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래전부터 별을 올려다보며 길을 찾고, 의미를 읽으며,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다. 별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이끄는 지향이자, 우주와 나를 연결하는 창이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 역시 어린 시절 별을 바라보며 세상에 대한 질문을 품었다. 그 작은 궁금증은 결국 우주를 향한 탐구로 이어졌다. 이 글은 별을 통해 인간이 어떤 방향을 꿈꾸고, 무엇을 지향해왔는지를 따라가며, 우리에게 우주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되묻는다.

별을 바라보다 떠오른 질문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나서 자랐다. 그는 브루클린의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도대체 그것들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어른들에게 별은 단지 ‘하늘에서 반짝이는 빛’일 뿐이었다. 도서관에 달려가 ‘스타들(Stars)’에 관한 책을 달라고 하자 사서는 당시 유명했던 배우, 클라크 게이블 사진이 실린 그림책을 내놓았다. 그는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그저 평범하게 취급받는 별들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그가 ‘원하는’ 스타들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그의 눈앞에는 깜짝 놀랄 만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진 장대한 세상이 펼쳐졌다.게오르그 루카치는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고 말했다. 그에게 별은 길 없는 세계의 좌표, 떠도는 앎과 삶의 길잡이였다. 실제로 아라비아의 카라반들에게 별은 길 없는 막막한 사막에서 길잡이 노릇을 했다. 그들은 광활한 하늘에 펼쳐진 별들의 지도를 보며 사막을 가로질러 길을 찾아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에서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을 떠나 뗏목을 타고 이타카로 귀향할 때, 그를 인도한 것도 별들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목숨을 건 모험을 마치고, 목동자리와 큰곰자리를 보며 귀향의 돛을 올렸던 것이다. 그때 하늘과 땅, 우주와 인간의 삶은 하나의 질서 안에 연결되어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우주는 집과 같아서, 그 어디에서나 낯설어지는 법이 없었다.
예술과 사유 속에 새겨진 별
별을 소재로 한 작품도 여럿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눈에서 별은 새롭게 빛났다. <별이 빛나는 밤>에서 하늘은 일렁이며 해일의 바다처럼 격동하고, 그 위에서 별들은 폭발하듯 빛을 발하며 소용돌이친다. 정열과 고뇌, 희망과 절망, 고독과 사색, 불안한 상승과 찬란한 몰락의 징후가 그 격동 속에서 춤춘다. 루카치의 별이 우주와 인간이 화해를 이루는 세계의 상징이었다면, 고흐의 별은 그 화해가 무너진 자리에서 혼자 타오르는 불빛이었다. 이미 대지와 결별한 채, 아득히 먼 하늘에서 강렬하게 빛나는 별은 현실에서 잡을 수 없는 이상의 별이다. 그것은 저 너머 하늘과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만 빛난다. 해서 그의 붓질이 더욱더 강렬하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니체가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그대 안에 혼돈을 품어야 한다.”라고 말했듯이, 고흐는 온몸으로 혼돈의 별을 품고 살았다.

윤동주의 <별>은 내면에 침잠해 고요히 빛을 발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하고 고백하며 노래한 별은 작은 가시에도 깊은 부끄러움의 생채기를 내는 여린 도덕적 감수성이다. 별 하나마다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를, 그리고 어릴 적 친구들과 작고 여린 것들과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름을 불러볼 때, 그 별은 모두 그리움을 향해 빛난다. 그것들은 별처럼 너무 멀리 있어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 그 아득함 속에서 그리움이 빛난다. 윤동주의 별 역시 고흐의 별처럼 닿을 수 없는 곳, 그 너머에서 빛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윤동주의 별은 조용히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현실적 좌절과 자기 성찰, 그 부끄러움과 그리움을 견디며 내면 깊은 곳에서 별은 꺼지지 않는 빛으로 남아 있다.

알퐁스 도데의 <별>도 떠오른다. 프로방스의 뤼브롱산에 양치기 소년이 외로이 살고 있다. 식량 배달을 온 주인집 아가씨 스테파네트가 소나기에 강물이 불어 귀가하지 못하고 산장에 머문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별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가씨는 소년의 어깨에 가만히 기대어 잠든다. 프랑스 시골 마을의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나고, 자랑처럼 무성한 풀밭 언덕에 앉아 있는 소년 소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덜 익은 풋사과마냥 풋풋한 사랑이 소년의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광대한 우주가 집처럼 포근하다. 그 소박한 이야기 안에서 하늘과 땅, 별과 인간이 고요한 세계 안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사랑이라는 별이 반짝 빛난다. 너무나 소박하고 순수해서, 여기에 루카치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오직 고독과 정적의 신비로운 세계가 있을 뿐이다.
우주와 인간을 연결하는 시선
칼 세이건은, 지구를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라고 한다. 인간은 뜨거운 그 무엇을 저 광대한 우주와 공명하며, 우주를 자신의 편안한 집으로 받아들인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저 별로부터 태어난 코스모스의 자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별은 현실 너머 아득한 어딘가에서 언제나 빛나고 또 우리들 가슴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루카치의 별, 고흐의 별, 니체의 별, 윤동주의 별, 도데의 별이 빛나고 있다. 브루클린의 밤하늘 아래 서 있던 소년의 가슴 속에서도 그 별은 밝고 맑게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칼 세이건에게 별은, 단순한 천체의 일종이 아니라 이 모든 의미를 함축하는 우주로 활짝 열린 창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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