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솥과 숯불이 만든 고기의 두 가지 맛
압력솥과 숯불이 만든 고기의 두 가지 맛
스테이크처럼 센 불에 빠르게 굽는 요리에서는 재료의 표면을 짧은 시간에 고온으로 익히는 시어링을 한다. 표면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면 노릇한 겉면과 진한 구운 향이 생기는데, 이때 일어나는 것이 마이야르 반응이다. 고기 속 아미노산과 당이 높은 온도에서 만나 갈변하면서 다양한 향기 성분을 만들어 내는 반응으로, 팬이 충분히 달궈지고 표면의 수분이 어느 정도 날아간 상태일수록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 반대로 표면에 물기가 많으면 열에너지가 먼저 수분을 증발시키는 데 쓰이면서 표면 온도가 쉽게 오르지 않고, 갈변과 향 형성도 그만큼 늦어진다.
다만 겉면을 강하게 지진다고 해서 육즙이 물리적으로 가둬지는 것은 아니다. 고기를 가열하면 근육 단백질이 차례로 변성·수축하고, 온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조리 시간이 길어질수록 근섬유 사이의 수분은 더 빠져나오기 쉽다. 촉촉함을 좌우하는 것은 겉면을 세게 굽는 일보다, 내부 온도를 알맞은 지점에서 멈춰 수분이 지나치게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데 있다. 시어링은 풍미를 높이는 데 유리하지만, 육즙을 지키는 문제와는 별개다. 오히려 고온의 시어링은 근섬유를 강하게 수축시켜 수분을 쥐어짜내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서 눈길을 끌었던 손종원 셰프의 우설 요리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조리 방법을 한 접시에 결합한 사례다. ‘쓰리스타킬러’와의 우설 대결에서 그는 실로 묶은 우설을 압력솥에 40분간 익힌 뒤 숯불에 구워냈다. 압력솥은 내부 압력을 높여 물의 끓는점을 100℃ 보다 더 높게 끌어올리기 때문에, 일반 냄비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재료를 익힌다. 이 과정이 우설의 질긴 결합조직을 부드럽게 풀어 준다. 콜라겐 성분을 부드러운 젤라틴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이어지는 숯불 단계는 표면 온도를 빠르게 높여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는 동시에, 숯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향까지 더해 겉면의 풍미를 강화한다. 이처럼 하나의 재료에 두 종류의 열을 순서대로 적용해 내부의 부드러움과 표면의 구운 향을 따로 설계한 점이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이끈 결정적 차이였을 것이다.
베이킹이 작은 차이에도 무너지는 이유
베이킹이 작은 차이에도 무너지는 이유
베이킹을 할 때면 같은 레시피로 반죽해도 어떤 날은 잘 부풀고, 어떤 날은 축 처지거나 손에 달라붙는다. 베이킹 서바이벌 〈천하제빵〉에서 예선 참가자들이 낯선 스튜디오에서 조리를 하며 곳곳에서 탄식이 터진 이유도 그래서다. 제과·제빵은 재료 비율만이 아니라 반죽 온도와 주변 환경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반죽 온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효모의 활동 속도와 발효 리듬이 바뀌고, 그 결과 부피와 향, 조직감까지 달라질 수 있다. 발효 중 온도와 습도, 오븐 환경의 작은 차이도 마찬가지다.
슈처럼 예민한 제과 반죽은 더 까다롭다. 팀전에서 '도파민이 필요한 날'을 주제로 에그타르트 슈를 만들던 팀이 고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슈 반죽은 효모가 아니라 반죽 속 수분이 증기로 팽창하며 부풀어 오른다. 이때 반죽 안에서는 전분이 호화되고 달걀과 밀가루의 단백질이 구조를 잡아야 하므로 수분량과 점도, 굽는 온도와 시간의 균형이 조금만 어긋나도 형태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디저트는 설탕과 지방, 공기가 더해지며 훨씬 복잡한 식감이 만들어진다. 한동안 큰 인기를 얻었던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가 대표적이다. 겉의 마시멜로 껍질은 설탕 시럽에 공기가 섞여 만들어진 거품을 젤라틴이 안정화한 구조라서, 말랑하면서도 늘어나는 듯한 탄성이 생긴다. 그에 반해 안쪽의 카다이프는 가느다란 가닥 속 수분이 빠르게 날아가며 가볍고 바삭한 결을 남긴다. 한입 베어 물면 바깥의 쫀득함과 안쪽의 바삭함이 차례로 드러나며 매력적인 식감의 대비를 느낄 수 있다.
설탕은 이러한 디저트의 식감을 설계하는 핵심 재료다. 단맛뿐 아니라 밀가루의 아미노산과 만나 마이야르 반응을 돕고, 고온에서는 스스로 캐러멜화되어 특유의 갈색빛과 복합적인 풍미를 완성한다. 식는 과정에서 수분이 얼마나 남는지에 따라 질감도 달라진다. 여기에 버터 같은 지방이 더해지면 반죽 속 단백질이 지나치게 굳는 것이 억제되면서 조직이 더 부드럽고 잘 부서지는 방향으로 바뀐다.
당근은 어떻게 면이 되고 도넛이 될까
당근은 어떻게 면이 되고 도넛이 될까
〈흑백요리사2〉가 끝난 뒤에도 인터넷에서 꾸준히 화제가 된 것은 후덕죽 셰프의 당근 요리였다. 평범한 당근이 전혀 다른 음식으로 변했다. 후 셰프는 밀가루 없이 당근을 가늘게 다듬어 짜장면으로 만들고, 당근을 꼭 닮은 꼬마 당근 튀김까지 선보였다. 최근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김풍이 이 발상을 오마주해 비슷한 당근 도넛을 만들며 다시금 화제를 모았다.
후덕죽 셰프의 당근 짜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익힘의 정도다. 생당근의 아삭함은 세포벽과 세포 사이를 붙드는 펙틴, 단단한 조직 구조에서 나온다. 열을 받으면 세포벽의 지지대인 펙틴이 수용화되어 조직이 점차 유연해진다. 이때 덜 익히면 세포벽이 견고해 면처럼 휘어지지 않고 너무 익히면 구조가 완전히 무너져 쉽게 끊어진다. 이 요리의 핵심은 가늘게 써는 칼질 기술보다도, 그 질감의 경계선을 얼마나 정확히 읽어내느냐에 있다. 세포벽이 풀리되 완전히 무너지기 전의 지점을 맞춰야 비로소 면 같은 유연함이 생긴다.
여기에 짜장소스가 더해지면 맛의 방향이 달라진다. 당근은 익을수록 조직이 부드러워지고 향과 질감이 바뀌면서 원래 들어 있던 당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 후 셰프가 짜장소스에 미소된장을 섞어 볶은 것은 이런 단맛에 발효된 콩의 감칠맛을 겹쳐, 채소를 한층 더 진한 중심 재료로 만든 선택이었다. 결국 이 요리는 당근으로 면을 흉내냈다기보다, 당근의 조직과 단맛이 가장 잘 살아나는 지점을 짜장의 풍미와 연결한 요리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당근을 꼭 닮은 꼬마 당근 튀김과 이를 오마주한 김풍의 당근 도넛은 또 다른 변신이다. 튀김은 재료의 겉과 속 수분 분포를 다르게 만들어 서로 다른 식감을 내는 조리법이다. 뜨거운 기름이 재료 겉면의 수분을 빠르게 날리면서 바깥쪽 조직을 먼저 굳혀 얇은 껍질을 만든다. 안쪽은 수분을 상대적으로 더 머금고 있어 부드럽거나 쫀득한 식감이 남는다. 당근 도넛에서도 반죽에 들어간 전분과 당은 표면이 갈색으로 잘 익도록 돕고, 지방은 조직이 지나치게 단단해지는 것을 막는다. 그래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이 만들어질 수 있다.
과학만으로 요리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냄새를 맡으며 색과 질감의 변화를 읽어 내는 것은 결국 사람의 감각이 맡는 일이다.
원리를 알면 언제 불을 줄이고, 언제 뒤집고, 언제 불에서 내려야 하는지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맛있는 요리는 과학 위에서 시작되지만, 가장 알맞은 때를 알아채는 건 손끝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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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위에 완성되는 손맛
과학 위에 완성되는 손맛
이처럼 조리의 결과를 가르는 것은 불의 세기만이 아니다. 단백질과 수분, 세포벽과 당, 지방과 공기가 열을 받을 때 어떻게 변하느냐가 식감과 향을 결정한다. 같은 재료라도 열을 가하는 순서나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요리의 과학은 정답을 외우는 지식이 아니라, 재료가 열 앞에서 거치는 변화를 읽어 내는 일에 가깝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셰프들이 낯선 환경에서도 순간의 판단으로 요리를 완성해 내는 것도 그 변화의 흐름을 몸으로 익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만으로 요리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냄새를 맡으며 색과 질감의 변화를 읽어 내는 것은 결국 사람의 감각이 맡는 일이다. 원리를 알면 언제 불을 줄이고, 언제 뒤집고, 언제 불에서 내려야 하는지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맛있는 요리는 과학 위에서 시작되지만, 가장 알맞은 때를 알아채는 건 손끝에서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