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바닷속에도 숲이 있다. 햇빛이 닿는 연안의 바닷속에서 미역과 다시마 같은 해조류가 군락을 이루면 다양한 생명이 머무는 터전이 된다. 물고기와 여러 해양생물이 모여들면서 황폐했던 바다는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그리고 이 바닷속 숲은 탄소를 흡수하며 기후변화 대응에도 힘을 보탠다. 이른바 ‘바다숲’이다.
글 안지원 노사협력처 사회공헌부 차장
궁시도 전경
한전, 공기업 최초 바다숲 조성사업에 참여하다
지난 8월 28일, 한전은 해양수산부·태안군·한국수산자원공단(FIRA)과 함께 ‘탄소흡수원 확대와 바다생태계 보전을 위한 바다숲 조성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정부가 추진해 온 바다숲 조성사업에 한전이 공기업 최초로 참여해 탄소흡수원 확대와 해양생태계 복원을 위한 새로운 ESG 협력모델을 만들어간다는 데 의미가 있다.
협약에 따라 4개 기관은 탄소흡수원 확대와 생물다양성 증진, 바다숲 조성과 지속가능한 관리, 바다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 인식 제고 등에 힘을 모은다. 사업 종료 이후에도 사후관리를 이어간다.
바다 사막에 다시 생명을
새로운 바다숲이 만들어지는 곳은 충남 태안군 궁시도 해역이다.
궁시도는 섬의 모양이 활(弓)과 화살(矢)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0년대 이후 무인도가 된 작은 섬으로,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괭이갈매기의 집단 산란지와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매가 관찰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하지만 일부 해역에서는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해조류가 사라지고 석회조류가 암반을 뒤덮는 ‘갯녹음’, 이른바 바다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전 해양환경 조사에서도 바다숲 조성에 적합한 해역으로 확인됐으며, 지자체와 어촌계의 사업 참여와 협력 의지도 높다.
한전은 사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상생의 관점에서 태안 궁시도 해역의 해양생태계 복원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사업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4년간 진행된다. 궁시도 해역 약 1.55㎢에 해조류 군락지를 조성하며, 총 사업비 13억 원을 한전과 정부가 절반씩 부담한다.
단기간의 환경활동이 아니라 조성에서 관리, 생태계 회복까지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사업이다.
바다숲 신규 조성(1년차)
➊ 포자확산단지 조성
➋ 부착기질 확대
➌ 해조류 이식
➍ 모니터링 및 효과 분석
2~4년차➎ 해조류 보식 및 환경 개선
바닷속에 숲을 만드는 방법
바다숲은 단순히 해조류를 심는 것보다 더 길고 세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먼저 해조류의 포자를 확산시키고, 자연암반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생육환경을 조성하여 해조류를 이식한다. 이후 해조류와 구조물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면 해조류를 다시 심거나 해양폐기물 수거 등 환경 개선을 실시한다. 조성 이후에도 해조류와 저서동물, 플랑크톤, 유영생물 등은 물론 해양환경과 갯녹음 해소율까지 조사해 바다의 변화를 확인한다.
단순히 해조류를 심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다시 스스로 숲을 키워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앞으로 4년 동안 궁시도에서 이어질 일이다.
바다숲이 품는 ‘푸른 탄소’
바다숲의 가치는 생태계 복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해양·연안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블루카본(Blue Carbon)’이라고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잘피와 염생식물, 맹그로브 등이 탄소흡수원으로 공식 인정돼 있으며, 최근에는 해조류의 국제적 인정 확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존에 국가 바다숲의 성과에서도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2022~2025년 조성된 17개의 조성 전후를 비교한 결과, 해조류 생체량은 138.5% 증가하고 바다사막화 면적은 54.7% 감소했으며, 종다양성 지수도 3.0 이상을 기록하는 등 해양생태계의 복원 효과가 확인됐다.
탄소흡수 효과도 기대된다. 한국수산자원공단과 포항공대 연구에서 제시된 바다숲 1㎢당 연간 337톤의 이산화탄소 저감량을 이번 사업면적 1.55㎢에 적용하면, 궁시도 바다숲에서 연간 약 522톤의 CO₂ 흡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전이 오늘 바다에 심는 것은 해조류만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가능성, 그리고 우리만의 푸른 숲을 함께 심고 있다.
가꾸는 바다숲에서 만드는 바다숲으로
한전에게 바다숲은 완전히 낯선 영역이 아니다. 2024년 전남 완도와 2025년 전북 군산에서는 잘피 22만 주를 이식하고 해양 폐기물을 수거하는 등 공기업 최초로 2년 연속 ‘바다숲 가꾸기’에 참여하며 해양생태계 복원의 경험을 쌓아왔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이미 만들어진 바다숲을 돌보는 ‘가꾸기’에서, 새로운 바다숲을 처음부터 ‘조성’하는 것으로 한 단계 나아간다.
아직 이름 없는 우리의 바다숲
이 숲에는 앞으로 한전만의 이름이 생긴다. 한전은 향후 임직원 공모를 통해 궁시도에 조성하는 바다숲의 이름을 정할 계획이다. 궁시도라는 이름에도 활과 화살을 닮은 섬의 모습이 담겨 있듯, 이름에는 그 공간만의 이야기가 담긴다.
육지의 산과 숲은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수면 아래 자리한 바다숲은 우리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특별하다. 지도 위 좌표와 ‘1.55㎢’라는 숫자로 존재하던 공간이 우리가 기억하고 관심을 갖는 ‘우리의 숲’이 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좋은 이름 하나가 바다숲을 하루아침에 울창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이름을 부르는 순간 관심이 시작되고, 관심은 오래 지켜보게 하는 힘이 된다.
1.55㎢의 푸른 숲, 그 이상의 가치
전기를 공급하는 기업과 바다숲. 언뜻 보면 조금 낯선 조합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기업에 요구되는 책임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세계 최고 품질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하는 일 역시 공기업의 중요한 책무다.
그래서 한전이 오늘 바다에 심는 것은 해조류만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가능성, 우리만의 푸른 숲을 함께 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