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

    생존 조건 vs 연구 조건
    공학 설계에는 안전 계수(Safety Factor)가 있다. 공학자들은 가능한 최악의 상황보다 몇 배 이상 여유 있게 설계하고, 검증된 방법론을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이는 구조물의 내하중이 오차 범위를 넘으면 파국이 오기 마련이며, 탐사선이 예상과 다르게 거동하면 임무가 끝나기 때문인데, 이처럼 공학자에게 숫자를 보수적으로 잡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반면 천문학 논문에는 종종 30~40%의 측정 불확실도가 그대로 실린다. 공학의 세계에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불확실성은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현재 기술의 한계를 솔직히 드러내고 그 범위 안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과정 자체가 과학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델이 데이터와 맞지 않을 때 과학자는 흥분한다. 이론이 틀렸다는 뜻이거나, 미처 고려하지 못한 물리 과정이 숨어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라는 문장이 논문의 핵심 결론이 되는 세계가 과학이다.
    천문학 논문에는 종종 30~40%의 측정 불확실도가 그대로 실린다.

  • 천문학자들에게
    10% 정도의 오차는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 시간

    10년의 계산 vs 46억 년의 해석
    2004년 3월, 유럽우주국(ESA)은 혜성 탐사선 로제타와 탐사 로봇 필레를 실은 아리안 5호를 쏘아 올렸다. 흥미로운 점은 탐사선의 목적지인 혜성 67P는 그 자리에 없었는데, 이는 공학자들이 10년 8개월 뒤 만날 자리를 미리 계산해 쏜 것이었기 때문이다. 로제타는 지구와 화성의 중력을 차례로 빌리며 궤도를 수정했고, 2011년에는 심지어 전력을 아끼기 위해 대부분의 기기를 끄고 2년 반의 동면에 들어갔다. 공학자들에게 이 10년은 그야말로 정밀한 계획과 검증의 연속이었으며, 어떻게 하면 이 탐사선이 10년 뒤 혜성과 정확히 만나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을 향해 모든 것이 수렴되어 있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그 10년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혜성은 46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될 당시의 물질을 거의 그대로 품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온도가 낮고 화학 반응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우주 공간에서 혜성 속 얼음이 태양계 초기의 조성을 고스란히 보존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학자들이 혜성 67P에 탐사 로봇을 보내려 했던 것은 현재의 혜성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46억 년 전의 기록을 읽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공학자의 10년과 과학자의 46억 년이 같은 탐사선 안에 담겨 있었다.
  • 위기

    수습 vs 발견
    로제타가 혜성 67P와 성공적으로 조우한 뒤, 2014년 11월 12일, 착륙선 필레는 혜성에 착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필레는 예정 착지점에서 약 250m 벗어난 절벽 그늘 아래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역추진 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두 번 튕겨 오른 끝에 태양광이 거의 닿지 않는 자리에 불안 정하게 자리 잡은 것인데, 남은 배터리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60시간 남짓이 었다. 이에 공학자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가능한 모든 기기를 작동시키고 데이터를 지구로 전송하기 위해 비상 시퀀스를 가동했는데, 수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 은 자원을 최대한 쥐어짜는 것이 공학팀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과학팀은 그 60시간 안에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필레에 탑재된 질량 분석기 COSAC가 첫 번째 착지 후 25분 만에 혜성 표면의 먼지를 흡입해 분석한 결과, 유기 분자 16종이 검출되었는데 그중 4종은 이전까지 혜성에서 발견된 적 없는 성분이었다. 계획에 없던 착지 위치가 계획에 없던 발견을 가져온 셈으로, 공학자가 위기를 수습하는 동안 과학자는 그 위기 안에서 생명의 재료를 건져냈던 것이다.
  • 제작 vs 방향

    1990년 허블 우주망원경이 발사되었을 때, 주경에 미세한 결함이 발견되었다. 구면수차 오차는 2.2㎛에 불과했지만, 이 작은 오차 때문에 허블은 흐린 눈으로 우주를 봐야 했다. 이에 1993년 우주왕복선인 데버호가 허블에 도킹해 교정 광학 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무려 우주에서 망원경을 수리한 것이다. 그리고 공학자들이 시력을 되찾아준 뒤에야 과학자들은 허블로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임을 확인 하는 데이터를 쌓았고,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관측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한편, 2021년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 경(JWST)은 처음부터 수리가 불가능한 곳을 향했다는 점에서 허블과 달랐다.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라그랑주 포인트 L2로, 주경 6.5m를 18개 조각으로 접어 우주에서 펼쳐 밀리미터 이하의 정밀도로 정렬하고, 중적외선 장비를 영하 266도 가까이 냉각하는 모든 과정이 단 한 번의 기회에 이루어져야 했다. 이는 공학자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정교한 눈이었다. 하지만 그 눈이 무엇을 봐야 하는가는, 언제나 그래왔듯 과학자들이 결정한다. JWST는 지금 막 태어나는 별 주변의 원시행성계 원반을 들여다보고, 수십억 광년 밖 초기 우주의 은하를 포착하고, 외계행성의 대기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지구 바다의 기원에서 우주 최초의 별빛까지—공학이 만든 눈이 향하는 곳마다, 과학은 새로운 질문을 건진다.

    아쉽게도 로제타 탐사선의 착륙선 필레는 예정 착지점에서 약 250m 벗어난 절벽 그늘 아래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공학자와 과학자는 서로 다른 일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 신호

    유지 vs 해석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는 현재 지구에서 약 240억 킬로미터 떨어진 성간 공간을 비행 중이다.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지금도 신호를 보내오는 것은, 공학자들이 임무 초기부터 태양에서 계속 멀어질수록 태양광 발전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고 방사성동위원소 열전기발전기(RTG)를 탑재한 덕분이다. 플루토늄-238의 반감기가 약 87.7년이라는 점을 활용해 수십 년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공학자들의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보이저 1호에 진짜 흥분한 순간은 따로 있었다. 2012년 보이저 1호가 태양권계면을 벗어나 성간 공간에 진입했을 때, 그곳의 플라즈마 밀도와 자기장 방향이 기존 이론과 달랐음이 밝혀졌던 그 순간이다. 이처럼 수십 년의 비행 끝에 도달한 장소가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는 점은 과학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공학팀이 반세기를 버티게 한 탐사선이, 결국 과학자들에게 이론을 고쳐 쓸 기회를 가져다준 셈이었다. "왜 성간 공간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른가?" 이 질문은 지금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는 공학자들이 차려준 밥상에서 과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 공학자들이 완벽히 설계한
    보이저 1호가 출발할 때만 해도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은
    과학적인 질문을 해결할지에
    대해 예측한 사람들은
    드물었을 것이다.
  • 두 질문이 교차하는 좌표

    필레가 절벽 그늘 속에 쓰러졌을 때 공학팀은 배터리를 살렸고, 과학팀은 그 배터리로 유기 분자 정보를 건졌다. 허블의 거울에 결함이 생겼을 때 공학팀은 우주에서 허블의 눈을 수리했고, 과학팀은 그 눈으로 우주의 나이를 밝혔다. 보이저 1호가 성간 공간에 진입했을 때 공학팀이 신호를 유지했고, 과학팀은 그 신호로 이론을 고쳐 썼다. 매번 같은 방식이다.
    이처럼 우주 탐사의 역사에서 공학과 과학이 완전히 분리된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공학이 가능성의 한계를 밀어붙이면, 과학은 그 한계 너머에서 새 질문을 기다렸고, 또 그 질문이 다시 다음 임무의 방향을 만든다.
    즉, 두 시선은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인류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 그리고 아직 묻지 못한 것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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