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동에 있는 근대문화유산 중 하나인 오웬기념각.
요즘 MZ세대 취향은 광주
벌써 60년이 지났다고 한다. 창억떡 말이다. 갑자기 웬 ‘떡 얘기냐’ 싶겠지만 이유가 있다. 요즘 창억떡으로 광주가 들썩여서다. 마치 빵 사러 대전에 가는 것처럼, 떡 사러 광주 가는 일이 빈번해진 것. 그 덕에 창억떡 본점이 있는 중흥동 일대가 연일 소란하다. 아침부터 대기 줄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물론, ‘쫀득+달콤+폭신’한 호박인절미 한 상자가 광주 곳곳을 누비다 서울까지 닿는다. 지역의 오래된 ‘맛’ 하나가 전국구 스타로 빛을 내기 시작한 셈.
이후 ‘떡집 중심’ 여행 루트도 자연스럽게 개척됐다. 창억떡에서 기아챔피언스필드(이하 기아챔필)나 동명동 카페거리로 향하는 동선이다. 그중 떡 사러 온 김에 혹은 야구 보러 온 김에 두 가지를 함께 즐기려는 MZ 여행객이 대폭 늘었다. 실제로 인근 버스정류장에 가면 인절미 박스를 든 채 기아챔필행 버스를 기다리는 원정 팬이 수두룩하다.
이런 이색 풍경을 가능케 한 배경에 기아챔필의 구조가 있다. 국내 최초의 개방형 통로를 갖춘 이곳은 먹으면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식후경 야구’의 성지다. 어느 자리에 앉든 경기가 한눈에 들어와 피크닉처럼 야구를 즐길 수 있다. 상상해 보시라. 호박인절미를 맛보며 ‘남행열차’를 떼창하는 시간을. 어쩌면 이 시간이야말로 지금의 광주를 가장 광주답게 여행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오월 광주는 여전히 햇살
2020년이었나. 광주광역시의 도시 브랜드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접한 것이. 당시 광주시민들은 ‘광주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5·18민주화운동’을 가장 많이 꼽았다. 두 사람 중 한 사람, 딱 절반이었다. 다시, 오월이 왔다. 광주의 오월,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명사화된 ‘오월 광주’는 잊어서는 안 될 ‘굴곡진 현대사’의 한 페이지이자 잊을 수도 없는 ‘투쟁의 기억’ 이다. 그래서 걸었다, 건물 곳곳에 총탄 흔적이 또렷한 전일빌딩245부터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최근 복원을 마친 옛 전남도청까지, 그날의 시간이 흉터처럼 혹은 훈장처럼 남아 있는 광주의 오늘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도 그 시간 안에 있다. ‘옛 전남도청’이라는 굵직한 현대사의 한 획을 끌어안은 곳. ACC는 이 귀한 공간의 역사적 가치를 안고 2015년 출발했다. 민주와 인권의 가치가 담긴 광주의 상징물들을 압도하지 않기 위해 도청 건물 아래에 둥지를 틀었고, 땅을 깊게 파낸 듯한 건축 구조 덕분에 주변이 온통 도로임에도 고요하고 여유롭다. ACC가 과거를 품은 채 현재와 미래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독립된 섬처럼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그 큰 섬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라이브러리파크와 하늘마당이다. 라이브러리파크의 개방식 서가와 하늘마당은 오래 앉아 멍을 때리기에도 좋고 누워 책을 읽기에도 좋다. 과거의 시간이 만들어준 현재 위에서 누리는 시간이라 더 안온한 것일 테다. 이 과거이자 현재인 광주의 시간을 조금 더 넓게 보고 싶다면 이동의 방식을 바꿔보는 것도 좋다. 518번 시내버스를 타는 것이다. 이름 그대로 5·18 사적지를 따라 이어지는 518번 버스는 금남로와 전남대, 국립5·18민주묘지 등을 잇는다. 오월의 볕이 따스하게 비쳐드는 버스 차창으로 누군가에게는 지나갔을, 하지만 누군가에겐 아직 끝나지 않았을 이야기가 스민다. 그래서일까, 5·18 사적지는 늘 ‘둘러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며 겪는 시간’에 가깝다.
광주 시민들의 푸른 사랑방이자 피크닉 명소인
ACC 하늘마당.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폐품을 모아 예술작품으로 꾸며낸
펭귄마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 극장인 광주극장 내부.
시간이 빚어낸 로컬의 맛

시간이 지난 듯 고인 풍경은 광주극장과 양림동에도 있다. 광주극장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 극장이다. 나무 재질로 꾸민 내부는 묵직하고, 빛바랜 홍보물에 쓰인 투박한 스텐실 서체는 클래식하다. 무엇보다 극장 입구에 걸린 영화 간판이 화룡점정.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포스터라 눈길 오래 머문다.
옛 흔적이 빼곡한 광주극장과 달리, 근대로 타임슬립한 듯 모던한 느낌이 다분한 양림동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또 전통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이, 예술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근대 시기 광주’의 얼굴이다. 아니, ‘근대의 얼굴’이면서도, 근대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지속적으로 담아가고 있는 ‘시간의 그릇’이다. 오늘 양림동을 걷는다는 건 그래서 그 모든 복합적인 시간과 공간의 층위를 구분 없이 둘러본다는 뜻이다. 그중 펭귄마을에서 한희원 미술관~이장우 가옥~오웬기념각~우일선 선교사 사택~이이남스튜디오~사직공원을 걸어 누비는 코스가 인기다. 만약 발걸음을 늦춰 취향에 맞는 몇 곳에만 온전히 머물고 싶다면, 우일선 선교사 사택과 펭귄마을, 이장우 가옥을 추천한다.
그러다 해 질 녘이 되면, 사직공원으로 길을 잡자. 사직공원은 ‘사직 빛의 숲’이 펼쳐지는 자리로, 밤이 되면 공원 내 산책로 800여 미터 구간이 빛으로 찬란해진다. 반딧불이처럼 날아다니기도 하고 하늘로 발사되기도 하는 빛의 무리들. 그 가운데 사직공원 전망대가 있다. 영화에서 보던 UFO처럼 독특하게 생긴 G타워는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아니 그 이상의 하늘로까지 빛으로 물드는 매혹의 정점이다. 전망대에 서서 밤하늘에 긴 궤적을 남기고 사라지는 레이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타워 바깥에서 빛 자체가 되는 타워를 감상하는 시간도 좋다. 하루 내 반짝이는 오월 속을 걸어서일까. 광주에서 누리는 시간은 늘 ‘겹겹의 시간이 살아가는 숲’을 잠시 빌려 보는 것 같다.

TRAVEL TIP

  • 창억떡집
    • 운영시간 06:00~21:00(연중무휴)
    • 문의 062 - 520 - 6000
  • 기아 챔피언스필드
    • 운영시간 경기 시작 2시간 전 개장
    • 입장료 8,000원~25,000원(좌석 등급별 상이)
    • 문의 070 - 7686 - 8000(예매 필수)
  • ACC
    • 운영시간 10:00~18:00
      * 수·토요일 20:00까지 연중 운영
      * 야외공간 06:00~22: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입장료 무료(일부 기획 전시 유료)
    • 문의 1899 - 5566
  • 광주극장
    • 운영시간 10:40~22:00
    • 입장료 성인 1만 원, 청소년 9천 원
    • 문의 062 - 224- 5858
광주에 살아보니 ‘노잼 도시’ 광주
눌러 붙어 살기엔 허벌나게 좋은 도시
김다빈 광주전남본부 기획관리실 대리

흔히 광주는 ‘볼 거 없는 노잼도시’의 대명사로 불린다.(투탑 노잼도시였던 대전이 탈출한 후 우리만 남았다.) 하지만 광주인들은 그 말에 은근한 미소를 짓는다. 광주는 요란하지 않아서 더 살기 좋은 ‘잔잔함의 역설’이 살아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5월이기도 하고, 최근 핫해진 호절미(호박인절미)를 사러 여행 겸 방문할 분들에게, 또 본사 발령으로 불가피하게 이쪽에 터를 잡은 직원들에게 눌러 붙어 살고 싶은 도시, 광주의 ‘잔잔함’을 키워드별로 소개하고자 한다.
트렌디함 속 여유 광주에서 가장 핫한 곳은 동명동이지만, 동명동과 마주한 광주의 랜드마크, ACC도 놓칠 수 없다. 특히 5월 중순부터 푸르른 잔디를 갖춘 하늘마당이 개방하는데 해 질 녘, 이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으면 화사한 봄밤의 여유가 피부에 닿는다.
걸음 끝 감각의 미식 동명동 카페거리, 일명 ‘동리단길’은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는 맛이 있다. 번잡한 메인 거리를 벗어나 골목을 걷다 보면 주택을 개조한 감각적인 가게들이 많으니 나만의 단골 가게를 만들어 보자. 특히 ACC 근처 골목엔 광주 여행 코스 중 하나인 ‘크림순대국밥’을 파는 식당도 있는데 느끼하지 않고 중독적인 맛이니 꼭 도전해 보시라.
함께 나누는 자연 나주에서 가까운 광주호 생태공원은 가족들과 5월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각종 테마로 조성된 공원 곳곳과 시원한 호수는 잠시 일상을 멈추기에 탁월하다. 이곳에서 슬쩍 넘어가면 담양이고 화순이라, 3대 전통 정원인 소쇄원을 구경하고, 무등산 드라이브 코스를 지나 상다리 휘어지게 나오는 보리밥 정식을 마주하며 왕이 된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깊은 풍경, 웰니스의 도시 무등산의 정기를 가득 느낄 수 있는 증심사 코스는 완만한 산책로와 수려한 풍광으로 건강과 여유를 동시에 챙길 수 있다. 흐드러진 나뭇잎이 만들어준 그늘 사이를 한참 걷다 내려와서 무등산 입구에 자리한 식당들을 하나 골라보자. 도토리묵과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주중의 피로를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약간의 도파민이 필요하다면,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크림새우를 먹으며 야구를 보자. 경기 결과에 따라 양쪽의 도파민을 모두 충전할 수 있다.

‘노잼 도시’ 광주에서 매일 도파민 터지는 재미를 찾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눌러붙어 살기에 이런 ‘잔잔함’과 ‘맛’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