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토피아 2〉가 새로운 사건과 모험으로 관객들을 다시 한 번 ‘모든 동물이 공존하는 도시’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 가상 도시에서는 토끼와 여우가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사자와 양이 같은 식탁에 앉는다.
하지만 포식자와 피식자가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가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주토피아〉는 유쾌한 동화를 넘어, 생물학과 신경과학의 전제를 시험하는 급진적인 설정에 가깝다.
〈주토피아〉가 흥미로운 이유는 동물들이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다. 서로 다른 종이 각자의 생물학적 조건을 지닌 채 하나의 사회 질서 안에 편입돼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포식과 회피, 경계와 공격같은 반응이 더 이상 개체의 생존 전략으로만 작동하지 않고, 규칙과 기술에 의해 관리된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는 실제로 가능할까. 동물의 본능과 행동은 어디까지 조정될 수 있으며, 이 질문은 왜 인간이 사는 도시로 되돌아오는가. 〈주토피아〉는 그 경계를 묻는 실험장이다.

토끼는 여우를 보기만해도 심박수가 올라간다

토끼는 여우를 보기만해도 심박수가 올라간다

영화와 달리, 현실의 동물 세계에서 포식자와 피식자는 같은 공간을 평온하게 공유하지 않는다. 토끼는 여우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심박수가 급격히 올라가고, 몸을 낮추거나 움직임을 멈추는 경계 행동을 강화한다. 생태학 연구에 따르면 포식자의 존재 또는 그 흔적만으로도 피식자의 스트레스 반응과 행동 양식은 즉각적으로 바뀐다. 행동생태학에서는 이를 ‘포식자 유발 공포 반응(Predator-Induced Fear Response)’이라 부른다.
이 반응은 학습의 결과라기보다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신경계의 기본 작동 방식에 가깝다. 포식자의 신호가 감지되면 개체는 상황을 판단하기 전에 회피와 경계 행동을 먼저 실행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카이로몬(Kairomone)으로, 포식자의 체취나 소변 속 분자가 피식자의 보습코 기관(Vomeronasal Organ)에 포착되면 곧바로 ‘이 공간은 위험하다’는 신호로 처리된다. 실제로 고양이를 직접 노출시키지 않고 관련 단백질 성분만 배치했을 때에도, 쥐의 움직임은 거의 멈추고 심박수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먹이 섭취와 번식, 휴식이 동시에 방해받아 생존 확률이 낮아진다.
흥미로운 점은 과학이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신경과학은 공포 반응을 ‘없애야 할 본능’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공포가 언제, 어떤 조건에서 과도하게 증폭되는지를 규명하고, 그 강도를 조절하는 데 집중해왔다. 공포 반응이 편도체와 특정 호르몬 회로에 의해 조절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환경 설계나 약물 개입을 통해 반응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충분한 먹이가 공급되면 포식자의 공격 행동은 감소하고, 위협 자극이 차단된 환경에서는 피식자의 스트레스 반응도 낮아진다.

규칙은 종을 초월할 수 있을까

규칙은 종을 초월할 수 있을까

〈주토피아〉 속에서 크고 작은 모든 동물이 동일한 법규를 지키듯이, 현실의 동물들도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늑대는 무리를 조직하고, 침팬지는 서열과 동맹을 이해하며, 코끼리는 수십 년간 유지되는 관계망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법칙은 보편적인 질서라기보다, 각종의 감각과 인지 능력에 맞춰 형성된 지역적 합의에 가깝다. 늑대 무리의 서열 규칙은 시각적 신호와 몸짓, 공격성 억제를 전제로 작동하고, 침팬지 사회의 동맹과 서열은 개체 간 기억과 장기적 상호작용 능력에 기반한다. 규칙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의미를 갖는 범위는 종 내부로 강하게 제한된다.
이 차이는 동물 인지과학 실험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쥐, 비둘기, 원숭이 등 여러 종은 즉각적인 보상이나 처벌이 뒤따르는 단순 규칙은 빠르게 학습한다.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고, 특정 행동을 하면 불쾌 자극이 사라지는 구조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적응한다.
그러나 규칙에 예외가 생기거나, 상황에 따라 적용 방식이 달라지는 순간 성과는 급격히 떨어진다. 이는 규칙을 ‘맥락 속 원칙’으로 이해하기보다, 특정 자극과 결과를 연결하는 연쇄 반응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신경과학적으로 보면 이는 맥락을 판단하는 뇌의 전전두피질 기능과 맞닿아 있다. 인간은 규칙을 추상화해 상황에 따라 재해석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규칙을 조건 반사에 가까운 형태로 저장한다. 같은 규칙이라도 적용 범위를 확장하거나, 타인의 의도를 고려해 유연하게 수정하는 능력은 제한적이다.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종이 동일한 규칙을 따른다고 해도, 그 규칙이 의미하는 바는 종마다 다르게 해석된다.

식탁 위에서 흔들리는 먹이사슬

〈주토피아〉가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포식자가 더 이상 피식자를 잡아먹지 않는 사회는 구조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현실에서 육식은 취향이나 윤리의 선택지가 아니다. 사자와 늑대 같은 상위 포식자는 고단백·고지방 식단에 맞춰 대사 경로와 소화 기관이 진화해 왔고, 이는 먹이 선택의 생리적 한계를 규정한다. 특정 아미노산과 지방산 결핍이 장기간 이어지면 근육량 감소, 면역 기능 저하, 생식 이상으로 이어진다.
이 한계를 우회하려는 시도가 배양육과 대체 단백질 기술이다. 배양육 연구의 핵심은 고기 모양을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동물 세포가 자랄 수 있는 지지 구조인 스캐폴드(Scaffold)를 설계하고, 조직 내부까지 산소와 영양분이 전달되도록 미세 채널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식물성 셀룰로오스나 콜라겐처럼 섭취 가능한 재료로 다공성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서 근육 세포를 배양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실험실 수준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구현 가능해지면서, 이론적으로는 사자도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고도 필요한 영양을 공급받을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먹이사슬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배양육은 여전히 높은 에너지 투입과 비용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먹이사슬은 에너지 흐름의 구조다. 포식자가 제거되면 초식동물 개체 수가 급증하고, 식생이 붕괴되며, 생태계 전체의 생산성이 하락하는 현상은 여러 생태계에서 반복적으로 관측됐다.

에너지는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이동하며 점점 줄어든다. 이 때문에 먹이사슬의 상위 단계로 갈수록 유지 가능한 개체 수가 줄어들며, 포식자는 초식동물의 과도한 증가와 자원 고갈을 막아 생태계의 흐름을 안정화한다.
서로 다른 반응과 욕구가 충돌하지 않도록, 도시의 흐름을 시스템이 대신 조정하는 ‘도시 두뇌(City Brain)’ 개념도
출처: 위키피디아, ChatGPT/이종림

도시라는 거대한 실험실

도시라는 거대한 실험실

결국 토끼와 여우, 사자와 양이 같은 규칙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같은 식탁에 불안 없이 앉는 사회는 동물의 생물학적 조건을 훌쩍 넘어선다. 포식과 공포는 신경계에 각인돼 있고, 규칙은 종마다 다르게 해석되며, 먹이사슬은 에너지 흐름이라는 구조적 제약을 따 른다. 그럼에도 〈주토피아〉가 던지는 질문은인간 사회로 그대로 돌아온다. 인간은 호모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에 속해 있지만, 감각 민감도와 공포 반응, 규칙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다. 〈주토피아〉에서 종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긴장이 인간 사회에서도 오버랩되는 이유이다.
이때 과학기술의 역할은 사람이나 동물의 행동 방식을 바꾸기보다, 서로 다른 반응과 욕구가 충돌하지 않도록 도시의 작동 방식을 재설계하는 데 가깝다. 최근 도시들은 인공지능과 센서 네트워크를 결합한 이른바 ‘도시 두뇌(City Brain)’를 통해 교통, 에너지, 안전을 실시간으로 조율한다. 신호를 지키라는 규범을 강조하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교차로 흐름을 재배치하고, 마이크로그리드는 수요 변동을 예측해 전력을 분산시키며, 위험 징후는 사고로 번지기 전에 조용히 흡수된다.
유토피아는 여전히 ‘노웨어(Nowhere)’지만, 그 불가능한 상상 덕분에 과학은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해법을 하나씩 시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노력이 토끼와 여우의 환상적인 파트너십처럼 서로 다른 이웃들의 관계를 조금 더 믿을 만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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