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복제하려는 마음과 뉴로모픽의 등장

뇌를 복제하려는 마음과 뉴로모픽의 등장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젊음을 유지한 상태로 오래 살고 싶어 한다. 노화가 일어나고 있는 육신에서 뇌만 떼어내어 젊고 건강한 신체로 옮겨 타는 상상은 영화에서도 자주 다뤄진다. 2008년 개봉한 영화 〈더 게임〉에서는 가난한 화가인 주인공이 병을 앓고 죽어가는 재벌집 회장과 젊음을 걸고 일생일대의 내기를 한다. 뇌와 척수를 모두 들어내어 교체하는 이식 수술을 통해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수술로 뇌를 통째로 옮기는 방식은 기술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현실에서 실현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더 안전한 방법, 예컨대 외과적 수술 없이 내 머릿속 정보를 복사하여 다른 몸에 업로드하는 방법은 없을까? 작년에 개봉하였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에서는 상상 속 기술을 통하여 이를 구현하였다. 빚에 허덕이던 주인공이 도망치듯 지원한 곳은 우주 개척선에서의 익스펜더블(소모품)이다. 말 그대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으면 대체되는 소모품이다. 주인공의 신체는 죽을 때마다 새롭게 프린팅되어 만들어지고 미리 백업해두었던 기억이 업로드되어 다시 임무에 투입된다. 육체는 소모품처럼 교체되지만 ‘나’ 라고 부를 수 있는 정체성은 데이터처럼 백업되고 영구히 보존되는 셈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인간의 몸을 3D 프린팅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직 공상과학에 가깝다. 두뇌 속 정보를 디지털 형태로 스캔하여 기록하고 다시 입력하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도, 수백억 개의 뉴런과 수조 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진 인간 뇌의 복잡성 때문에 여전히 요원한 기술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뇌를 백업하는 장면이 유난히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일상에서도 이미 기억의 외주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전화번호는 스마트폰이 대신 기억하고 있으며 길을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대신 지도 앱에 의존한다. 이렇게 인간의 인지 기능 일부를 디지털 도구에 맡기는 흐름은 결국 뇌의 정보 처리 방식을 기계로 옮겨 담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를 공학적 관점에서 번역한 기술이 바로 ‘뉴로모픽(Neuromorphic)’이다. ‘신경(Neuro)’과 ‘형태(Morphic)’가 결합된 단어인 뉴로모픽은 인간 뇌 자체를 복사한다는 SF적 발상보다는,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하며 최적화되어 온 뇌의 작동 원리를 반도체 설계에 모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뇌는 어떤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으며 기존 반도체의 그것과는 어떻게 다를까? 우리에게 익숙한 컴퓨터들은 대게 폰 노이만 구조라 불리는 설계에 따라, 계산을 수행하는 연산 장치(CPU/GPU)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DRAM)가 분리되어 있고 데이터가 둘 사이를 이동하는 구조이다. 문제는 데이터가 두 영역 사이를 오가는 과정에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됨에 따라 병목 현상(폰 노이만 병목)이 일어나고, 인공지능(AI) 모델처럼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수록 이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데이터가 이동하는 통로를 넓혀서 병목 현상을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전력과 발열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반면 뇌에는 신경계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뉴런과 뉴런끼리 연결되는 접합 부위인 시냅스가 그물처럼 촘촘히 퍼져 있다. 학습과 기억은 시냅스 연결 강도가 바뀌면서 신경망 회로 자체에 새겨진다. 즉, 계산하는 장소와 저장하는 장소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저장된 상태가 곧 다음 계산을 결정하는 재료가 되는 셈이다. 또한 뇌는 전구 하나 수준의 전력(약 20W)으로 감각, 언어, 추론 등 고차 기능까지 동시에 수행하는데, 기존 컴퓨터로 이 같은 작업을 처리하려면 훨씬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해야 한다. 이러한 고효율이 가능한 이유는 뇌에서 모든 정보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것이 아닌, 필요할 때만 적절히 반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귀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지만 모든 소리를 매 순간 분석하여 기록하지는 않는다.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혹은 ‘유리컵이 떨어졌다’처럼 의미 있는 입력값이 있을 때만 집중하여 반응한다. 이러한 방식은 불필요한 정보 처리와 저장을 줄여 에너지를 절약한다.

연산과 저장을 한 번에 처리하는 뉴로모픽 칩

영화 〈미키 17〉은 “기술적으로 인간을 복제하고 기억을 전송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인간의 존엄성과 '나'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과학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연산과 저장을 한 번에 처리하는 뉴로모픽 칩

뉴로모픽 반도체는 뇌의 이러한 작동 원리를 차용하여 기존 반도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흐름에서 생겨났다. 핵심은 정보의 저장과 계산을 같은 자리에서 처리하는 뇌의 특징을 반도체 회로에 옮겨 놓은 것이다. 뉴로모픽 칩 안에는 많은 인공 뉴런과 시냅스 소자1 가 촘촘히 배치되어 있는데, 시냅스 가중치를 소자에 직접 저장함으로써 회로 자체가 곧 기억이 되게 만들었다. 덕분에 매 연산마다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꺼내 CPU/GPU로 옮기는 대신, 저장된 가중치가 있는 자리에서 곧바로 연산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데이터 왕복으로 인한 비효율을 크게 줄였다. 마치 주방에서 요리사(연산 장치)가 재료(데이터)를 꺼내기 위해 냉장고(메모리)까지 왕복하느라 요리 시간이 늘어나지 않도록 냉장고를 요리사와 같은 공간에 두는 것이다.

데이터 왕복을 줄인 이유는 단순히 계산 속도를 높여서 최대치의 성능을 내는 것이 아니다.

뉴로모픽 칩이 겨냥하는 목표는 우리 뇌처럼 필요한 순간에만 계산 능력을 발휘하여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아무 변화 없는 장면을 계속 보고 있으면 뉴로모픽 시스템은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에너지를 아끼는데, 우리가 조용한 풍경을 볼 때 뇌가 활동하지 않고 쉬는 것과 비슷하다. 뇌가 잘하는 것은 끊임없이 계산하는 것이 아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이고, 뉴로모픽은 그 특징을 반도체 회로에 옮겨 놓은 기술이다.

  1. 1 뇌의 시냅스처럼 인공뉴런 간의 연결 강도를 조절하는 장치

피지컬 AI 시대에서의 가능성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신경(Neuro)’과 ‘형태(Morphic)’가 결합된 단어인 ‘뉴로모픽(Neuromorphic)'

피지컬 AI 시대에서의 가능성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이 가장 빛나는 무대는 최근 주목받는 피지컬 AI 분야이다. 피지컬 AI는 ChatGPT처럼 화면 속에서만 판단하고 답을 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카메라와 촉각 센서로 현실 속 정보를 받아들이고 모터, 관절 등을 직접 움직여 결과를 만들어내는 AI를 일컫는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6’에서도 피지컬 AI가 큰 화두였다. 현대차그룹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차세대 전동식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틀라스를 공개하며 로봇 대중화의 비전을 보여주었고, LG전자는 혼자서 빨래를 접고 정리하는 가정용 휴머노이드를 선보여 화제를 끌었다. 피지컬 AI가 더 이상 연구실 안에서만 구현되는 미래 기술이 아닌, 산업 현장과 가정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물리적인 신체가 생기는 순간 AI의 고민거리도 바뀐다. 창고에서 박스를 집는 로봇팔은 미끄러짐을 감지한 즉시 힘을 조절해야 하고, 자율주행 자동차는 교차로에서 보행자의 작은 움직임에도 바로 반응해야 한다. 획득한 영상을 클라우드로 보내고 답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ms(밀리초) 단위의 지연이라도 생긴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로봇은 콘센트가 아니라 배터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충분히 긴 가동시간 역시 중요해진다. 또한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집 안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되면 프라이버시 문제도 생긴다.

뉴로모픽은 뇌처럼 변화가 있을 때만 선택적으로 작동하고 연산과 저장을 한꺼번에 처리함으로써, 속도 지연과 전력 소모 문제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다. 여기에 변화가 일어난 부분만 민감하게 포착하는 이벤트 기반 센서가 결합되면 로봇은 꼭 필요한 정보만 받아 처리하게 되어 데이터양이 확연히 줄어들고, 네트워크 연결이 불안정하더라도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데이터 처리가 외부 클라우드를 통하지 않고 기기 내부에서 종료되기 때문에 데이터 유출과 같은 프라이버시 문제에서도 유리하다. 피지컬 AI 시대에서는 거대한 두뇌보다 현장에서 가볍고 빠르게 판단하는 신경칩이 더 절실하고, 뉴로모픽이 바로 그 역할인 것이다.

작은 AI가 일상이 되는 시대

작은 AI가 일상이 되는 시대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뉴로모픽 반도체는 점차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전망이다. 공장 로봇과 자율주행 자동차뿐 아니라, 스마트폰 카메라, 소음 차단 이어폰, 음성 인식 스마트워치 등 주머니 속 작은 기기들까지 필요한 순간에만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개인 정보는 안전하게 지켜진다. AI가 탑재된 기기는 더 작고 빨라지며 실생활에 밀착하여 존재하고, AI 기술을 일상 속 모든 사물에 적용하는 ‘엣지 AI’ 시대는 가속화된다. 언젠가 영화 〈미키 17〉처럼 뇌 전체를 백업하는 현실이 올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뇌의 방식처럼 움직이는 칩 덕분에 세상은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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