소득 증대 및 부산물 처리비 절감, 지역 순환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의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무엇보다 이번 사업은 “기술이 지역을 살리고, 지역이 기술을 키우는” 지속가능한 상생 모델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한전의 역할 – 기술에서 사업으로
한전은 이번 사업에서 단순 참여자가 아니라 산학연·지자체를 잇는 ‘기술사업화의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기술기획처는 사업추진을 위해 전담TF(파로스TF, 파로스는 등대라는 뜻)를 별도로 구성했다.
파로스TF는 KENTECH의 연구역량, 민간기업의 실행력, 지자체의 정책적 의지를 하나로 묶어 ‘패키지형 기술사업화 모델’을 완성했다.
이를 통해 한전은 단순히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R&D가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모델을 만들어냈고 이번 사업을 통해 그 실현 가능성을 증명했다.
특히 CHPS 제도에 대비해 청정수소의 생산단가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맞출 수 있는 기술적 근거를 제시한 점은 국가 수소시장 안정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청정수소가 여는 미래
청정바이오수소 프로젝트는 한전이 지향하는 ‘미래형 에너지 기업’ 비전의 첫 단추이자,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과 함께 성장한다”라는 한전 기술혁신본부의 방향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전력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생산·저장·활용이 연결된 통합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한전은 바이오수소를 시작으로, 재생에너지-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암모니아 혼소 발전, CCUS(탄소포집·활용·저장)기술, 청록수소 등과의 연계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청정수소 생산·활용·인증·발전’으로 이어지는 전 주기 가치사슬을 구축하고, 나아가 국가 청정수소 사업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의 목적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며, 지역과 함께할 때 진정한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청정바이오수소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첫걸음이다. 이제 한전은 전기를 파는 회사를 넘어, 미래 에너지를 설계하는 회사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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