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3월 경복궁 건청궁 전기시등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점등을 기념하는 날
구한말 기록을 담은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는 120년 전인 1900년 4월 10일, 민간 최초로 종로 네거리에 가로등 3개가 점등돼 전차 정거장과 매표소를 밝혔다고 기록한다.

이날 낮에만 운행하던 전차를 밤 10까지 연장 운행하기로 하여 종로에 있는 정류장과 매표소의 조명을 겸하여 가로등 3개에 점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민간 전등의 시초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전기협회를 비롯한 전기산업계가 뜻을 모아 1966년부터 4월 10일을 ‘전기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다.

전기의 날 제정엔 몇 가지 사연이 있다. 해방 이후 줄곧 전력난에 시달려오던 우리나라는 1964년 마침내 최초로 무제한 송전을 실시했고, 이를 기념키 위해 전기의 날 제정 논의가 전개됐다. 외국의 경우에도 그 나라 시등일을 기념일로 선정하는 게 하나의 통례여서 우리나라의 시등일을 찾기 위한 노력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 당시 경복궁에서 최초 전깃불이 켜진 날을 찾기에 자료가 부족했고, 시간적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경복궁 시등일을 밝히지 못하고 한성전기회사의 시등일인 1900년 4월 10일을 시등일로 하여 1966년 1회 기념식을 개최했다. 전력계 자체행사로 제정된 이 기념일은 1970년 12월 5일에 상공부령으로 공식적으로 전기의 날로 제정되었고, 1973년 정부의 각종 기념일 통폐합 방침에 따라 ‘상공인의 날’ 행사에 통합되었다가 1983년에 다시 부활해, 대한전기협회 주관하에 매년 기념행사를 시행해왔다. 그리고 「전기산업 발전기본법」 제정을 통해 2025년부터 법정기념일로 격상됐다.
대한민국 전기역사의 출발점,
중국이나 일본보다 2년 앞서
우리나라 전기역사의 첫 시작점은 이보다 13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경복궁 후원인 건청궁 앞 향원지 북서쪽 회화나무 아래,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전등을 밝힌 것을 기념하는 ‘전기 발상지 표지석’이 서 있다.

1887년 3월 어느 저녁, 고종을 중심으로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전기가 굉음을 토해내더니 이내 기둥에 매달린 전구들에 일시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이는 에디슨의 발명 이후 불과 8년도 안 된 시점이며,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약 2년 앞서 전기를 도입한 셈이다.

한말의 역사를 담은 『매천야록』에는 고종이 밤만 되면 전등을 켜놓고 배우들을 불러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종황제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금속활자를 발명할 만큼 과학적이었던 선조들의 정신을 서양문물 도입과 접목해 계승시킴으로써 나라의 운명을 바꿔보고자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 유길준으로부터 미국에서 보고 온 전깃불에 대해 전해 듣고, 조미통상수호조약을 기념하기 위해 1883년 미국에 파견했던 친선사절단 보빙 사에게서 전등이라는 신문물에 대해 상세히 보고받은 고종황제는 1887년에 전기를 들여오기에 이른다.

고종이 도입한 발전 설비는 16촉광의 전구 750개를 켤 수 있는 시설이었다. 이는 에디슨이 자사 제품의 판촉을 위해 야심 차게 시공했기 때문에 동양에서도 손꼽는 일류시설이었다. 1890년 미국 공사관 서기관이었다가 훗날 주한 미국공사관 총영사 등을 역임한 알렌은 조선에서의 전기문제에 관한 보고서에서 건청궁의 발전시설을 극찬했으며, 에디슨 램프사의 총지배인인 업튼 역시 에디슨에게 보낸 서신에서 동양에서 유일한 일류시설이라고 기록하였다. 이 시설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약 2년 앞선 것으로 에디슨이 탄소전구를 발명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지 불과 7년 5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의 서사가 시작된 출발점은 세계적으로 결코 뒤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역사 속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전기 발상지 표지석
국내 최초 민간점등일이자 한성전기회사의 시등일인 4월 10일을 '전기의 날'로 제정하여 기념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점등은 1887년 3월 건청궁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이보다 앞선 1885년에 이미 점등이 이뤄졌다는 설도 있다. 1885년 말 성명 미상의 서양인 기술자가 증기기관에 의한 발전기 2대를 설치하고, 100촉광에 달하는 서치라이트 2대를 건청궁과 그 앞뜰에 가설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황실 업무를 담당하던 기구인 이왕직이나 조선전기협회 경성전기 등에서 조사를 하긴 했지만 정확한 판단은 유보키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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