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OAD

새삼 멋진,
속초

‘새삼’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떠올렸다. 속초에서 말이다. 그토록 자주 오래 들락거렸음에도, 도시 안에서 울산바위를 본 기억은 희미했다. 아니, ‘매번 봤지만 보지 못했다’는 고백이 더 적절하겠다. 산과 바다를 구획 짓는 일에 익숙했던 탓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새삼’ 깨달았다. 속초에서 산과 바다의 경계는 무의미했다. 도시가 산과 바다를 잇고 있었으므로.

  • Text·Photo 이시목(여행작가)  사진 제공 한국관광공사
  • ‘설악’은 이 도시의 경이로운 배경
    속초는 설악 바깥의 도시다. 설악산의 그늘을 거쳐야 닿을 수 있는 도시란 뜻이다. 그래서 부러 설악산 자락에 있는 ‘설악향기로’와 상도문돌담마을부터 찾았다. 속초시가 설악동 활성화를 위해 조성한 설악향기로는,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권금성보다 쉽고 편하게 설악을 즐길 수 있는, 요즘 속초의 핫플이다. 오르는 것이 아니라 설악의 턱 밑을 1시간가량 거닐며 설악의 산과 계곡을 즐길 수 있다.
    상도문돌담마을은 설악산 아래 오래 터 잡고 산, 설악의 터줏대감이다. 500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으니 설악과 한 몸인 듯 자연스럽고, 튀는 것 없어 풍경 참 안온하다. 무엇보다 마을 어디서나 설악이 보이니, 어느 집 마당에서는 설악이 그저 이웃집 지붕처럼 다정하다. 하지만 이곳은 설악산만 이고 앉은 예쁜 마을이 아니다. 이름처럼 높지 않게 쌓인 돌담이 집과 집을 단정하게 잇고, 모퉁이와 모서리를 소담하게 연결한다. 그 가지런한 돌담 곳곳에서 ‘스톤 아트’가 반짝 빛난다. 긴 세월, 마음을 다해 지켜낸 마을은 이런 모습이구나, 감탄하며 걸었다.
    스카이워크와 출렁다리를 갖춰 최근 핫플로 떠오른 설악향기로
  • 도시의 발치께서 출렁대는 바다
    설악은 도시 너머 바다에까지 닿는다. 마치 누군가 도시 위로 산의 능선을 그려 넣은 듯, 도시 발치께서 출렁대는 바다에서도 산이 선명하게 읽힌다. 그중에서도 울산바위는 압도적이다. 둘레 4km에 이르는 여섯 개의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의 입체적인 질감이 마치 신령 같다.
    날 밝은 날에는 흰 이마를 더욱 밝게 드러내 바다까지 비출 정도다. 그래서였겠다. 바다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바다에서 설악이라, 바다에서 울산바위라’, 도로록 도로록 입 안에서 활자들을 굴렸다.
    몇 해 전부터였을 것이다. ‘울산바위 뷰’가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기 시작한 건. 그때 부쩍 관심을 끈 곳이 고성의 성인대와 속초의 울산바위 전망대였다. 하지만 누가 알까. 속초항이 울산바위를 보는 또 다른 전망대인 걸.
    사실 속초항을 그리 자주 오래 드나들었음에도 그토록 환하게 솟구친 울산바위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 매번 봤지만 기억하지 못한 것일 테다. 그러니 속초에 닿거든 누구든, 청초호와 바다 사이 모래밭에 자리한 아바이마을, 그 색다른 곳이 빤히 보이는 속초항 방파제에 서 볼 일이다. 바다에 바투 붙은 울산바위와 함께, 설악과 동해 사이를 촘촘하게 메운 속초란 도시가 보일 테니. 경계는 때때로 그렇게 지워져, 새삼 알게 하는 풍경들이 있었다.
    속초항이 기막힌 울산바위 전망대라면, 도시 곁에서 출렁대는 바다의 정면은 ‘바다향기로’에서 가장 보기 좋다. 바다향기로는 바다 쪽으로 삐쭉 튀어나온 외옹치의 둘레를 감싸 도는 바닷길로, 눈 두는 모든 곳에 바다가 있어 파도 소리 들으며 숨 고르기 좋다. 특히 해 질 무렵 도시를 빨갛게 물들이는 하늘이 있어 일몰과 야경을 보기 좋은 곳으로도 입소문 났다. 그곳에 속초의 랜드마크인 속초아이가 있다.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 이토록 느리게 움직이는 놀이기구에 앉아, 동해와 설악을 향해 서서히 올라가며 넓어지는 뷰를 보는 맛이 좋다. 높이 65m까지 오르며 산과 도시, 바다의 경계를 지운다.
    3대째 운영 중인 속초의 핫플 동아서점
    속초항 방파제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 산과 바다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들
    요즘 속초를 찾는 이들이 많다. 주전부리 천국으로 알려진 속초관광시장부터 새로운 핫플로 급부상 중인 ‘새마을’, 낡은 조선소를 카페로 재생한 칠성조선소까지, 여기에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이란 두 곳의 오래된 서점까지 더해져 속초가 보다 활기차졌다. 지방 소도시의 작은 서점이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일이 극히 드문 시대에, 과거를 재해석해 핫플로 거듭난 서점을 보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이 또한 경계를 지워 풍경을 확장하는 일. 속초는 그렇게 산과 바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지워가며 조금씩 더 빛나고 있다. 그래서 새삼, 더 멋진 속초였다.
    속초해변~외옹치해변~외옹치항을 잇는 바다향기로
    돌담을 보며 차 한 잔 마시기 좋은 상도문돌담마을 내 한옥카페
  • 가을엔 ‘찜’하세요
    오징어순대
    처음 오징어순대를 봤던 때를 기억한다. 아바이마을에서였다. 식당마다 큰 솥을 내걸고 무언가를 찌고 있었는데, 그 안에 오징어가 있었다. 속을 무언가로 꽉 채운 듯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고, 윤기 나는 껍질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도 맑은 갈색으로 선연히 빛났다. 먹기 좋게 잘려 나온 순대도 신기하지 그지없었다. 약 1cm 두께로 동그랗게 자른 순대는 일단 예뻤고, 그 안에 다진 채소와 당면·두부·오징어 다리 등이 오밀조밀 자리 잡아, 입안에 넣는 순간 풍성하게 씹히면서 감칠맛도 깊었다. 오징어순대의 시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함경도에서 이미 만들어 먹던 음식이라는 이야기와 속초에서 흔히 잡히던 오징어로 명태순대를 본떠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 등이다. 하지만 돼지 창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당시 속초에서 많이 잡히던 오징어에 산나물을 버무린 막장을 채워 쪄 먹었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1960~70년대 속초의 실향민들이 시장과 마을에서 오징어순대를 만들어 팔면서 점차 속초 명물로 자리 잡았다.
    오징어는 영양학적으로 뛰어난 식재료다. 단백질 함량이 18%로 소고기보다 3배 이상 높고, 지방은 1%에 불과해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다. 타우린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조절하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성인병과 당뇨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산성이 강한 식품이지만, 알칼리성 채소와 함께 조리하면 맛과 영양의 균형이 살아나고, 껍질째 찌면 껍질에 특히 많은 타우린 성분의 손실을 최소화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이 계절에 ‘채소를 넣어 껍질째 쪄 먹는’ 오징어순대를 권하는 건 이 때문이다. 더욱이 오징어는 찜으로 익히면 몸통의 단맛이 속재료에 스며들어 부드럽고 진한 풍미가 살아난다. 한때, 오징어는 어획량이 급감해 ‘금징어’라 불릴 만큼 귀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예년 수준을 회복할 정도로 많이 잡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금이 살이 가장 도톰하고 단맛이 강하게 올라 맛있을 시기이니, 반짝반짝 윤기 나는 오징어를 몇 마리 사, 오징어순대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몸통을 비우고 각종 채소와 오징어 다리, 두부 등으로 속을 채운 뒤 쪄 내면, 바다와 사람의 기억이 담긴 한 접시가 맛있게 완성된다. 오직 찜으로 완성한 오징어순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한 풍미가 있으니, 가을엔 꼭 ‘찜’해 보시라.
오징어순대 만드는 법
재료
주 재료 : 오징어, 다진 소고기, 표고버섯, 당근, 숙주, 두부, 양파, 달걀, 당면
양념 재료 : 다진 대파, 다진 마늘, 간장, 소금, 후춧가루, 참기름, 밀가루
  1. 오징어는 몸통을 가르지 않고 손가락을 넣어 내장을 제거하고, 다리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잘게 다진다.
  2. 당면은 30분가량 물에 불린 뒤 뜨거운 상태에서 잘게 썬다.
  3. 양파, 당근, 표고버섯은 잘게 다지고 두부는 물기를 제거한 후 으깬다.
  4. 숙주는 데친 뒤 물기를 꼭 짜서 잘게 썬다.
  5. 다진 소고기와 , , 오징어 다리, 달걀, 양념 재료를 큰 볼에 넣고 고루 섞어 순대 속을 만든다.
  6. 오징어 몸통 안에 밀가루를 살짝 묻힌 후, 순대 속을 2/3 정도 채운다. 입구는 이쑤시개로 고정하고, 숨구멍을 몇 군데 뚫는다.
  7. 김이 오른 찜통에 넣고 15~20분 정도 쪄서 속까지 익힌다.
  8. 찐 오징어순대를 1cm 두께로 썰어 접시에 담는다.
  9. 기호에 따라 초간장이나 초고추장, 고추냉이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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