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교류(AC)의 시대에서 직류(DC)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산업화 초기에는 AC 송전이 대용량·장거리 전송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전 세계 전력망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확대, 전기화(Electrification)라는 시대적 전환이 진행되면서, AC 체계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대부분이 DC로 발전하고, 부하는 DC로 소비하지만, 그 사이의 인프라는 AC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어 변환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DC 기반의 송전과 배전’이 사용된다. 지금, 산업의 기반이 AC에서 DC로 옮겨가고 있다.
세계 각국은 거대한 전환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전력의 패러다임, ‘DC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Text 장길수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송전 단계의 DC 활용 HVDC가 여는 ‘Energy Highway’
대규모 전력 전송에서는 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가 기술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기존 AC 송전은 전력 조류 제어가 제한적이고, 장거리 전송 시 무효전력과 동기안정성 문제가 따른다. 반면 HVDC는 전력 흐름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으며, 거리·환경의 제약 없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동시킨다. 특히 송전설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 문제에 대해 지중이나 해저 송전 방식의 해법을 제공해 준다. 현재 세계는 HVDC를 ‘전력망 혼잡 해소와 재생에너지 전송’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하고 있다.
유럽 북해(North Sea) HVDC Backbone은 해상풍력 단지를 여러 HVDC로 연결해 국가 간 전력 공유를 실현하고 있다. 중국은 ±800kV 초고압 DC로 3,000km 이상 송전하여 서부 수력·풍력 자원을 동부 산업지대로 이송하고 있다. 북미 최대 규모의 HVDC 지중송전 프로젝트인 Champlain Hudson Power Express는 캐나다 Quebec 지역과 미국 Queens 지역을 연결하는 1,250MW급의 HVDC 해저 및 지중 송전선로를 통해 캐나다 동부의 수력·풍력 기반 청정에너지를 미국 동부 전력망 혼잡의 중심지인 뉴욕시에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역시 서해안·동해안 HVDC를 중심으로 ‘에너지 고속도로’ 를 추진 중이다. 이는 특정 지역에 집중된 신재생 전원을 효율적으로 계통에 연결하고, 대규모 전력 수요 지역 간 전력 불균형을 완화하는 국가적 핵심 전략이다.
HVDC의 또 다른 기술 진화는 전압형 HVDC(VSC-HVDC: Voltage Source Converter)이다. 기존 LCC 방식 대비 전압·전류를 빠르게 제어할 수 있어, 해상풍력 연계나 도심 수전에도 적합하다. 특히 멀티터미널(MTDC) 구조로 확장되면, 전력망은 마치 인터넷처럼 유연하게 전력을 경로 변경할 수 있는 ‘전력 네트워크’로 진화한다.
배전 단계의 DC 활용 MVDC·LVDC가 만드는 새로운 도시 전력망
송전이 국가의 대동맥이라면, 배전은 도시와 산업의 혈관이다. 이 영역에서도 MVDC(Medium Voltage DC)와 LVDC(Low Voltage DC)의 실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존 AC 배전망은 변압기·인버터를 거치며 잦은 변환 손실이 발생하고, 고조 파·무효전력 등 품질 문제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DC 배전은 효율적·안정적·모듈형 구조로 각광받고 있다.
영국 Angle DC 프로젝트는 기존 33kV AC 배전선을 27kV MVDC로 전환해 추가 증설 없이 혼잡을 해소하고 전송용량을 약 70% 확대했다. 독일 RWTH Aachen은 MVDC 캠퍼스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DC 보호·차단기, 고효율 DC–DC 컨버터, 부하 연계기술을 실증했다. 중국 Wenchang 프로젝트는 해상 플랫폼과 육상을 연결하는 29.2km 구간의 해저케이블에서 절연 및 순간 과전압(Surge Impact) 문제로 높은 유지보수 비용 및 소음, 전력 전송용량 제한과 같은 문제가 커지자 15kV MVDC 구조로 전환하여 문제를 해소했다.
한전–HD현대 글로벌R&D센터는 세계 최초로 1MW급 상업용 LVDC 빌딩 시스템을 완성, 연간 10% 이상의 전력 절감 효과를 입증했다. LS Electric은 DC 기반 반도체 변압기·차단기 개발을 주도하며 산업용 LVDC 시장을 확장 중이다.
이제 배전은 단순한 전력 분배망이 아니라, 데이터센터·전기차 충전 인프라·마이크로그리드·스마트빌딩을 연결하는 에너지 데이터 네트워크로 바뀌고 있다. DC는 새로운 수요를 직접 공급함으로써 전력 변환 횟수를 최소화하고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DC 시대, 한국이 주도할 새로운 패러다임
AC는 인류의 산업화를 이끌었지만, 동시에 복잡한 전력계통· 대규모 송전선·전력품질 문제를 낳았다. DC는 그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이제 ‘송전은 HVDC, 배전은 MVDC·LVDC’라는 이중 구조로 진화하고 있으며, 한국은 그 중심에서 국제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 앞으로 DC 기반 전력망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탄소중립·디지털 대전환·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적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특히 HVDC와 도시형 MVDC의 결합은 국가·지역 간 전력 흐름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하는 ‘지능형 전력 네트워크(Intelligent Power Network)’로 진화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서해·동해 HVDC 에너지 고속도로와 도심·캠퍼스형 MVDC를 연계해 데이터센터·전기차 충전·항만 전 동화 등 신수요를 직접 DC로 공급해야 한다. IEC(국제전기기술 위원회) 표준 선도, Korea DC Alliance(K-DCA)를 통한 산업·학 계·정부의 공동 실증, 사이버보안·보호계전·디지털트윈·그리드포밍 연계기술의 내재화, 인력양성·사회적 합의 모델 구축까지 병행될 때 DC 전환은 국가 경쟁력으로 완성된다.
DC 시대는 기술의 경쟁이자 협력의 시대이다. 각국이 자국 중심으로 폐쇄적인 표준을 만드는 대신, 상호운용성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글로벌 DC 생태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한국은 AC 시대의 후발주자였지만, 이제는 DC 시대의 개척자로 나서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한국은 전 세계와 협력해 ‘AC 시대의 문제를 반복하지 않는 새로운 전력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이 열어갈 ‘DC의 시대’,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의 전력 이야기다.
무효전력: 실제 일을 하지 않지만 전기 흐름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전력. 거리가 멀어질수록 무효전력이 늘어나서 전압이 떨어지고 손실이 커짐.
동기안정성: 여러 발전기가 같은 속도와 위상을 유지해야 하는 AC의 특성. 장거리일수록 위상차가 커지면서 발전기들의 탈동기 위험이 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