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OAD

울림의 땅,
해남

어쩜 이렇게 징소리 같을까.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크고 깊게 울린다. 대흥사와 미황사에 깃든 시간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두텁고, 하늘 끝 도솔암이 껴안은 전망은 내다보는 잠깐의 시선에도 담기는 풍경이 끝없다. 땅끝과 명량, 그 극적인 공간까지 해남은 품었다. 그래서일까. 일상이 흘러 어디에 닿는지 가늠하기 힘들 때, 내 마음의 소리가 퍼져 닿는 지점을 짐작해보기 좋았다.

  • Text·Photo 이시목(여행작가)
  •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 사이
    ‘북위 34도 17분 32초, 섬을 제외하고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곳.’ 해남 땅끝마을 안내판에 적힌 글귀다. 실제로 땅끝에 서면 좌우·앞 모두 ‘더는 나아갈 수 없는’ 바다다. 돌아서지 않으면 어디로도 갈 길 없는 이 땅의 끄트머리, 그 모서리가 바로 땅끝이다. 다른 한편에는 ‘땅의 시작, 희망의 땅끝’이란 표지석도 있다. 바다를 등지고 몸을 돌리는 순간 땅끝은 이 땅 ‘삼천리 금수강산’의 시작점이 된다. ‘나만 뒤돌아서면’ 도착점이 순식간에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땅끝은 우리나라 ‘첫 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마치 한 해의 끝인 12월 31일 24시 00분 00초가, 한 해의 시작인 1월 1일 00시 00분 00초와 같듯, ‘끝’과 ‘시작’이 같다. 그 때문일까. 이 땅에 서면 매번 고은 시인의 시 <땅끝>이 떠오른다. ‘땅끝에/왔습니다./살아온 날들도/함께 왔습니다./저녁/파도 소리에/동백꽃 집니다.’ 어쩌면 땅끝은 누군가 온 생을 끌고 와 마침내 멈춰 서 조용히 뒤돌아서는 자리가 아닐지.
    땅끝전망대에서 바라본 다도해 일출. 흑일도, 보길도 같은 섬들이 붉은빛 아래에서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 목탁 은근하게 울려 잠을 깨우는

    해남에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하늘, 그 끝도 있다. 하늘로 뾰족뾰족 솟구친 달마산 절벽 끝에 도솔암이 둥지를 틀고 앉았다. 아슬아슬한 암봉을 축대로 쌓아 작은 전각을 세우고, 그 앞으로 손바닥만 한 마당을 들여 암자를 지었다. ‘하늘 끝에서 만나는 다락방’이란 애칭이 썩 잘 어울리는 풍치다. 암자는 드는 길도 황홀하다. 달마산 도솔봉 턱밑까지 차로 오른 후, 능선을 타고 800m(20여 분) 정도 걸으면 도솔암에 닿는다. 걷는 내내 오른쪽으로는 완도와 남해가, 왼쪽으로는 진도와 서해가 짙푸르게 따른다. 크고 너르게 내다뵈는 들녘 또한 온갖 푸성귀로 푸릇하다. 크게 힘들이지 않게 올라 마주하기엔 송구하도록 고운 전망이다. 거기, 하늘 끝 작은 암자에 섰다. 사위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하고, 스님은 재촉하는 기색이 없다. 평안함이 온몸 가득 차오르는 순간이다.
    도솔암이 하늘 끝에서 넓게 퍼지는 징소리라면, 대흥사와 미황사 두 절집은 오랜 시간의 힘으로 소리를 밀어 올린다. 가람 배치가 독특한 대흥사는 추사 김정희 등이 썼다는 현판들과 함께, 천불전의 꽃문살과 꽃담이 눈길을 끄는 곳이다.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원숭이 문양을 새겨 넣은 부도와 대웅보전 천장 상부에 있는 ‘서수(상서로운 징조로 나타나는 짐승)를 탄 동자’ 조각도 볼 수 있으리라. 달마산에 기대앉은 미황사도 그 울림이 만만찮다. 바람에 말갛게 씻긴 듯 화장기 없는 대웅전에 서면 마음 잔잔해진다. 조심스럽게 만지는 대웅전 기둥에서도 천년 세월의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애써 나를 보듬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하룻밤을 머물러도 좋을 일. 밤새 미황사 뒤란의 동백숲에서는 바람이 불고 새벽이면 목탁 은근하게 울려 잠을 깨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꽉 차는 새벽. 무엇이든 시작해도 좋을 시간이다.

    아슬아슬한 암봉에 제비집처럼 올라앉은 도솔암. ‘하늘 끝에서 만나는 다락방’ 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 포기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지요
    해남의 서쪽 옆구리로는 울돌목이 지난다. 울돌목은 해남과 진도 사이를 흐르는 명량해협의 순우리말이다. ‘소리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이란 뜻이다. 교과서에는 1597년 이순신 장군이 군선 13척으로 133척의 왜선과 맞서 싸워 이긴 명량대첩의 현장이라고 쓰여 있다. 빠르게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세찬 물소리. 그 소리는 흡사 당시 해남을 흔들었을 승리의 함성 같기도 하고,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라는 그날의 각오처럼 들리기도 한다. 마치 징의 가장자리를 세차게 때린 듯 격렬하고 뜨거워, 420여 년 전의 치열하고 긴장감 넘치는 시간을 되짚어 보게 한다. 이 땅의 모든 울림을 끌어와 한순간에 쏟아내는 파동처럼.
    2025년 한 해, 많이 힘겨워 지금껏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곳 울돌목을 찾아 ‘힘내자’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져봐도 좋겠다. 스스로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시간이 될 테다.
    하늘이 푸르게 밝아지는 시간 즈음의 미황사. 새벽예불이 시작될 시간이다.
    해남과 진도 사이를 흐르는 울돌목. 이곳은 1597년 이순신 장군이 군선 13척으로 133척의 왜선과 맞서 싸워 이긴 명랑대첩의 현장이다.
  • 황토의 달콤한 선물,
    고구마
    고구마는 우리에게 익숙한 식재료다. 달콤하고 폭신하고 부드러운 맛 덕분에 간식이자 반찬, 디저트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특히 찬바람 도는 겨울이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고구마 하나가 마음과 배를 동시에 따뜻하게 했다. ‘찐고구마’는 폭신한 속살이 좋아서, ‘군고구마’는 사르르 녹아드는 단맛이 매력적이어서, ‘맛탕’은 ‘겉바속촉’의 묘미에 끈적한 단맛까지 더해져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다. 상상해 보라. 열을 가하면 고구마 속의 전분과 당분(맥아당)이 젤라틴화되면서 표면에 시럽처럼 맛있게 달라붙는 장면을. 그 모습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자연이 준 이 정직한 단맛이 이름을 결정했을까. 고구마의 옛 이름은 한자로 ‘감저(甘藷)’였다. 글자 그대로 ‘달콤한 뿌리’란 뜻이다. 오늘날 ‘감자’ 와 발음이 닮았지만, ‘단맛’에 방점이 찍히는 건 분명하다.
    고구마는 맛뿐 아니라 영양에서도 으뜸이다. 식이섬유와 비타민,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소화를 돕고 혈당을 안정시키며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찬 기운이 도는 계절엔 몸을 따뜻하게 데워 활력을 더해주는 역할도 하고, 칼로리가 낮고 포만감이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유용하다. 무엇보다 고구마는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귀띔이다. 껍질에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 안토시아닌이, 껍질 바로 아래 노란 속살에는 눈 건강에 필요한 베타카로틴이 듬뿍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맛도 좋고 영양도 만점인 고구마가 자라는 해남 땅은 황토가 지천인 곳이다.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는 고구마의 단맛을 높이고 속살을 한층 부드럽게 만든다. 여기에 서남해안에서 불어오는 짭짤한 해풍까지 보태지니 풍미도 한층 살아난다. 통통하게 여문 뿌리 안에 우리 몸을 이롭게 하는 영양과 맛이 오롯이 저장된 셈.
    올겨울엔 늘 먹던 군고구마 대신, 고구마의 달콤함에 치즈의 고소함을 더한 고구마그라탕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해남 땅이 길러낸 달큰한 고구마에 사과, 옥수수, 베이컨 같은 재료를 다채롭게 넣어 그라탕을 만들어보자. ‘맛있는 것에 맛있는 것’을 층층이 채운 그라탕을 한 숟가락 크게 떠먹는 순간, 이 겨울이 한층 더 따뜻하고 맛있어질 테다.
고구마그라탕 만드는 법
재료
주 재료: 고구마, 우유, 생크림, 사과,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소스
양념 재료: 소금·후추, 버터, 계핏가루, 꿀 등
취향 재료: 견과류, 베이컨, 바질, 옥수수 알 등
  1. 고구마는 껍질을 벗기고(혹은 껍질째)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삶거나 찐다.
  2. 으깬 고구마에 생크림과 우유를 섞은 다음 소금·후추로 간을 한다.
  3. 오븐용 그릇에 버터를 살짝 바르고, 를 골고루 펴 담는다.
  4. 가로, 세로 1cm 크기로 자른 사과에 계피와 꿀을 섞어 위에 올린다.
  5. 옥수수 알, 견과류, 노릇하게 볶은 베이컨 등 취향 재료를 위에 올린다.
  6. 토마토소스를 바른 후, 그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소복하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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