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말고 또 다른 존재를 확인하는 감각
주말 오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 줄이 생겼다. 맛집이나 카페도 아니고, 팝업도 아니다. 전시 웨이팅이다. 타이틀은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 포스트 서브컬쳐’. 1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간 공간에는 독립 레코드숍, 독립 출판사, 독립 영화 상영관이 있었다. 백화점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파는 건 물건이 아니었다. 전시가 던진 질문은 단 하나였다. “Who made this?” 무엇을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왜,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를 먼저 묻는 곳.
공간은 세 가지 시선으로 나뉘었다. 취향을 탐색하는 FINDER, 수집하는 COLLECTOR, 소장하는 CUSTOMER. 관람객은 음악 씬의 아티스트가 직접 고른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독립 출판사의 문장을 손으로 넘기고, 리뷰어의 시선으로 큐레이션 된 독립영화를 마주했다. 70여 팀의 브랜드와 크리에이터가 각자의 세계관을 펼쳐놓은 이 공간은 결국 〈울트라백화점 서울〉 시즌 통합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그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 본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비주류라고 불렸던 것들이 한 공간에 모였을 때, 그게 더 이상 비주류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 묘한 감각. 지금 문화 곳곳의 씬에서 그 감각이 반복되고 있다.
++이태원에서 공중파까지

이태원 골목 어딘가의 클럽을 떠올려 보면 조금 더 선명해진다. 이태원은 오래전부터 어딘가에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주류 문화 바깥에 있던 사람들, 자신만의 언어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 골목에 자연스럽게 섞였다. 외국인과 내국인, 성 소수자와 예술가, 밤을 일터로 삼는 사람들이 뒤섞인 이 동네는 그 자체로 경계 밖의 공간이었다. 그 혼종의 에너지 위에서 테크노와 하우스 씬이 자랐다.
이태원역 3번 출구를 나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초록빛 네온사인이 하나 보인다. SNS 홍보도, 내부 인증샷도 없이 운영하는 곳. 안에서는 4/4박자의 킥 드럼이 새벽 내내 반복된다. 오버그라운드는 당신이 아는 노래를 들으러 가는 곳이고, 언더그라운드는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찾으러 가는 곳이라는 말처럼 이 씬은 철저히 찾아오는 사람들만의 세계였다.
비주류끼리 연대하며 만들어 온 공간, 그 자체가 이미 포스트 서브컬쳐의 원형이었다. 그러다 재작년, 걸그룹 르세라핌이 ‘Crazy’를 발매했다. EDM 기반의 하우스 비트 위에, 완벽하지 않아도 당당하게 나아가는 태도를 얹은 곡이었다. 결핍을 감추는 대신 결핍 그대로를 들고나와 비주류라는 감각, 어딘가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감각을 오히려 정체성으로 삼았다. 블랙핑크의 ‘뛰어’, 에스파의 ‘Whiplash’, IVE의 ‘BANG BANG’까지 하우스와 테크노의 문법이 걸그룹의 목소리를 타고 퍼져나갔다. 듣는 사람은 테크노를 듣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그 언어에 익숙해지고, 그 태도에 공명한다. 이태원 골목의 킥 드럼이 공중파 음악 방송 무대까지 걸어 들어온 것이다.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 포스트 서브컬쳐’ 포스터


각자가 자신만의 주류를 갖게 된 시대,
애초부터 비주류는
모두의 주류를 꿈꾼 적이 없다.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않은 것을 보러 가는 취향 선언
그 태도는 스크린 안에서도 반복됐다. 네오 소라 감독의 영화 〈해피엔드〉는 테크노 음악 동아리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감독 스스로 테크노를 좋아해 자신의 정치적 사상이 형성될 무렵 클럽에서 자유를 느꼈다고 밝힌 만큼, 이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근미래 도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AI 감시 시스템에 맞서는 건 영웅이 아니다. 테크노를 들으며 밤을 지새우고, 교장의 차를 직각으로 세워두는 발칙한 장난을 치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이다. 완벽하지 않고, 주류 서사에 끝내 편입되지 못하는 인물들. 관객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OTT가 일상이 된 시대에,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않은 것을 직접 찾아가서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취향 고백이다. CGV 아트하우스나 에무시네마 같은 소규모 상영관이 위기 대신 자신의 자리를 굳힌 것도 같은 이유다. 감독회고전이 팬덤을 만들고, GV가 끝나도 로비에서 대화가 이어진다. 그 영화를 봤다는 사실이 일종의 소속감이 되는 공간. 비주류 서사가 어느새 가장 선명한 취향 선언이 됐다.
++++“역시 난 비주류야, 킥킥”
이 흐름을 콘텐츠로 가장 영리하게 포착한 건 금융 브랜드 토스의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였다. 이들의 메인 콘텐츠 ‘B주류경제학’의 스핀 오프인 ‘B주류초대석’에는 힙합 프로듀서 허키 시바세키, 드러머 김간지, 문학 편집자 김민경이 출연한다. 이 셋이 모여 명작 영화 월드컵을 열고, 취향을 두고 한 시간씩 왁자지껄 떠든다. 금융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또한, 브랜드조차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숏폼이 지배하는 유튜브 생태계에서 영상 하나가 거뜬히 한 시간을 넘기는데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이 콘텐츠의 힘은 무엇일까.
허키 시바세키가 〈흑백요리사〉를 본 적 없다고 하자 김민경이 “역시 난 비주류야, 킥킥”이라고 받아친다. 그 짧은 한 마디가 댓글 창을 점령하며 밈이 됐다. 사람들이 웃은 건 재밌어서가 아니었다. 자기 안에 있던 감각을 누군가 먼저 말해줬기 때문이다. 비주류 취향에는 이중성이 있다. 동경하면서도 겹치기 싫고, 좋아하지만 유행이 되면 멀어지고 싶다. 그 모순을 콘텐츠가 먼저 자조적으로 꺼내 드는 순간, 시청자는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를 확인한다.
과거에 비주류 취향은 그냥 비용이었다. 재즈 레코드를 모으고, 독립 영화제를 쫓아다니는 일은 철저히 개인의 소비로 끝났다. 나만 좋아하는 것들은 그냥 나만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플랫폼이 그걸 바꿨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같은 콘텐츠 앞에 모이기 시작했고, 나만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됐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이걸 아는 사람’이라는 자기 자신의 어떤 버전을 소비하고, 알고리즘이 아니라 공명으로 묶인 자리. 그것이 지금 가장 단단한 시장이 되고 있다.
금융 브랜드 토스의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
+++++그 모순을 이제는 시장이 설계한다
다시 DDP 앞으로 돌아온다. 울트라백화점의 전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서브컬쳐란 유행의 속도에 반응하는 취향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맥락을 이해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연결을 선택하는 소비 방식.”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누구나 브랜드가 되는 시대, 당신은 지금 무엇과 연결되어 있나요?” 사람들은 이제 그 질문에 입장료를 내고 줄을 선다.
테크노는 여전히 모두의 음악이 아니고, 아트하우스 상영관은 여전히 비좁다. 비주류가 주류가 된 게 아니라, 비주류의 언어가 더 많은 자리에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브랜드를 지운 콘텐츠가 가장 강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자조가 가장 솔직한 공감이 되고, 비주류가 모인 자리가 가장 단단한 시장이 된다. 취향은 늘 개인적이었다. 다만 이제는, 그 모순까지 설계된다.
각자가 자신만의 주류를 갖게 된 시대, 애초부터 비주류는 모두의 주류를 꿈꾼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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