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시 뭐 봄?
가을 감성을 채워줄
힙한 전시
바람이 조금 차가워지고, 마음은 괜스레 서늘해지는 계절. 그럴 땐 잠시 걸음을 늦추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새로운 영감과 신선한 시선이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우고, 다채로운 작품들이 가을의 끝자락을 한층 풍요롭게 물들인다. 지금, 감성과 취향을 모두 충족시켜줄 ‘힙한’ 전시를 소개한다.
Text 최행좌 Photo 황지현, 국립현대미술관, 부산박물관셰익스피어 희곡 전집부터
《거장의 비밀: 셰익스피어부터 500년의 문학과 예술》
세기를 건너온 문장들, 거장의 얼굴을 마주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아서 코난 도일, J.K. 롤링 등 세기를 넘어 사랑받는 영국 문학의 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산박물관과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이 공동으로 마련한 《거장의 비밀: 셰익스피어부터 500년의 문학과 예술》이 그 무대다.
이번 전시는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삶과 문학적 여정, 그리고 그들이 마주했던 수많은 도전의 순간을 다섯 가지 주제로 엮어 보여준다. ‘작가를 찾아서_글, 초상, 그리고 삶’, ‘위대한 여정_거장이 되기까지’, ‘억압과 검열, 그리고 저항_장벽에 맞선 작가들’, ‘명성_빛과 그림자’, ‘글의 힘_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이들의 빛과 고독, 저항과 영감이 한 편의 서사처럼 이어진다.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영국 문학 거장 78인의 초상화와 함께 친필 원고, 편지, 희귀 초판본 등 137여 점의 귀중한 자료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 500년에 걸친 문학의 숨결이 관람객 앞에서 생생히 되살아나는 감동의 무대가 된다.
©Wisbech and Fenlands Museum
문학이 남긴 500년의 숨결
거장들의 삶과 창작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번 전시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시간을 건너는 특별한 만남을 선사한다.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생전 초상화, 『오만과 편견』 초판본, 브론테 자매가 가명으로 출판한 시집,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친필 원고,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베일 쓴 하숙인의 비밀』 친필 원고, 오스카 와일드의 편지, J.K. 롤링의 친필 메모가 담긴 『해리 포터』 초판본, 2019년 부커상 수상작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원고 등 문학의 시간과 감성이 한 전시장 안에서 교차한다.
특히 전 세계 230여 권만 남아있는 셰익스피어의 첫 희곡 전집 『First Folio』가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1623년에 발간된 이 전집은 「맥베스」, 「십이야」 등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희곡 36편을 수록하고 있는 작품이다.
전시된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에 쓰였지만, 인간의 내면과 사회를 비추는 ‘글의 거울’이라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이렇게 500년에 걸친 문학의 여정은 한 권의 거대한 이야기로 다시 살아나 우리에게 문학이 품은 시간의 힘과 예술의 영원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 장소 부산박물관
- 기간 9월 30일~2026년 1월 18일
- 관람 09:00~18:00(17시 입장 마감)
- 이용료 성인 15,000원
- 문의 051-610-7154
한 방울의 우주, 투명한 찰나,
영원의 형상 그리고
김창열의 예술 세계
《김창열》
삶의 상흔에서 피어난 물의 미학
투명한 물방울이 캔버스 위로 ‘똑’ 하고 떨어진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김창열 작가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금세 바닥으로 스며들 것 같은 물방울의 덧없음을 그는 시간의 한가운데에 고요히 붙잡아 두었다. ‘물방울 화가’로 불리는 그는 물이라는 가장 순수한 존재를 통해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 현실과 환영의 간극을 그려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열》은 그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1950년대, 김창열 작가는 앵포르멜(비정형 미술) 운동을 주도하며 서구 현대미술의 실험정신을 한국적 정서와 접목한 선구자였다. 뉴욕을 거쳐 파리에 정착하기까지 그는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대표작은 물론 초기작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총 120여 점의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다. 그의 치열했던 창작 과정과 그 사이에 피어난 예술 세계를 총망라해 보여준다. 특히 작품에 내재된 근원적 미의식을 중심으로 그가 탐구해 온 ‘물방울 회화’의 전개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룬다. 전시는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작가의 삶의 흐름과 그 궤적을 함께한다.
물방울의 기원을 찾아서
김창열 작가가 평생에 걸쳐 천착한 주제는 단연 ‘물방울’이었다. 1970년대 초, 끈적이던 점액질의 형상은 어느 날 투명한 물방울로 변화한다. 그 계기는 우연에서 비롯됐다. 캔버스를 재사용하기 위해 뿌려둔 물이 맺힌 것을 본 순간, 그는 그 안에서 완성된 형태의 충만함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의 물방울은 언제 어디에 맺히든 늘 ‘구’(球)’ 의 형태를 띤다. 텅 비어 있으나 가득 차 있고,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를 암시한다. 초기 작품에서는 에어스프레이 기법을 사용해 거친 생지, 모래, 나무 같은 바탕 위에 물방울을 얹었다. 그 표면은 물방울이 놓인 자리가 아니라,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듯한 느낌을 준다. 이후 물방울에는 얼룩이 남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회화적 표현과 콜라주 등 형식적 변화를 시도하며 ‘물방울’이라는 주제에 새로운 해석을 더해갔다.
그에게 물방울은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화수이자 눈물, 생명, 그리고 무(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존재를 아우르는 상징이었다. 그의 물방울은 삶과 죽음, 실재와 허상을 넘나들고 있다. 그의 물방울은 그렇게 오늘도 고요하게 존재의 비밀을 전하고 있다.
-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기간 8월 22일~12월 21일
- 관람 월, 화, 목, 금, 일 10:00-18:00
수, 토(야간 개장) 10:00-21:00 - 이용료 성인 2,000원
- 문의 02-3701-9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