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OAD

시간의 숲,
군산

익숙하지만 새롭다. 중첩된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감각되는 곳, 군산. 군산은 근대와 현대와 미래가 뒤섞인 시간의 숲이다. 그래서일까. 군산에서 풍경은 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일상처럼 누비며 감각하는 것이고, 고인 듯 흐르는 풍경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면 되는 것이다. 어느 하나 거창한 것 없어도 죄다 낭만적이니, 그저 느긋하게 조금씩 느끼며 걸어볼 일이다.

  • Text·Photo 이시목(여행작가)
  • 수십 겹 ‘시간의 숲’을 만나러 오세요
    군산은 살아본 적 없지만 익숙해서, 또 살아보지 않아서 더 이끌리는 도시다. 그 이끌림의 기저에 근대가 있다. 그래서 군산 여행의 처음은, 근대적 풍경에서부터 시작함이 옳다. 우리나라에서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일본식 건축물이 가장 많고, 곳곳에 일본인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도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표적인 건물이 옛 군산세관과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이다. 여기에 동국사와 신흥동일본식 가옥, 초원사진관, 이영춘 가옥 같은 적산가옥이 더해지고, ‘뜬다리(부잔교)’와 째보선창 같은 수탈의 현장이 더해지면서 ‘현대 속의 근대’란 군산만의 독특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군산 내항 부근에 있는 근대문화거리가 이 같은 ‘근대의 풍경을 만나기에 가장 좋다.
    군산 내항은 지리적으로는 금강이 바다로 흘러나가는 지점에 있고, 경제적으로는 식민지 경제의 상징인 ‘미두장’이 운영되던 곳이다. 그만큼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이 빼곡해 과거를 반추하며 둘러보기에 좋다.
    그 출발점에 있는 곳이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다. 옛 군산역과 미곡취인소 등을 재현한 근대생활관과 역사박물관이 있어, 수탈의 역사와 함께 그 시간을 기꺼이 버텨 낸 백성들의 삶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부터 옛 군산세관을 비롯한 장미갤러리,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뜬다리’, 째보선창 등 ‘근대적 풍경’이 가까운 거리에서 줄줄이 이어진다. 여기에 경암동철길마을과 말랭이마을 같은 근현대의 풍경이 포개지면서 시간의 겹이 한층 풍성해졌다. 최근에는 군산시간여행쉼터와 우체통거리가 또 다른 느낌의 예술 공간으로 조성되면서 군산은 보다 넓은 시간대의 풍경으로 확장되고 있다.
    근대건축관으로 리모델링된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군산시간여행 쉼터에서 바라본 벽화
  • 버려진 건물들에 ‘꽃’이 피었습니다
    때로 시간은 멈춘 듯 흘러 풍경을 이룬다. 멎은 듯 보여도 흘러가는 ‘군산의 시간.’ 돌이켜보면, 그저 무난하게 흐른 시간이란 없었다. 도시의 시간이건 사람의 시간이건 삐걱거리며 덜컹거리며 흐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번성과 쇠락이 번복되는 ‘사람의 시간’ 안에서는 더하다. 상처 아물어 옹이진 자리, 그 굴곡의 공간에도 시간은 흘러 어느새 새로운 이야기가 담겼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기억은 가장 먼저 장미동에서 새로운 가치로 전환됐다. 장미동에 있는 근대 건축물 5개 동이 ‘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근대건축관으로 바뀌었고,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은 근대미술관이 됐다.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수탈한 쌀을 보관하던 창고는 장미공연장이 되었고, 광복 이후 위락시설로 사용됐던 적산가옥은 장미갤러리란 꽤 그럴싸한 옷을 입었다. 또 빨간 벽돌 건물이 인상적인 옛 군산세관은 벌써부터 호남관세전시관으로 이용 중이었고, 일본식 가옥 체험 공간인 여미랑(게스트하우스, 찻집, 주점)도 조성됐다.
    이 중 군산이 가진 시간의 겹을 감각하기 좋은 몇 곳을 느긋하게 조금씩 아껴 먹듯 거닐어 보자. 추천 도보 여행 코스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초원사진관~심리서점 쓰담~신흥동일본식가옥~말랭이마을~마리서사~동국사~우체통거리~째보스토리 1889~군산근대건축관~군산근대미술관~호남관세박물관~먹빵이하우스다. 코스라고는 하지만 눈길이 이끄는 대로 그저 흘러가면 될 뿐, 정해진 루트는 없다.
    다만 초원사진관과 심리서점 쓰담, 말랭이마을, 마리서사, 우체통거리, 째보스토리 1889, 먹빵이하우스 등은 최근 혹은 지금까지 주목받는 시간여행지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애잔한 그리움을 추억하기 좋은 초원사진관은 영화 속 두 주인공이 주뼛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나무 그늘까지 그대로인 곳. 그래서 이곳에서 영화 속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 같다. 우체통거리와 말랭이마을은 옛 풍경에 지금의 이야기를 덧입혀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 두 곳 모두 색색의 벽화와 조형물로 멋을 내 군산의 새로운 포토존으로 인기 상승 중이다.
    이곳들이 시간의 겹을 바라보며 과거를 추억하기 좋은 곳이라면, 심리서점 쓰담과 마리서사, 째보스토리 1889, 먹빵이하우스 등은 군산의 2025년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초록빛 창문이 자꾸만 시선을 잡아채 텍스트에 집중하기 힘든 심리서점 쓰담과 1920년대 적산가옥에 책을 들인 마리서사는 군산을 ‘책의 도시’로 확장시켜 나가는 동력이 되고 있고, 오래된 창고를 리모델링해 개장한 째보스토리 1889와 먹빵이하우스는 각각 해 질 녘 풍경이 예쁜 수제 맥주 양조장과 서까래가 매혹적인 북카페가 되었다. 덕분에 마냥 적막하고 쓸쓸하기만 했던 폐가옥과 폐창고가 군산의 미래를 여는 또 하나의 낭만적인 과거가 됐다. 지난 시간은 때때로 그렇게 쌓여 미래의 유산이 된다. 사람의 시간처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세트장으로 활용된 초원사진관
    심리서점 쓰담 내부
    산비탈을 뜻하는 군산 방언 ‘말랭이’에서 이름을 따온 말랭이마을. 지난해 작고한 故 김수미 배우의 옛집이 복원돼 있다.
  • 탱글탱글한 가을 맛,
    대하
    가을, 맛이 무르익는 계절이다. 군산은 풍성한 제철 음식으로 미식 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곳. 특히 가을이면 대하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 달달한 맛이 더해진다.
    대하는 알파벳으로 말하면 대문자 C자 형으로 구부러진 모습이다. 까맣고 동그란 눈알은 치켜세운 주먹처럼 불룩하고, 몸통보다 기다란 수염은 허공을 휘젓듯 유려하게 뻗어 있다. 누군가가 줄 세운 듯 가지런한 다리는 앙증맞도록 짧고, 껍질은 투명해 속이 다 훤히 비친다. 한 입 베어 물면 달큼한 육즙이 툭, 하고 터질 듯 살집 또한 두툼하고 탱탱하다. 적지 않은 이들이 가을마다 밀물처럼 서해로 밀려드는 건, 과장 조금 보태 모두 이 대하 때문이다.
    대하는 한자로 ‘큰 새우’라는 뜻이다. 그래서 ‘왕새우’라고도 불리고, 가을이 철이라는 의미에서 ‘가을 새우’라고도 부른다. 좀 더 정확한 제철은 산란기인 9월부터 11월까지. 이때가 ‘글리신’ 함량이 높아 대하 특유의 달달한 맛이 최고조에 이른다.
    물론 영양가도 맛에 버금간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대하는 대가리와 껍데기에 들어 있는 키틴(키토산) 성분이 혈압 조절과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노인의 굽은 허리를 펴게 한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칼슘이 풍부해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그래서 가급적 대하는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대하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인 ‘아스타잔틴’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익힌 대하가 노을빛처럼 붉은 것이 바로 이 성분 때문이다. 아스타잔틴은 체내에서 활성산소를 제거해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눈에도 직접적으로 작용해 눈 노화와 피로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그러니 이번 가을엔 몸이 투명하고 껍질이 단단한 대하를 골라 와 맛있게 먹어보자. ‘귤까기보다 쉽다는 대하구이’ 대신 올해는 대하를 푸짐하게 토핑한 피자를 만들어 먹으면 어떨까. 탱글탱글한 대하 한입에 가을이 올 테다. 기호에 따라 파인애플과 바질, 할라페뇨 등을 토핑해 먹어도 좋다.
슈림프피자 만드는 법
재료
토르티야, 대하, 토마토소스, 모차렐라 치즈, 올리브오일, 마늘, 소금·후추 (선택 재료 : 블랙올리브 할라페뇨, 파인애플, 방울토마토, 바질 등)
  1. 대하는 소금·후추로 간한 뒤, 다진 마늘과 함께 올리브오일에 볶아 익힌다.
  2. 토르티야 위에 토마토소스를 골고루 펴 바른다.
  3. 모차렐라 치즈를 그 위에 반 정도 올린다.
  4. 익힌 대하와 방울토마토를 올리고, 취향에 따라 선택 재료를 더한다.
  5. 160°C 에어프라이어에서 10분 정도 구워 치즈를 녹인다.
  6. 치즈가 녹으면 꺼내 파슬리가루를 솔솔 뿌려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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