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내리거나 찬 바람 불면 아침마다 하얀 서리꽃 피는 낭만정원, 시크릿가든.
  • 바람 하얗게 수런대는 숲
    겨울은 산천이 색을 벗는 계절이다. 자연 어느 것이라도 알몸 그대로의 색을 보이는 때. 그래서 겨울은 사계절 중 가장 순수한 때다. 여기에 순수의 결정체라 부르는 함박눈까지 펄펄 내려 쌓이니 천지가 다 하얀 ‘설국’이다. 하지만 여기, 눈이 내리지 않아도 겨우내 하얀 설국이 있다. 색을 벗어 더 선명한 흰색으로 반짝거리는 숲, 바로 인제에 있는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다. 바람이 휘돌면 수만 개의 흰 가지들이 수런대며 속삭이는 숲이다. 상상해보시라. 하늘로 뻗은 가느다란 가지와 희고 보드라운 수피의 자작나무 70만여 그루를. 누군가는 자작나무숲의 이런 풍경을 두고 ‘가녀리고 청순한 여인’을 닮았다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노인의 두피에서 뻗어 나온 머리털’ 같다고도 했다. 그만큼 흰색 특유의 질감이 잘 살아 있는 숲이다. 그런 자작나무숲이 더욱 맑은 은빛으로 빛나는 때는 눈이 내릴 때다. 만지면 신기루처럼 화르르 사라져버릴 것 같은 수십만 개의 눈 기둥이 펼치는 눈꽃의 향연이라니. 그야말로 누구나가 숨죽일 만한 몽환의 풍경이다.
    이토록 새하얀 절경을 자랑하는 자작나무숲은 지난 1974년부터 조성됐다. 1990년대 초 집중적으로 식재돼 현재 숲을 이루는 자작나무의 수령은 대부분 20~30년. 오래돼 큰 나무들이 사는 숲은 아니지만, 138만m² 의 숲 전부가 젊은 자작나무로 겨우내 하얀 솜털을 이고 산다. 그래서일까,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처럼 풍경은 아득하게 춥지만, 오래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포근한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춥지만 따뜻한 풍경’이라는 이율배반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을 울리니 말이다.
    자작나무숲이 본래 하얀 바람 부는 곳이라면, 남면 갑둔리에 있는 시크릿가든은 눈 내려, 혹은 바람 차 하얗게 수런대는 숲이다. 군사보호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돼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가 ‘트인 듯 은밀하게’ 펼쳐진다. 큰 수고 없이 도로(446번 지방도)변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매력. 눈 내려 바람 하얀 날이나 추워 서리꽃 찬란하게 피는 날 만나러 가볼 일이다.
  • 하얀 수피가 매혹적인 자작나무숲은 눈 내리는 겨울에 더 아름답다.
    • 누군가의 소원(돌탑)을 품고 앉은 겨울 백담사.
    • 자작나무가 빚어낸 설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풍경이 사람을 품는 순간이다.
  • 박하를 입에 문 듯 알싸한
    길을 달리고 또 달려도 산뿐이다. 설악산을 비롯해 향로봉, 응봉산, 점봉산, 대암산, 방태산, 주억봉, 가칠봉, 가리봉……. 사람이 사는 터전에 자연이 깃든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사람들이 포위당한 형국이다. 인제는 그만큼 산이 첩첩인 땅이다. 산이 첩첩이니 오랫동안 가는 길은 멀고 험했으며, 이 땅의 겨울 또한 길고 추위는 혹독했다. 오죽하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넋두리까지 생겨났을까. 인제 땅은 그토록 살기 가쁜 오지였고, 여전히 오지로 남아 있는 곳이 많은 땅이다. 본래 산이 많고 가파른 땅엔 고개도 많고 계곡도 깊은 법이다. 유독 높은 산이 많은 인제 땅엔 그래서 고개도 많고, 내도 많다. 예부터 인제 사람들이 진부령을 비롯해 미시령, 한계령, 곰배령, 단목령, 북암령, 조침령, 광치령 같은 고갯길을 넘어야 대처로 나가고 장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토록 궁벽한 산골이었기에 지금까지 산천이 청정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인제 땅의 겨울에서 차고 맑은 박하향이 나는 것도 이 때문이겠다. 하얀 자작나무숲에서도, 겨울이 하루하루 깊어가는 수많은 고개에서도 박하 잎을 한 입 베어 문 듯 알싸한 맛이 난다. 은비령을 넘어 당도해 마시는 필례약수는 그중에서도 최고다. 얼음장 같은 탄산약수니 싸한 쇠 맛이며 박하 향이 더 강할밖에. 인제의 방동약수며 남전약수, 개인약수 같은 명약수들도 모두 그렇게 알싸하다.
    마셔 몸을 이롭게 하는 필례약수터 곁엔, 몸을 데워 이롭게 하는 온천도 있다. 싸한 박하 향이 배어든 몸을 미끌미끌한 온천수가 부드럽게 감싸 추위에 싸해진 몸을 은근하게 달군다. 눈 쌓인 숲을 차경한 덕분일까. 노천탕의 네모난 틀 안에서 바라보는 설경이며 따뜻한 탕 안에서 즐기는 찬기가 오묘하게 조화롭다. 이곳에서도 싸한 박하향이 느껴지는 이유일 테다.
  • 찬 겨울이 거두어 안은 풍경
    눈이 한없이 쏟아지는 날엔 용대리로도 발걸음을 해야 한다. 진부령과 미시령을 넘어온 눈구름이 겨우내 솜털 같은 눈을 뿌려대 콧속마저 얼얼해지고 마는 용대리. 백담사 아랫마을이기도 한 이곳에는 특별한 겨울 풍경이 있다. 오직 겨울 인제 여행에서만 볼 수 있는 황태덕장이 첫 번째이고, 높고 찬 빙벽이 두 번째이다. 눈 속에 갇혀 하얀 백담사가 세 번째이고, 문학의 향기가 솔솔 피어나는 만해마을 일대(한국시집박물관 포함)가 그 다음이다.
    이 중 황태덕장과 백담사는 이 겨울 빼놓을 수 없는 인제의 상징이다. 특히 황태덕장은 겨울날 사람들이 혹한의 시간을 견뎌 만든 겨울만의 풍경이니 놓칠 수 없다. 관람 포인트는 용대삼거리에서 백담사 들목에 이르는 골짜기를 따르는 북천강변 일대. 눈 덮인 설산을 배경으로 수백 미터 길이의 덕장이 하얗게 펼쳐져 있고, 그 하얀 눈 무더기 속에서 살결 북실북실한 황태가 만들어진다. 인제의 찬 겨울이 마냥 고소한 이유다. 용대리의 황태가 혹한을 견뎌내 ‘열반의 맛’을 내는 동안, 백담사에서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드높다. 화려한 계절 다 지난 절집엔 고요만이 깃들어 하룻밤 묵어가기에도 좋다.
    하얀 겨울이 거두어 안은 사람들의 풍경은 합강정 쪽에서도 빛난다. 이웃해 들어앉은 산촌민속박물관과 박인환 문학관이 주인공이다. 산촌민속박물관에서는 산으로 빼곡하게 둘러싸인 인제 특유의 지역성을 다양한 전시물로 만날 수 있고, 박인환 문학관에서는 박 시인이 흩뿌려놓은 낭만과 마주할 수 있다. 박인환의 부조에 폭 안기듯 앉으면 그의 시가 나지막이 흘러나와 아득한 추위를 따뜻한 위로로 감싼다. ‘인제 와서 어쩌나 원통해서 못 가겠네’라는 아쉬움이 절로 밀려드는 시간이다.

TRAVEL TIP

  •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 운영시간: 09:00~17:00(입산 마감 14:00)
      휴무일: 매주 월, 화(공휴일이 월, 화와 겹치면 정상 운영)
      입산 통제: 매년 3월 2일~4월 30일 산불조심기간
      준비물: 아이젠 지참(및 착용) 필수
    • 입장료: 무료
    • 주차비: 5,000원(인제사랑상품권으로 전액 환급)
    • 문의: 033-463-0044
  • 필례 게르마늄 온천
    • 운영시간: 09:00~18:00(토 09:00~19:00)
      휴무일: 매주 수요일
    • 이용료: 성인 16,000원(수건 지참 시 2,000원 할인)
    • 문의: 033-463-5000
  • 백담사
    • 입장료: 무료(주차료 3시간 3000원, 이후 시간당 1,000원)
      도보 이동: 매표소~백담사 약 2시간 소요
      셔틀 버스: 매표소~백담사 편도 15~20분
      (용대 향토 기업 033-462-3009)
    • 문의: 033-462-6969
  • 박인환 문학관
    • 운영시간: 09:3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 관람료: 무료
    • 문의: 033-462-2086
인제에 살아보니

스위스 말고 인제

한준영 인제지사 고객지원팀 대리

처음에 인제가 어딘지도 모른 채 처음 발령받은 ‘서울 촌놈’은 어느새 5년차 인제 주민이 되었다. 춘천에 있는 강원본부에서 인제로 발령받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와 동기 둘을 데리러 춘천까지 직접 와 주신 전력노조 인제지회위원장님의 차를 타고 본 인제의 모습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처음 들어올 때 ‘대한민국 스위스, 인제’라는 간판이 우릴 반겼고, 4면 어디를 봐도 산이어서 ‘공기도 맑고 저녁에 별도 잘 보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사택을 봤을 때에는 시골의 면모가 느껴지긴 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정신없었지만, 적응하고 나서는 인제에서 많은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평일에는 업무도 하고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주말에야 온전히 내 시간을 보냈다. 먼저 가장 유명한 백담사를 가봤는데,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속 경사로를 따라 이동할 때는 기사님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운전 솜씨를 느낄 수 있었다.(놀이동산 어트랙션에 버금가는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백담사 입구에 도착해서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작고도 수많은 돌탑들과 시원한 냇물이 나를 반겼다. 다리를 건너 백담사에 들어가니 저절로 경건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름에는 유명한 12선녀탕길과 대승폭포에도 다녀왔다. 12선녀탕길과 대승폭포는 봄부터 가을까지 가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12선녀탕길은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에서 따 온 이름으로, 완만하게 4km 정도의 코스로 되어 있는데 올라가다 보면 ‘아, 저기가 선녀들이 목욕했던 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복숭아탕은 진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으로, 자연을 보며 힐링할 수 있다. 그리고 대승폭포는 거의 1km 직선 코스로 되어 있어 올라가기 매우 힘들지만, 코스가 짧아 금방 올라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생각이 복잡할 때 한번 올라가기 좋은데 내가 올라갔을 때는 마침 그 전날 비가 와서 보기 힘들다는 대승폭포의 물줄기를 볼 수 있었다. 정말 멋진 광경이었고, ‘폭포멍’을 때리면서 그간 쌓인 번뇌(?)를 털어낼 수 있었다.
겨울에는 자작나무 숲길이 정말 예쁘다. 자작나무숲에 가면 길이 미끄러워 다들 아이젠을 착용하고 걷고 있다. 조심조심 천천히 걸어가 마지막 자작나무 숲길에 들어서면, 커다란 자작나무숲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장관을 볼 수 있다. 서울 지하철역에서도 인제군과 자작나무숲 광고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가 보면 광고에 나온 사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인제에 가면 꼭 자작나무 숲길을 가야 한다고 하는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다. 계절에 따라 입산 통제시간이 다르니, 사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인제는 이런 자연 경관도 매우 아름답지만, 음식들도 매우 맛있다. 특히나 용대리에 있는 황태 맛집들은 정말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인제만의 자랑이다. 내가 서울에 살 때는 황태국은 그냥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맑은 국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제에서 먹고 나서는 황태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인제의 황태 요리는 다 맛있지만, 제일은 황태국이다. 황태 식당에 가면 황태국은 무조건 리필을 몇 번씩이나 했고, 그 맛에 반해 데려온 가족들도 황태국을 극찬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두부집도 정말 많고 맛있어서 인제에 온다면 황태와 두부는 꼭 먹고 가길 추천한다.
지금까지 인제에서 네 번의 새해를 겪으면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적었지만 내가 겪은 인제를 1/10도 표현하지 못했다. 인제는 래프팅, 설악산코스, 필례약수길 등 더 많은 것이 있으니 여행지로 인제를 선택하여 직접 겪고 느껴보길 바란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 당신의 여행지로 ‘대한민국 스위스, 인제’를 적극 추천한다. 물론 스위스에 갈 수 있다면, 스위스를 조금 더 추천한다.

  • 용대리 매바위 인공폭포는 겨울이면 거대한 빙벽장으로 변신한다.
  • 자작나무 숲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 인제에서는 하늘에서마저 박하향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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