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피로가 쏘아 올린 ‘감정 관리’ 역량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Z세대에 주목하며 이들의 특징을 분석하고, 다가올 시대 변화를 전망한다. 이를 위해 매년 수백 개의 트렌드 사례를 수집하며, Z세대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알아볼 수 있는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또 Z세대의 실제 의견과 소셜 빅데이터를 통해 교차 검증한다.
지난해 진행한 연구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감정’이다. 가령 Z세대는 산책, 격불 등 감정 조절에 도움이 되는 여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감정 일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며, 감정 관리를 위한 나만의 루틴을 만들기도 한다. 생성형 AI를 자주 사용하는 20대 4명 중 1명(24.5%)은 AI를 통해 심리 상담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왜 Z세대에게 ‘감정’이 중요해진 걸까? 이는 오늘날 시대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초개인화와 장기 불황, 일상적 갈등 같은 요인들이 점점 심화되면서 불안과 피로가 누적됐고, 유별난 날씨 덕에 ‘기후 스트레스’가 더해지면서 감정의 소용동이를 낳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와 AI의 발전은 ‘FOMO’현상(소외불안증후군)'과 함께 불확실성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시대 환경 속에서 Z세대는 ‘변하지 않고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내면의 안정에 대한 관심은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해 4월 전국 15~64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삶에서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와 Z세대의 순위는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먼저 전체 순위에서는 건강(66.7%)이 압도적인 1위였고, 이어 체력(54.2%), 현금성 자산(52.7%), 멘탈·정신력(51.3%), 가족(50.1%) 순이었다. 반면 Z세대는 건강(1위, 55.7%)과 멘탈·정신력(2위, 55.0%)의 차이가 단 0.7%p밖에 나지 않았고 이어 체력(49.7%), 쉼·휴식(48.0%), 자존감(47.7%) 등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인식했다. 전체 순위에 있던 ‘현금성 자산’은 5위 밖으로 밀려났으며, 전체 순위에 없던 쉼·휴식, 자존감 등의 요소가 5위 내에 올라섰다. 이러한 데이터를 통해 Z세대가 감정 관리를 중시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Z세대가 감정 관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오늘날 관계 방식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이전 시대에는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친구에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나 감정을 해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느슨한 연대’를 넘어 ‘인지적 연대1’로 불리는 관계 방식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해 2월 전국 15~64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를 조사한 결과, 86세대와 X세대는 ‘힘들 때 의지가 되어주거나 위로해주는 것’을 1위로 꼽았다. 반면 Z세대는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는 것’(49.7%)을 1위로 꼽아 차이를 보였다.

또 Z세대는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41.0%)을 ‘의지·위로해 주는 것’(39.0%)보다 중시했다. 과거의 친구 관계가 모든 일상과 고민을 공유하고 의지가 되어주는 것이 당연했다면, Z세대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Z세대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콘텐츠에서 간접적으로 감정을 익히기도 하고, AI를 고민의 창구로 활용하며 직장 상사나 친구와의 관계 유지에 동원하기도 한다. 즉 Z세대에게 ‘감정 관리’는 내면의 안정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역량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 1. 개인의 취향과 지향이 세분화된 초개인화 시대, 서로 다름을 인지하며 관계를 가꾸는 Z세대의 특성을 드러낸 키워드.
Z세대의 감정 객관화 도구
Z세대는 비교적 객관적인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직시한다. 또한 개인화된 방식으로 감정 관리에 나선다. 먼저 Z세대가 감정 객관화에 주로 활용되는 도구를 살펴봤다. 최근 젊은 층은 ‘HSP(초민감자)’ 자가 진단 테스트를 한 뒤 SNS에 결과를 공유하곤 한다. 지난 수년간 한국인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활용됐던 MBTI 검사에 이어 ‘셀프 분석’에 진심인 Z세대 사이에서 이 HSP 테스트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HSP는 단순히 성격 파악 용도가 아니라, 평소 겪고 있던 감정적 불편함의 원인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Z세대는 부정적인 감정을 막연히 ‘기분 탓’이라고 치부하며 불투명하게 넘기기보다는, 지금 내가 왜 불안하고 왜 기분이 안 좋은지 객관적으로 알아보려 한다.

또 다른 ‘감정 객관화 도구’는 바로 AI다. Z세대는 AI를 업무나 학업을 돕는 데서 나아가, 평소 지니고 있던 고민에 대해 위로와 공감을 구하며 감정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해 10월 전국 15~59세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감정을 관리하기 위해 한 행동’을 조사한 결과(복수 응답), 20대는 ‘생성형 AI에게 질문 및 대화하기(38.8%)’ 응답률이 전체 응답자(20.0%)에 비해 훨씬 높았다.

객관적인 언어로 감정을 파악한 Z세대는 개인화된 방식으로 감정을 관리한다.
가령 스트레스, 피로, 무력감 등의 감정을 최대한 세밀하게 분류한 뒤 이를 코르티솔과 도파민, 멜라토닌 같은 호르몬과 연결 짓는다.
산책, 수면, 샤워가 특별해진 이유
객관적인 언어로 감정을 파악한 Z세대는 개인화된 방식으로 감정을 관리한다. 가령 스트레스, 피로, 무력감 등의 감정을 최대한 세밀하게 분류한 뒤 이를 코르티솔과 도파민, 멜라토닌 같은 호르몬과 연결 짓는다. 소셜 빅데이터를 통해 ‘코르티솔’ 키워드 언급량을 분석한 결과, 2025년 상반기 언급량(13만 1,676건)이 이미 2024년 언급량(9만 2,540건)을 1.5배 웃돌았다. 코르티솔의 연관어로는 관리·유지 맥락의 키워드가 두드러졌으며, 특히 ‘루틴(1,300%)’ 언급량이 폭증했다. 과거 질환·치료 영역에서 주로 언급되던 코르티솔이 이제 스트레스 관리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루틴의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Z세대의 루틴은 운동과 자기계발 등을 통해 ‘갓생’을 유지하고, 신체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에 집중돼 왔다. 그런데 이제 자기 감정을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수면’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틱톡 등 해외 SNS에서는 감정 관리와 관련한 수면 루틴으로 ‘다크 샤워’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크샤워는 강한 불빛이 코르티솔을 높이고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는데서 착안됐는데, 잠들기 전에 불을 끄거나 어두운 상태에서 샤워를 함으로써 수면의 질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해 10월 전국 15~55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한민국 20대의 과반(56.3%)도 수면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숙면을 통해 관리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피로·체력(57.3%)뿐만 아니라 스트레스(47.8%)와 기분(41.4%)을 꼽기도 했다.
‘무해력’ 다음 가치는 ‘다정력’
Z세대가 추구하는 메타센싱은 개인의 감정 관리에 그치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개선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Z세대의 인식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매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그중 하나가 바로 추구하는 롤모델이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 것이다. 어떤 해에는 ‘자신만의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 언급됐는데, 지난해에는 유독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응답이 많았다. 실제로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라는 유명인의 말이 SNS에서 어록으로 회자되기도 하고,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다정함이 인격이다』처럼 ‘다정’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평범한 일상생활 중 낯선 사람과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스몰토크 영상도 다정한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메타센싱은 우리 사회에 결핍된 다정함과 여유를 되찾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를 보면 Z세대가 메타센싱을 통해 채우려고 한 것은 지금 이 시대에 희소해지고 있는 다정함과 배려 같은 가치일지도 모른다. 이제 ‘감정 관리’는 역량의 하나로, 자기 관리의 핵심으로 여겨지면서 관련 영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메타센싱을 통해 Z세대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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