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전기회사 설립으로
희망을 꿈꾸다
외세의 세력다툼 속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던 구한말,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황제는 우리 회사의 전신인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하고, 전차를 도입하면서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지금의 종로 2가 8번지 장안빌딩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 한성전기회사 설립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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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전기회사의 설립은 당시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한반도에서 날카롭게 대립하는 가운데 추진됐다. 고종 황제는 일찍부터 서울시내 전기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고종은 1896년 말부터 주한미국공사 알렌과 경인철도건설공사를 수행하기 위해 한국에 와 있던 콜브란과 접촉했고, 이 사업을 고종의 주도하에 황실의 기업으로 경영하되 건설과 운영은 콜브란이 맡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러시아를 비롯한 외세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광무 2년째인 1898년 1월 18일, 김두승, 이근배 두 사람의 명의로 전차, 전등, 그리고 전화의 시설 및 운영권을 농상공부에 신청했고, 1월 26일자로 허가를 받아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경복궁에 전등이 켜진 지 11년 만의 일이었다. 경복궁의 전등은 경복궁 전등소의 발전기와 직결된 개별적인 자가발전시설에 불과했으나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면서 중앙의 발전소에서 배전설비를 사용, 일반가정과 사무실 등에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한국에도 처음으로 근대적 의미의 전기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한성전기의 초대 사장에는 지금의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한성판윤 이채연이 선임되었는데, 이는 명목상 직위에 불과했다. 한성전기는 사장이 회사를 관장하고 업무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산업진흥정책의 일환으로 황실이 전액 투자해 설립한 회사였기에 실질적인 권력은 고종을 위시한 황실 권력층이 갖고 있었다. 이처럼 한성전기회사 설립에는 전기를 통해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고종 황제의 간절한 꿈이 담겨 있었다.
한성전기회사 신문광고.
그리고 초가집 사이에 배전주가 보인다.
- 한성전기의 대표사업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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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전기의 대표 사업은 전차사업이었는데, 전차는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신기한 전차를 타보기 위하여 도시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시승자는 연일 만원이었다. 한번 탄 사람은 동대문과 서대문 사이를 왕래하면서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재산을 탕진하였다고까지 구전되고 있다. 1899년 9월 중 1일 평균 승차인원은 약 2,170명, 평균 수입은 약 92원이었다고 한다. 인명사고로 폭동이 일어나 한때 전차사업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전차사업은 계속 확대되어 갔다.
전등이 공급된 당시의 진고개. 좁은 골목길과 그리고 초가집 사이에 배전주가 보인다.
- 전기 수요 급등과 동대문발전소 준공
- 전차사업에 이어 한성전기는 전등사업에도 관심을 돌렸다. 이때 전기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한성전기는 최초의 상업적 발전소인 동대문발전소를 1898년 12월 착공해 1899년 2월 준공했다. 75kW 발전설비를 갖춘 발전소였다. 발전소를 세운 자리는 현재 동대문종합시장이 있는 부지였다. 동대문발전소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벽돌과 아연 도금 지붕으로 지어졌다. 1901년 종로2가에 한성전기회사의 본사 사옥을 짓기 전까지는 이곳에 사무실과 격납고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경운궁에서 진고개, 남대문과 서대문으로 확대된 전등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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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보급의 첫 대상은 궁궐을 비롯해 외국공관이 모여있는 정동과 일본인 상가인 진고개, 그리고 남대문과 서대문 지역으로 계획되었다. 배전선은 먼저 전차용 배전주를 따라 가설하고 그 뒤부터의 연장선은 단독배전주를 세웠다. 시설공사가 완성됨에 따라 1901년 6월 17일 그 첫 번째로 경운궁에 전등 6개를 점등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영업용 전등이다.
경운궁은 지금의 덕수궁으로,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 1897년 2월 20일 이곳에 환궁하여 새로 거처한 궁이다. 황성신문 1901년 6월 17일자 기록에서 전등 시설 6개를 우선 점등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뒤에는 경운궁 전체에 500개 이상의 등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된다.
- 동대문발전소 전등 개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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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의 전기공급을 계기로 그 인근에 자리잡은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외국공관에도 전등이 보급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한성전기회사는 경운궁에 이어 진고개(현 충무로)의 일본인상가에도 이를 적극 권유하여 6월 말에 전등 약 600개를 보급했다.
한성전기회사는 전등사업의 개시를 기념하고 또 이를 시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1901년 8월 17일 저녁에 동대문발전소에서 ‘전등 개설식’을 가졌다. 정부의 고관과 많은 귀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엔진의 스위치를 눌러 발전기를 작동시켰다. 발전소 주변에 가설된 20개의 아크등과 주요 간선도로에 세워진 가로등이 일제히 점화되어 휘황한 불빛이 장안을 밝혔다. 시내는 온통 축제 분위기로 들떴고 발전소와 그 주변에는 1만여 군중이 모여들어 경탄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전등 개설식을 기념하여 8시부터 10시까지는 일반차량은 물론이고 특별전차까지 동원하여 운행했는데 초만원을 이루었다. 1년 전, 4월 10일 이래로 종로에만 세 개의 가로등을 점등하였으나, 이날 밤 11시부터는 전기철도 연변의 네거리 등에는 모두 가로등을 점등했다. 한편, 전기사업은 그 뒤 수요가 점차로 늘어나서 동대문발전소의 전력만으로는 공급이 부족하게 되었다.
동대문발전소의 굴뚝. 이 발전소에는 당시 합계 200kW의 발전설비가 설치되어 전차와 전등 설비에 전력을 공급했다.
- 용산 제2 발전소 건설
- 1903년에는 동대문발전소의 발전량만으로는 전기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1903년 용산에 제2의 발전소를 건설하고 매킨토시식 250kW 발전기 2대를 설치하는 한편, 남대문 내에는 변전소를 신설했다. 이 용산발전소는 지금의 마포대교 북단 원효로 쪽의 강변에 위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