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말, 독일 남서부 소도시 카를스루에(Karlsruhe)의 한 광장에 수백 명이 모였다. 이들은 모두 포크와 편의점 푸딩 한 컵을 들고 있었다. 몇 주 전, 누군가 시내 곳곳에 종이 한 장을 붙였다. “우리 같이 포크로 푸딩 먹을래요? 날짜, 장소, 시간은 여기.” 주최자도 없었고, 참가비도 없었고, 이유도 따로 없었다. 약속한 시각이 되자 사람들이 제법 모였다. 포크로 푸딩 뚜껑을 두드리며 카운트다운을 세다가 동시에 포크를 꽂았다. 웃음이 터졌다. 10분쯤 지나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모양새는 황당하지만 모두의 표정은 즐거웠다. 누군가 이 장면을 틱톡에 올렸고, 이를 팔로워 8만여 명의 로컬 밈 계정이 퍼뜨리면서 소문은 순식간에 독일 전국으로 번졌다. 비슷한 모임이 하노버에서는 1,000명 이상이 모였고, 베를린·빈을 넘어 뉴욕 센트럴파크까지 닿았다. 1 이런 현상을 ‘숏셜링(Shortsocial-ing)’이라고 부른다.
  • 1 Germans meet up to eat pudding with forks — and the trend goes global The Washington post, 2025. 10. 07.
    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2025/10/07/germans-pudding-forks-trend/
숏폼처럼 소비되는 인간관계
숏셜링(Shortsocial-ing)은 Short(짧은)와 Socialing(어울리기)을 합친 신조어로, 잠깐 모였다가 가볍게 흩어지는 일회성 모임을 가리킨다. 보통 ‘모임’이라 하면 같은 멤버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며 관계를 쌓아가는 형태를 떠올리기쉽다. 숏셜링은 방향이 다르다. 소속감도 없고, 다음 약속도 없다. 포크 푸딩 모임처럼 어떤 ‘경험 하나’를 빌미로 모이고, 끝나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계속 하지 않아도 되고,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 순간이 전부다. 모임이 숏폼 콘텐츠처럼 짧게 소비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단기성이 오히려 강점이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가장 큰 장벽은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인데, 숏셜링은 콘셉트 자체로 그 불안을 지워버린다. 포크로 푸딩을 먹는다는 황당한 상황 앞에서는 어색함도 쑥스러움도 설 자리가 없다. 다 같이 웃으면 그만이다. 실력도 준비도 필요 없고, 별로면 그냥 안 오면 된다. 참여해도 잃을 게 없는 구조. 관계에 조심스러운 세대가 그나마 문을 열 수 있는 조건이 여기 있다.
수요일의 저녁식사부터 딘타이펑 원데이 클래스까지
한국 숏셜링의 대표는 ‘경도’다. 참가자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도심이나 공원에서 ‘경찰과 도둑’ 놀이를 즐기는 모임이다. SNS나 동네 커뮤니티 앱에 올라온 모집 글에 댓글을 달고, 정해진 날 지정 장소에서 게임에 열심히 참가하면 된다. 가수 이영지가 주최한 경도 모임처럼 10만 명에 가까운 신청자가 몰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10명 안팎이 동네 공원에서 뛰어놀다 헤어진다.
이어서 ‘감자튀김 모임’도 화제가 되었다. 동네 패스트푸드점에 모여 감자튀김을 대량 주문해 나눠 먹는 게 목적이다.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는다. 서너 명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감자튀김을 쌓아놓은 채 잡담을 나누다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해외에서는 ‘Timeleft’라는 랜덤 저녁식사 매칭 플랫폼이 숏셜링을 담당한다. 알고리즘이 성향 기반으로 매칭한 6명에게 수요일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어준다. 매칭된 참가자는 전날 그룹원들의 국적과 직업군 정도만 알게 된다. 식당 주소는 당일 오전에 공개된다. 시간에 맞춰 주소를 찾아가 예약석에 앉아서 할 일은 밥을 먹는 것뿐이다. 식사 후에 친해지는 경우 연락처를 나눌 수 있지만, 그날로깔끔하게 끝내도 전혀 문제없다. 낯선 사람 5명과 함께 하는 저녁 세 시간이 재밌으면 성공이다. 2023년 프랑스에서 시작해 현재 55개국 250개 도시에서 운영 중이며 월 참여자가 15만 명에 이른다.
런던의 Wharf Connect는 일종의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커뮤니티다. 커리어 워크숍부터 펍에서의 퀴즈 이벤트는 물론, 딘타이펑에서의 만두 빚기, 스시 만들기 같은 요리 체험을 일회성으로 개최한다. 2 이런 이벤트는 수강료를내고 무언가를 배우는 클래스가 아니라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로서의 의미가 짙다. 보스턴을 중심으로 참석자들을 모아 그림, 연극, 시 등 예술작품의 감상을 나누는 ‘더 자 (The Jar)’,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학벌, 직업, 날씨 등의 잡담 없이 바로 정해진 주제로만 대화를 이끌어가는 모임, ‘스킵 더 스몰 토크(Skip the Small Talk)’ 등도 모두 비슷하다. 3
  • 2 From dumpling-making to pub quizzes: Gen Z’s recipe to making friends in real life CNBC, 2025. 08. 19.
    https:// www.cnbc.com/2025/08/19/gen-z-workers-are-going-to-irl-networking-events-to-find-friendships.html
  • 3 When Did It Become So Hard to Make Friends? BOSTON, 2026.03.01
    https://www.bostonmagazine.com/news/2026/03/01/boston-making-friends-loneliness/
외롭지만, 깊어지긴 싫다
숏셜링이 최근 주목받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외롭다는 데 있다. 2026년 발표된 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 건강 조사에 따르면 청년 남성의 41.7%, 여성의 55.6%가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4 해외도 마찬가지다. 2023년 미 국 공중보건국은 외로움이 만연한 현상을 공중보건 위기로 규정하기도 했다.
외롭다면 가까운 사람을 만들면 될 것 같지만, 많은 이들이 깊은 관계에 따르는 비용을 부담스러워 한다.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고, 서로의 근황을 챙겨야 하고, 빠지면 눈치가 보인다. 모임에 한 번 나갔다가 맞지 않다 싶어도 이미단체 채팅방에 초대되어 있다. 연결은 원하지만 그 무게는 버겁다. 그래서 오히려 한번 만나 사회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짧고 휘발성 있는 만남 쪽으로 향한다.
숏셜링은 바로 이 지점을 채워준다. 연결은 되지만 구속은 없는 관계. 데이팅 앱 Hinge가 2025년 3월 영국 Z세대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5%가 외로움을 경험한다고 답하면서도, 70%는 낯선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모임이 내세우는 단순하고 명확한 콘셉트가 유효하다. 포크로 푸딩을 먹는다는, 경찰과 도둑을 하고 만두를 빚는다는 구체적인 행위가 있으면 어색함을 버틸 이유가 생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는 불안이 사라지는 것이다. 콘셉트가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한다.
  • 4 청년이 꼽은 건강 위협 1순위…남성은 경쟁, 여성은 성차별 서울신문, 2026.03.02

한 번 연결되면
쉽게 끊기 어렵고, 맞지 않아도
빠져나오기 눈치 보인다.
연결의 문턱은 낮아졌는데,
관계의 무게는 오히려 무거워진 시대다.
주최자 없이도 퍼진다
숏셜링의 또 다른 특징은 기획자 혹은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독일 포크 푸딩 모임의 주최자는 지금도 미상이다. 경도 모임도, 감자튀김 모임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모집 글 하나를 올리면, 모르는 사람들이 댓글로 신청하고, 정해진 날 약속 장소에 나타나 모두 같은 눈높이에서 먹고 놀다가 헤어진다. 준비된 프로그램도 없고, 진행을 이끄는 MC도 없다. 그냥 모인다. 그냥 한다. 그리고 그냥 흩어진다.
기존의 방식대로 동아리를 만들려면 규칙이 필요하고, 행사를 열려면 예산이 필요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려면 운영진이 필요하다. 숏셜링은 그 모든 것을 생략한다. 나에게 명령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지켜야 할 룰도 부재한다. 진입 장벽이 없으니 참여가 쉽고, 부담이 없으니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 이 느슨함이 오히려 확산의 동력이 된다.
다음 포크푸딩은 뭐가 될까
인간은 온라인만으로 살 수 없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같은 공간에서 웃음을 나눠야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문제는 그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계의 무게중심은 온라인으로 옮겨갔고, 지금은 누군가와 공간을 직접 공유하는 경험 자체가 드문 일이 됐다.
그렇다고 아무 관계나 맺기도 어렵다. 오프라인 만남에는 비용이 따른다. 한 번 연결되면 쉽게 끊기 어렵고, 맞지 않아도 빠져나오기 눈치 보인다. 연결의 문턱은 낮아졌는데, 관계의 무게는 오히려 무거워진 시대다.
숏셜링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생겨난 틈새다. 직접 만나되, 깊어지지 않아도 된다. 황당한 콘셉트 하나를 빌미로 모이고, 웃고, 흩어진다.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에 가깝다. 다음 포크푸딩이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든, 재밌어 보이면 사람들은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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