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바다보다 깊은
에너지의 길을 걷다
345kV 광양CC-여수TP 해저터널 전력구
에너지의 길은 어디에나 뻗어있다. 땅 위는 물론 땅 밑, 바다 위, 심지어 바다 밑에도 에너지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에너지를 전하는 이들이 있기에 오늘도 대한민국은 펄떡인다. 이번 호는 힘차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바다 밑의 길을 따라가본다.
글 장은경
사진 황지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환풍구 같기도 하고 맨홀 뚜껑 같기도 한 수직구 입구는 얼핏 보면 눈에 띄지 않아 지나치기 십상이다.
수직구 덮개를 열면 장르는 스릴러로 돌변한다. 시커먼 블랙홀처럼 까마득한 수직구는 84m 깊이까지 내려가 닿는다. 무려 30층 건물과 맞먹는 높이의 계단을 따라 하염없이 내려가다 무릎관절에 무리가 느껴질 때 즈음에 길은 어느새 해저터널로 이어진다.
- 30층 건물 깊이 수직구,
5.4㎞ 해저전력구로 이어져 -
심해보다 더 깊은 해저터널의 정체는 여수산업단지 등 주요 산업시설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전기의 길. 정식명칭은 345kV 광양CC~여수TP해저터널 전력구다. 광양CC는 광양복합화력발전소, 여수TP는 여수화력발전소를 지칭한다. 광양시 금호동의 광양복합화력에서부터 여수 월내동 호남화력발전소에 이르기까지 개착식 500m, 해저터널 5.4㎞로 지어진 5.9㎞의 지중송전선로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산업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와 단일 제철소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광양제철소는 국가 기간산업을 지탱하는 초고신뢰 전력공급이 요구되는 지역이다. 특히 이들 산업단지는 대규모 전력을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공정 특성상, 단 한순간의 전력공급 중단도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설비 고장 예방과 계통 안정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여수국가산단에 전력을 공급하는 선로는 원래 단방향으로 공급되던 345kV 선로였다. 하지만 이 선로에 고장이 발생할 경우 광역정전 등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여수국가산단과 광양제철 등 주요 산업단지에 보다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가공선로 8㎞와 지중송전 전력구 5.9㎞를 추가로 연결해 환상망을 완성했다.
2017년 9월 해저터널 및 수직구 공사의 첫 삽을 떴으나 영취산 경관 보존을 위한 추가 지중화 요구와 공사반대 등 건설 민원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지난한 설득 과정을 거친 끝에 드디어 2021년 1월 해저 90m 고수압, 고강도 암반 터널 굴진을 완료하여 2021년 2월 관통식을 거행했다. 해저터널에 깔리는 지중케이블 건설은 2021년 1월 착공해 그해 12월 광양복합-여수화력 송전선로 실부하를 가압하기에 이르렀다.
- 밀폐된 바다 밑 공간, 안전한 작업을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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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터널의 통로는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너비다. 양 옆에는 특고압 지중송전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다. 이밖에도 전원·조명·배수·환기·접지설비 등 지중송전설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많은 설비가 설치돼 있다. 특히 배수설비는 해저터널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침수를 신속히 제거해 케이블과 접속부의 절연 성능 저하를 방지하며, 환기설비는 유해가스를 배출하고 케이블 발열을 낮춰 송전용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접지설비는 이상전압과 고장전류를 안전하게 대지로 방전하여 설비 손상과 고장에 의한 2차 사고를 예방한다. 이처럼 전력구 내 부대설비들은 전력이 끊김 없이 흐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숨은 기반 인프라다.
광양CC-여수TP 해저터널 전력구는 해저 구간 특성상 쉽게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예방 중심의 선제적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순천전력지사 송전부 직원들은 특별히 3개월에 한 번씩 5㎞가 넘는 전력구 내부를 도보로 이동하며 육안점검은 물론 각종 과학화 진단 장비로 정밀하게 설비들을 진단한다. 이렇게 과학화 진단을 통해 설비 고장을 사전에 진단·예측하고, 예방 중심의 유지보수를 수행함으로써 전력구 설비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다.
평소에는 순천전력지사 송전부에서 전력구 운영시스템과 실시간 감시·진단용 과학화 장비를 활용해 전력구를 원격으로 운영·관리하고 있다.
또한 해저 구간 특성상 장기적으로는 습기와 염분 환경에 노출되어 케이블 접속부, 접지설비 등 열화속도가 가속할수 있어 일반 설비 대비 더 세밀한 설비점검이 요구되며, 이러한 환경변화를 보다 더 빨리 파악하여 조치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력구 내부 순시·점검은 밀폐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접근이 제한되는 특성상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해저 전력구 작업 전 전력구 내부의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여 확인한 후 밀폐공간 작업허가를 얻어 진행한다.
대심도 장거리 전력구를 도보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 전 작업자들 개인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작업계획과 작업 단계별 안전조치 사항을 확인하고 관련 안전서류를 점검한 후 밀폐 공간 개인안전장구(안전모, 안전화, 자급식호흡기구) 착용 여부를 점검하여 작업자의 기본적인 안전 보호 수준을 확보하고 있다.
밀폐 공간 내 작업자의 고립을 방지하고 이상 상황 발생 시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작업 시 지상감시자를 배치하고 작업자는 지상감시자에게 재난안전통신망(PS-LTE)을 활용한 전력구 비상통신시스템 단말기를 활용하여 이상 유무를 보고하고 있다.
감시하고 있어 이상 발생 시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하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하는 순천전력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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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전력지사는 여수, 순천, 광양 세 개의 시와 보성군, 고흥군, 구례군 등 전남 동부권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산악과 해안, 도서가 혼재된 복합지형에서 송변전설비를 운영하며, 고흥 보성지역 재생에너지발전단지와 여수 광양 국가산단의 부하 연계를 담당하죠. 해안인접 설비는 염해와 강풍, 태풍의 영향을 크게 받고, 산악 지역 송전선로는 접근성이 낮아서 점검과 공사 업무에 어려움이 따르곤 합니다. 순천전력지사는 이러한 환경적 제약 속에서 산업단지와 지역민 모두에게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길고 긴 해저전력구 터널을 지나며 순천전력지사 송전운영팀 최종균 대리는 순천전력지사의 노고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광양CC수직구 덮개를 열고 나오니 여수국가산단 앞바다가 시야에 가득찬다. 건너편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웅장함보다 바다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는 바다보다 깊은 전기의 길을 누비는 한전 순천전력지사 사우들의 수고로운 여정을 따라가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내린 윤슬이 유난히 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