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몬드리안의 미학으로
배우는 삶의 균형
글 이은화 미술평론가, 『사연 있는 그림』 저자
- 기술의 시대, 균형을 갈망하다
-
기술이 사유를 대체하는 시대다. 프롬프트 하나면 그럴듯한 이미지와 영상이 즉각 생성된다. AI 활용법을 익혀야 하고, 건강도 관리해야 하며, 재테크 정보도 놓칠 수 없다. 인간관계까지 신경 쓰다 보면 하루는 숨 돌릴 틈 없이 흘러간다. 편리를 약속했던 기술과 정보의 발달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시간을 더 촘촘히 점유한다.그래서일까. 우리는 매일 ‘균형’을 갈망한다. 일과 삶의 균형, 감정의 평온, 관계의 안정. 그러나 균형 잡힌 삶은 언제나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넘치고 빠른 시대일수록 균형은 타고나는 감각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단련해야 하는 태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과연 이 혼란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일은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해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그림은 뜻밖의 힌트를 건넨다.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과 수직·수평의 검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화면은 지극히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세계의 보편적 질서와 균형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다. 몬드리안은 최소한의 형태와 색채만으로도 복잡한 감정을 정화하고 순수한 조화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평생 자연의 겉모습을 하나씩 지워가며, 회화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상태, 즉 ‘균형의 본질’을 탐색했다.
- 덜어냄으로 완성한 질서
-
몬드리안이 처음부터 추상화를 그렸던 것은 아니다. 187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풍경과 나무를 충실히 묘사하는 화가로 출발했다. 그러나 점차 눈에 보이는 대상보다 그 이면의 구조에 더 매료되었다. “자연을 닮게 그리는 것이 과연 예술의 본질일까?”라는 질문은 그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파리에서 입체주의를 접한 이후 그의 화면은 급격히 단순해졌다. 형태는 해체되었고 색은 줄어들었다. 결국 남은 것은 점, 선, 면. 그중에서도 수직선과 수평선은 그의 조형 언어의 핵심이 된다. 몬드리안은 이를 서로 대립하면서도 균형을 이루는 두 힘으로 보았다. 위와 아래, 좌와 우가 팽팽하게 맞서는 긴장과 조화.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구조적 안정. 이것이 그가 말한 질서와 균형의 본질이었다.
대표작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1930년)1은 이러한 사유가 응축된 작품이다. 삼원색의 색면과 검은 직선이 화면을 과감하게 분할한다. 언뜻 보면 쉽고 단순하다. 누군가는 “나도 그리겠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단순함은 수많은 삭제와 수정 끝에 도달한 결과다. 몬드리안은 단 하나의 선 위치를 정하기 위해 며칠씩 고민했고, 같은 작품을 수십 차례 고쳐 그렸다.
균형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불필요한 것을 과감히 버리고, 남겨야 할 것을 끝까지 지키는 선택의 반복 속에서만 형성된다. 그의 화면이 차갑고 계산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통과해 구조와 본질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치열한 몰입과 고독한 사유가 그 안에 응축되어 있다. 몬드리안에게 예술은 세상의 혼돈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작업이었다.
- 리듬 있는 균형, 그리고 오늘의 나
-
제2차 세계대전은 그를 뉴욕으로 이끌었다. 격자형 도시 구조와 재즈, 특히 부기우기의 리듬은 그의 작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말년의 걸작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3년)2는 더 이상 정적인 균형에 머물지 않는다. 노란 선들이 격자를 이루고, 작은 색면들이 박자처럼 화면을 진동한다. 질서는 유지되지만 화면은 살아 움직인다.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이 작품은 변화와 속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중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균형은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변화나 움직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힘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오늘의 우리는 몬드리안이 살던 시대와는 다른 방식의 혼돈 속에 있다. 정보 과잉, 속도 경쟁, 끊임없는 비교. 더 많이 배우고 더 빨리 움직이라고 요구받는 사회에서 중심은 쉽게 흔들린다. 이럴 때 그의 그림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균형은 더하는 데 있지 않다고. 오히려 빼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루의 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를 정하는 일. 모든 관계를 만족시키려 애쓰기보다 나를 지키는 선을 분명히 긋는 일. 몬드리안이 화면 위에 수직과 수평을 세워 중심을 만들었듯, 우리 역시 삶의 기준선을 세워야 한다. 균형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부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그의 그림을 다시 바라보자. 단순한 화면은 오히려 깊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 무엇을 끝까지 남길 것인가. 직선 몇 개와 세 가지 색만으로 세계의 질서를 그려낸 화가처럼, 우리 역시 복잡함을 걷어내고 단 하나의 기준으로 오늘을 지탱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