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심해를 유영하던 스쿠버다이버가 메마른 중앙아시아의 사막 한가운데 섰을 때, 문득 기묘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푸른 바다를 품은 다이버인가, 아니면 황금빛 사막을 걷는 여행자인가?’

중국 철학자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 깨어난 후, 자신이 나비인지 인간인지 혼란스러워했다던 ‘호접몽(胡蝶夢)’의 한 대목이 발끝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겉보기엔 극과 극의 세계 같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다와 사막은 서로 다른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결과 모래결은 모습만 다를 뿐, 끊임없이 세상을 건너가는 하나의 파동이었기 때문이다.

심해의 고요함 속에서 찾은 물아일체
지상의 소음은 사라지고 공기 탱크에 의존한 숨소리만 들릴 때, 바닷속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외로움보다는 포근함이다.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로 가만히 물속에 있으면, 내가 바다인지 바다가 나인지 모를 포근한 동화를 경험하게 된다. 바다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는 물아일체(物我一體) 상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의 보랏빛 물고기를 향해 손을 휙 저으면, 내 바로 옆 산호의 반짝임이 모래와 함께 파동을 타고 물고기에게 전해진다.

사람들은 스쿠버다이빙을 역동적이고 짜릿한 스포츠로 생각한다. 하지만 다이빙은 전혀 다른 감각의 세계다. 처음으로 허리도 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공기 탱크를 메고, 꽉 끼는 슈트를 입고 바다로 걸어 들어가던 순간,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부자유를 느꼈다. 하지만 수면 아래로 깊이 내려가 중성 부력을 맞추는 순간, 기묘한 반전이 일어났다. 온몸을 짓누르던 지상의 중력이 사라지고, 손끝 하나 발끝 하나의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어느 방향으로든 유영할 수 있는 자유가 찾아왔다. 힘껏 발차기할 필요도 없고, 팔이 아플 만큼 세게 휘저을 필요도 없다. 그저 산책을 하듯이 여유롭게 바다를 구경하면 된다. 지상의 소음이 단칼에 차단된 심해의 침묵 속에서, 내 몸의 움직임이 물결이 되어 푸른 바다로 부드럽게 퍼져 나간다. 가장 부자유스러운 곳에서 만난 자유로움은 마음에 깊은 잔물결을 남긴다.
아무것도 없어서 비로소 완벽했던 사막의 바다
사막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사막에 볼 게 많아? 그 척박한 곳에 도대체 뭘 보러 가는 거야?” 그 물음에 대한 내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그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가는 거야.”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사구에 섰을 때, 눈앞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고층 빌딩도, 빽빽한 전선도,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도 지워진 완벽한 진공의 상태였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와 모래알들을 밀어 올리며 거대한 모래 파도를 만들어낼 때, 역설적으로 가장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바람의 흔적이 새겨 놓은 정교한 모래의 결들은 바다의 일렁임을 닮아 있었다. 순간,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워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강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무것도 없기에 비로소 완벽하게 평온할 수 있었다. 비어 있기에 모래결의 흔들림이 더 잘 보였다. 메마르고 척박해 보이는 순간 속에서도 나를 위로하는 고요를 찾아내는 힘, 그것이 사막이 내 마음에 새겨준 결이었다.
말 한마디가 일으키는 다정한 진동
카자흐스탄의 사막을 횡단하던 지프차 안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길 바라면서도 먼저 다가설 용기가 없던 나는, 호기심 반 경계심 반의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나의 주파수가 닿았는지, 옆자리 청년이 슴슴한 표정으로 건조해 보이는 초코바를 내밀며 한마디를 던졌다. “한입 먹을래?” 그렇게 툭 던져진 작은 호의 하나가 고요하던 내 마음에 잔잔한 진동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수면 위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호수 전체로 퍼져나가듯, 그 다정한 한마디 말이 얼어붙어 있던 나의 세상을 순식간에 포근한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파동은 보이지 않지만 늘 먼저 도착한다. 바다에서는 물결로, 사막에서는 바람으로, 사람의 말에서는 미세한 떨림으로. 물은 흘러가도 물결의 형태는 남고, 바람은 지나가도 모래는 그 움직임을 기억한다. 우리를 흔들고 지나간 그 다정한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꿔 고스란히 남는다.
서로에게 다정한 물결이 되어준다는 것
결국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바다나 사막이라는 공간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마주한 ‘비워냄의 평온’이었고, 눈에 보이지 않게 서로를 연결하던 다정한 흐름이었다. 물속에서 시작된 작은 울림은 먼 사막을 지나, 이제는 일상을 살아가는 내면의 주파수가 되어 사람들 사이를 계속해서 흐른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형태만 달리하며 이어지는 작은 일렁임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온기도 그렇게 작은 물결을 타고 서로에게 전해지는 것이리라. 우리의 마음속에도 일상의 소란함을 잠재울 그런 포근한 진동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란다. 오늘의 작은 몸짓 하나가 언젠가 나의 삶과 누군가의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낼 파동의 시작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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