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AI 확대로 전력시스템에 다양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 변화는 크게 ‘공급 부문’과 ‘수요 부문’으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공급 부문을 살펴보면, 과거에는 원자력과 석탄화력 같은 중앙집중형 발전원을 중심으로 경제적 공급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탄소 저감이 중요한 제약조건이 되었으며,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태양광, 풍력, SMR과 같은 저탄소 분산형 발전원이 주요 전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요 부문을 살펴보면 과거에는 GDP, 인구, 산업구조, 기온과 같은 거시 변수에 의해 대부분의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 요소에 의해 설명되는 수요는 증가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 한편 미래에는 AI 기반의 4차 산업혁명, 첨단산업, 전기화가 주요 전력 수요 증가 요인으로 고려되고 있으며, 이러한 신규 전력 수요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리적 불일치는 송전망 건설비용을 낳고
최근 전력시스템의 핵심적인 문제는 이러한 공급과 수요의 ‘지리적 불일치’이다. 대부분의 신규 수요는 수도권 중심으로 증가하는 반면, 신규 공급은 지가가 저렴하고 주민 수용성 확보가 용이한 비수도권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그림 1]과 같이 서울은 10.24%, 경기는 61.81%의 자급률을 보이는 반면, 경북은 213.98%, 전남은 199.61%의 자급률을 보인다. 이런 상황이 심화하면서 송전망 증설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재산권과 환경권에 대한 인식 및 기대 수준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송전망 건설 비용과 기간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
[그림 2]는 지난 30여 년간 최대 수요는 377%, 발전설비 용량은 535% 증가했지만, 송전 설비 용량은 153% 증가하는 데 그쳤음을 보여준다. 송전설비 건설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2025년 수립된 11차 장기 송변전 계획에서 계획된 54개의 사업 중 지연되거나 지연이 예상되는 비율이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앞으로도 송전설비 건설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림 1] 지역별 전력자립률(2023년, 단위:%) 자료: 오마이뉴스(2024. 10. 08.), 원자료: 한국전력공사
[그림 2] 발전설비, 최대수요, 송전설비, 변전설비 용량 변화, 1991-2022년
송변전 설비 건설 지연은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키고
송변전 설비 건설 지연은 전력 공급 비용을 높이고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킨다. 전력 시장은 제약이 없으면 한계 비용이 가장 낮은 발전원부터 순차적으로 경제적 급전을 한다. 하지만 송전 혼잡으로 호남 지방의 태양광이 출력 제한되거나 동해안의 원자력 발전 혹은 화력 발전 감발이 요구될 경우, 그만큼 연료비가 비싼 LNG 발전이 더 활용되어야 한다. 이는 한전의 전력 구매 비용을 증가시킨다.
또한 미래에 부족한 송전 설비로 태양광과 풍력의 출력 제한이 빈번해질 경우, 해당 발전소들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투자의 불확실성이 커져 재생에너지 발전 보급이 지연될 수 있다.
생산지와 수요지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송전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며 이는 추가적인 비용으로 작용한다. [표 1]과 같이 우리나라의 송배전 합산 종합 손실률은 3.53% 수준이며, 이 중 송변전 손실은 1.57%, 배전 손실은 1.96%이다. 이 비용은 전력 구입 단가 수준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연간 최대 3조 원에 이른다. 분산전원을 통해 생산과 수요를 지리적으로 일치시키면 배전 손실은 줄이기 힘들지만 송변전 손실로 인한 비용은 일부 경감시킬 수 있다.
연도 송전단 전력량
(GWh)
송변전 손실
(GWh)
송변전 손실률
(%)
배전 손실
(GWh)
배전 손실률
(%)
종합 손실
(GWh)
종합 손실률
(%)
전력구입단가
(원/kWh)
손실비용
(억 원)
2020 525,851 8,279 1.57 10,331 1.96 18,610 3.54 81.08 15,088
2021 549,624 8,651 1.57 10,773 1.96 19,424 3.53 96.64 18,771
2022 566,865 8,915 1.57 11,105 1.96 20,020 3.53 154.17 30,864
2023 561,447 8,827 1.57 10,986 1.96 19,813 3.53 138.52 27,446
2024 566,462 8,901 1.57 11,066 1.95 19,966 3.52 128.67 25,691
[표 1] 송배전 손실 비용, 2020-2024년 자료: 오마이뉴스(2024. 10. 08.), 원자료: 한국전력공사
‘지산지소’를 지향하는 분산전원 활성화 정책
이러한 발전과 소비의 지리적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정책이 분산전원 활성화이다. 분산전원 활성화 정책의 핵심은 ‘지산지소(지역 생산, 지역 소비)’이다. 전력 생산과 소비를 지리적으로 일치시켜 송전 설비 증설 필요량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24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하 분산법)」이 시행되었다. 분산법에서 가장 핵심적인 유인 정책은 분산법 제7장에서 설명하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과 제8장에서 설명하는 ‘지역별 전기요금’이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의 핵심은 특구 내 분산에너지의 전력 직접 거래를 허용한 것이다. [그림 3]과 같이 2025년 말 기준 7개의 분산 특구가 지정되었으며, 각 특구는 재생에너지, ESS(에너지저장장치), V2G(Vehicle-to-Grid), 열병합발전, 암모니아 등을 활용해서 지역 내 지산지소를 유도한다. 지역별 전기요금은 지역간 차등 요금을 통해 수요가 발전원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핵심 과제는 원가주의에 기반한 합리적인 지역별 가격을 도출하고, 지역 간 차등 가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2021~2023년간 누적된 한전의 재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판매 수익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이 경우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의 요금이 인하된다면 다른 지역의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정책 조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 비용은 지역별 전기요금 도입에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요인이다.
[그림 3]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선정현황(2025년 12월 기준)
영국 옥토퍼스 에너지, AI 기반 최적화로 배전망 효율 높여
풍력을 중심으로 한 분산에너지 확대는 상수가 되고 있으며, 이제는 이러한 분산에너지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분산에너지 효율화·지능화 사례는 영국의 옥토퍼스 에너지이다. 분산에너지는 송전망의 혼잡은 줄이지만 배전망의 부담과 비용은 증가시킨다. 태양광의 평균적인 이용률은 15%인데, 배전망이 태양광 피크 발전을 기준으로 설계되면 배전망 역시 15% 수준의 낮은 이용률을 가지게 된다. 옥토퍼스 에너지는 V2G, ESS, DR 등의 자원과 AI 기반 최적화를 활용해서 재생에너지의 계통 수용성을 높이고 배전망의 효율을 크게 개선하였다. 이러한 계통 비용 경감과 혁신을 바탕으로 영국 전력 소매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배전 시스템 내 분산에너지 비중에 따라 5% 이하의 경우 1단계, 5~15% 경우 2단계, 15% 이상을 3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분산에너지 확대로 3단계에 접근함에 따라,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활용하기 위해 2020년 ‘FERC Order 2222’라는 도매 시장 규칙을 도입했다. 이 규칙을 통해 태양광, 전기차, ESS와 같은 소규모 분산 자원을 ‘집합 자원화’하여 도매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분산 자원에 대한 가시성과 통제성을 높이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 제도를 기반으로 미국은 분산형 집합자원을 활용해서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높이고 배전망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시스템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분산전원 활성화를 위한 제언
분산에너지 활성화 정책은 한전의 관점에서 보면 발전 및 수요 자원의 입지 효율화를 통해 송변전 설비 투자 규모를 경감시키는 긍정적인 측면과 배전망 부담 증가, 지역별 요금제 도입에 따른 재무적 불확실성 증가로 인한 숙제도 존재한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한전의 역할과 고려사항은 크게 다음 2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복잡해지는 배전망 운영의 고도화를 통해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분산 자원 확대는 송전망 부담은 경감시키지만 배전망의 부담과 투자 요구는 증가시킨다. 2025년 말 발표된 제1차 배전망 계획에서도 향후 5년간 10조 원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규모는 재생에너지 보급 증가와 함께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분산형 재생 발전에 대한 가시성과 예측성을 높이고, 전기차, ESS, DR 등의 유연성 자원과의 집합화를 통해 배전망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배전망 운영 경쟁력 강화는 안정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에너지 전환의 핵심 열쇠이다.
둘째, 체계화·세분화된 비용 산정과 전력 사용자 간 형평성 있는 비용 부담 구조가 필요하다. 분산 특구 확대는 기존의 구역 전기 사업과 함께 수요 고객들의 선택권을 넓힌다. 최근 산업용 요금 인상으로 대수용가의 직접 구매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 강화되고 있다. 고객의 선택권 다양화는 시장 효율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보편적 서비스 제공자(Universal Service Provider) 역할을 하는 한전에 속한 일반 고객들이 역차별받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송전망, 배전망, 계통 운영 관련 망 이용 요금과 부가 정산금 산정을 세분화하여, 한전 이외의 선택을 하는 고객들에게도 원가주의에 기반해 형평성 있게 비용을 부담시켜야 한다.
분산전원 확대는 비용 효율적인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방안 중 하나이다. 문제를 유발하는 주체에게는 비용을 부담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에게는 보상을 주는 원가주의에 기반한 합리적 인센티브 체계가 확립될 때 분산전원 확대도, 탄소중립도 효과적으로 달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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