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호수를 연상시키는 상주은모래비치.
아무래도 특별하지, 남해 바다는
남해의 바다는 이상하다. 분명 바다인데 자꾸만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어떤 곳에선 호수처럼 잔잔하고, 어떤 곳에선 청춘처럼 들끓는다. 때로는 하늘 끝까지 시야를 밀어 올리고, 때로는 아찔한 높이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게 만든다. 그래서 남해의 바다는 단순히 ‘푸른 풍경’이 아니라, 사람을 자꾸 다른 방식으로 홀리는 바다다.

이 카멜레온 같은 바다가 지닌 여러 얼굴 중 가장 고운 빛깔을 품은 곳은 상주은모래비치다. 활처럼 유려하게 휘어진 해안선 앞으로 산처럼 봉긋한 목섬이 떠 있어, 어느 해변보다 물결이 낮고 부드럽게 출렁댄다. 그 거대하고 잔잔한 바다가 다양한 층위의 파랑으로 겹겹이 일렁여 시선이 자꾸 범람한다. 파랑에서 또 파랑으로. 그 아늑한 잔잔함의 반대편에는 청춘의 끓는점을 닮은 바다도 있다. 최근 주목받는 송정솔바람해수욕장은 뛰어들기 좋은 바다다. 남해의 바람이 가장 먼저 닿는 자리답게 서퍼들이 파도를 가르고, 카약이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마치 여름의 활기가 바다 한가운데 응축된 듯 힘차다. 여기에 몽돌이 구르며 소리를 만드는 두곡·월포해변까지 여름내 하얀 이마를 드러내니, 남해의 여름이 한층 빛난다.

남해엔 바다를 온몸으로 마주하는 공간도 있다. 설리스카이워크와 물미해안전망대다. 설리스카이워크는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전망대로, 끝에 하늘 그네가 매달려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발리스윙’처럼 그네에 몸을 실어 바다 쪽으로 날아오르면, 바이킹을 탄 듯 몸이 허공에서 바다로 밀려갔다 뭍으로 밀려난다.

물미해안전망대 역시 허공을 즐기는 곳이다. 원통형 전망대를 따라 이어진 좁은 잔도를 한 바퀴 돌면 줄을 잡은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 아찔한 현기증을 견디고 시선을 멀리 던지면,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의 섬들과 그 사이를 비켜 흐르는 윤슬이 보인다. 왜 이곳이 ‘다도해의 정원'이라 불리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곳에선 물미해안도로도 발밑에서 뱀장어처럼 유영한다.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고두현의 시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중에서)’ 해안선이 바다처럼 몸 안으로 자꾸 파도친다.
느슨해도 괜찮은 남해의 숲 그늘
바다의 열기를 지나온 사람에게 남해는 어디서나 깊은 그늘 하나를 내어준다. 그 그늘의 시작점에 물건방조어부림이 있다.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과 마을을 지켜온 고목 1만여 그루가 해안을 따라 1.5㎞나 초승달처럼 늘어서 있다. 해일이나 소금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이 숲의 주인은 팽나무·푸조나무·참느릅나무 같은 고목들. 늙은 이팝나무 머리가 하얗던 봄에는 제법 볕이 들더니, 녹음 짙은 여름엔 그늘만 무성하다. 그래서일까. 바다와 가장 가깝게 포개진 이 숲에선 여름내 청록의 바람이 서걱대고, 캄캄한 듯 밝은 숲길에선 파도가 해안을 핥아낼 때마다 차르르륵 몽돌 굴러대는 소리가 들린다. 숲에서 빼꼼히 바다를 듣는 기분이다. 물건리가 원시의 생명력으로 빽빽한 초록의 벽을 이룬다면, 이름도 예쁜 앵강다숲은 한 걸음 물러서서 바다를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 느슨한 숲 그늘 아래로는, 방풍림 앞으로 돌무더기를 쌓아 물고기를 잡는 석방렴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찾아 즐기기 좋다. 그러다 까무룩 낮잠에 빠져들어도 괜찮겠다.

섬이정원도 남해에선 손꼽히는 숲의 연장선이다. 다랭이논의 곡선 위에 인간의 미감을 얹어낸 비밀스러운 정원이다. 이른바 남해 최고의 ‘MZ 핫플’로 정원 곳곳에 숨어들 만한 공간이 많다. 그중에서도 하늘연못은 대기 줄이 길 만큼 인기가 많은 스폿. 직사각형의 연못이 남해와 나란히 이어지는 시각적 연출이 가능해, 역대급 인생샷을 남길 수 있다.

섬이정원이 인간의 미감으로 세공한 공간이라면, 금산은 대자연이 날것 그대로 뻗어 올린 산그늘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금산을 빼곡하게 뒤덮은 숲으로 깊이 깃들어보길 권한다. 기암괴석이 성벽처럼 둘러선 길을 오르면, 바다를 향해 아스라이 문을 열어둔 보리암이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해 뜰 무렵 올라 일출의 감동을 느껴 봐도 좋고, 금산산장 깎아지른 절벽 위에 걸터앉아 컵라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도해의 비경을 마주해도 좋다. 바다를 향한 벼랑 끝 시선은 산그늘이 품은 경이를 온몸으로 증명해 낼 테다.
바닷물이 넘치는 것을 막아 농지와 마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물건방조어부림.
건물 외벽 난간을 따라 걸으며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물미해안전망대 (구 보물섬전망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정착촌인독일마을.
금산 깎아지른 절벽 위에 제비집처럼둥지를 튼 보리암.
보면 알게 되는, 남해답다는 뜻

때때로 자연은 삶에 가혹하다. 섬에서는 더하다. 남해는 1973년 남해대교가 놓이며 뭍이 된 곳. 그만큼 오래 척박했다. 그 척박함이, 또 그 척박함을 이겨낸 삶의 지혜가 남해 땅엔 고스란하다. 대표적인 곳이 가천다랭이마을과 죽방렴이다. 설흘산 가파른 비탈을 깎아 만든 가천의 다랑논은 그 아득한 시간의 두께 그대로가 풍경이 된 곳. 수백 년 세월 동안 소와 사람이 쟁기질로 일궈낸 정직한 굴곡에 초록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이 되었다. 땅의 삶이 그러했듯, 바다에서의 삶도 고단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거친 물살을 길들이기 위해 남해 사람들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죽방렴이다. 조류가 빠른 바다에 대나무 발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이 전통 어업 방식은 척박함을 기어이 삶으로 바꾸어 낸 풍경이다. 지금은 죽방렴의 지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관망대가 생겨 남해 고유의 감수성을 한층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독일마을도 남해에선 빼놓을 수 없는 삶의 흔적이다. 유럽식 주홍 지붕들이 남해 바다와 어우러져 이국적이면서도 애틋한 풍경을 빚어내는 독일마을은 1960년대 가난했던 시절,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둥지를 튼 곳. 그래서일까. 풍경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가천마을과 죽방렴처럼, 서사로 마음에 맺힌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 풍경보다 훨씬 짙게.

경남 민간정원 1호인 ‘섬이정원’.
여름엔 숨어 쉴만한 공간이 많다.

TRAVEL TIP

  • 금산 보리암
    • 이용시간
      04:00~일몰
    • 셔틀버스
      복곡 제1주차장 ↔ 복곡 제2주차장(매표소)
    • 입장료
      성인 1,000원(셔틀버스비 및 주차료 별도)
    • 문의
      055-862-6115
  • 섬이정원
    • 이용시간
      09:00~18:00
    • 휴무일
      연중무휴
    • 입장료
      성인 6,000원
    • 문의
      0507-1399-3577
  • 설리스카이워크
    • 이용시간
      09:00~17:30
    • 휴무일
      매주 화요일(하늘그네 월~수 휴무)
    • 입장료
      성인 2,000원(하늘그네 체험비 7,000원)
    • 문의
      055-867-4252
  • 물미해안전망대
    • 이용시간
      09:00~17:30
    • 휴무일
      매주 화요일(클리프워크 매주 월~수 휴무)
    • 입장료
      무료(클리프워크 체험비 성인 13,000원)
    • 문의
      055-867-7202
남해에 살아보니 굽이굽이마다 마주하는 여유의 도시 임경현 남해지사 고객지원팀 주임

부산에서만 살던 내가 남해로 발령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였다. 남해는 여행지로는 익숙했지만, 삶의 터전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대중교통이나 편의시설 등 도시와 다른 환경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남해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어느새 남해의 느린 매력에 익숙해지며 진정한 ‘남해 주민’이 되어가고 있다.

남해에서 생활하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여유’다. 도시에서는 늘 시간에 쫓기듯 살아왔지만, 이곳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이 자연스럽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 풍경과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하늘은 하루의 피로를 잊게 만든다. 처음에는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이곳이 오히려 바쁜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던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남해를 대표하는 매력은 역시 자연경관이다. 독일마을, 다랭이마을 등 정말 유명한 관광지가 많지만, 내가 생각하는 남해의 진정한 매력은 목적지 없는 드라이브 중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굽이굽이 이어진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여기 사진 찍어야겠다” 싶은 곳이 계속 나타난다. 이렇다 보니 스마트폰 사진첩은 점점 남해의 풍경사진들로 가득 차고 있다.

이렇게 곳곳에 매력이 숨어 있는 남해지만, 남해를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곳은 금산과 보리암이다. 정상에 오르면 남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한눈에 펼쳐지는데, 남해를 가장 남해답게 느낄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여유로운 산책을 원한다면 독일마을과 항구 일대를 추천하고 싶다. 특히 지족항은 최근 영화 <만약에 우리>의 촬영지로 화제가 되었는데, 한적한 어촌풍경과 바다의 모습이 영화의 분위기와도 잘 어우러져 남해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남해에서 보낸 시간이 아직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근무지’가 아닌 ‘살고 있는 곳’으로 남해를 바라보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과 여유로운 일상, 그리고 정겨운 사람들까지. 남해는 직접 살아보아야 그 진짜 매력을 알 수 있는 곳이지만 아쉬운 대로 잠시 머물다 가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특히 여름에 더 예쁜 곳들이 많으니 기회가 된다면 많은분들이 올여름 남해를 찾아 이 특별한 섬의 매력을 느껴보길 바란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