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숲은 왜 한 가지 나무로 가득 차지 않을까
열대우림을 지키는
삼각관계의 과학
한여름의 숲은 유난히 짙다. 장마가 지나간 뒤 나무들은 물기를 머금고, 한낮의 햇빛은 잎 사이에서 잘게 부서진다. 그런데 숲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왜 숲은 한 가지 나무로만 가득 차지 않을까. 씨앗을 많이 떨어뜨리고 빨리 자라는 나무라면 숲의 넓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러 종의 나무와 풀, 관목이 뒤섞여 자란다. 숲은 어떻게 한 종의 독점을 막고 다양한 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글 이종림 『과학동아』 객원기자
- 한여름 숲이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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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가까운 지역의 열대우림은 숲의 복잡성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초록으로 덩어리져 있지만, 그 안에는 키 큰 나무와 어린나무, 넓은 잎을 가진 식물과 가느다란 덩굴이 빽빽하게 얽혀 있다. 국제식물원보전연맹(BGCI)이 운영하는 세계 수목 데이터베이스 글로벌트리리서치(GlobalTreeSearch)는 전 세계에 알려진 나무 종을 약 6만 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과학적으로 알려진 관속식물의 약 60%가 열대림에 분포한다고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설명하고 있다.
열대우림에 다양한 나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숲이 한 종의 독점을 쉽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동종 음의 밀도 의존성’이라고 부른다. 같은 종이 가까이 많이 모일수록 해당 종의 생존과 성장이 오히려 불리해지는 현상이다. 큰 어미나무 아래에는 이미 같은 종의 뿌리와 이를 공격하는 곤충, 병원균, 곰팡이가 모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미나무 아래에서 싹튼 어린나무는 태어나자마자 그늘과 뿌리 경쟁, 병원균의 압박을 함께 견뎌야 한다. 생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얀젠-코넬 효과(Janzen-Connell Effect)’로 설명해 왔다. 같은 종이 가까이에 많을수록 어린 개체의 생존율은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드문 종은 빈틈을 얻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병해충이 숲을 망가뜨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 종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는 생태계의 조절자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201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과 로버트 배그치 연구팀의 논문은 씨앗과 어린 식물이 자라는 단계에서 곰팡이와 곤충의 영향을 조절해 비교했다. 그 결과 곰팡이 병원균과 초식 곤충이 열대우림 식물의 다양성과 종 구성을 바꾸는 데 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17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도 전 세계 24개 산림 조사구에서 3,000종 이상, 약 240만 그루의 자료를 분석해 동종 음의 밀도 의존성이 열대림의 높은 나무 다양성과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씨앗이 바람이나 동물의 도움을 받아 어미나무로부터 멀리 이동하면 같은 종의 경쟁자와 병해충을 피해 싹틀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한 종이 숲을 독점하지 못하고, 그 빈자리를 다른 종의 나무가 채운다. 이처럼 숲의 다양성은 모든 종이 평화롭게 나란히 자라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 위에서 만들어진다.
- 두 나무의 경쟁을 흔드는 또 다른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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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생태학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숲속 경쟁이 두 나무만의 승부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나무가 빛과 물, 양분을 두고 다투는 동안, 주변의 다른 나무가 토양 환경이나 뿌리 성장, 병해충의 이동 경로에 영향을 미치면 경쟁의 균형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A 나무와 B 나무가 햇빛과 양분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C 나무가 만든 그늘은 A의 성장을 늦춰 B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C 나무 주변의 미생물이나 병원균이 B에게 영향을 주면 경쟁의 균형은 다시A 쪽으로 기운다. 이처럼 두 생물 사이의 관계가 제3의 생물에 의해 달라지는 현상을 생태학에서는 ‘고차 상호작용’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두 나무의 경쟁에 세 번째 나무가 끼어들면서, 숲속 관계는 일대일 구도를 넘어 삼각관계로 확장되는 셈이다.
지난 4월 『네이처』에는 이런 나무들의 고차 상호작용을 실제 숲 자료로 확인한 연구가 실렸다. 중국 중산대 선전캠퍼스 생태학부 연구진이 주도한 국제공동연구팀은 열대림부터 아한대림까지 전 세계 32개 대형 산림 조사구 자료를 분석해, 세 번째 나무가 두 나무 사이의 경쟁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조사했다. 연구팀은 각 지역마다 가슴높이지름(DBH) 1㎝ 이상인 목본식물을 대상으로 종, 위치, 줄기 굵기, 생존 여부를 기록한 장기 산림 조사 자료를 모았다. 이렇게 살펴본 나무는 300만 그루 이상, 종수는 5,000종에 달했다. -
나무 j가 나무 i에 미치는 영향은 주변에 나무 k가 있느냐에 따라 강해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 이런 관계를 고차 상호작용이라고 한다. 출처 네이처(중국 중산대 국제공동연구팀 연구 논문)
- 300만 그루가 보여준 나무들의 삼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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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흥미로웠다. 연구팀은 나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분석한 1,543개 사례 중 40%에서, 생존을 분석한 1,340개 사례 중 23%에서 세 번째 나무의 영향을 확인했다. 이는 숲속 경쟁이 두 나무 사이의 힘겨루기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주변의 다른 나무가 성장과 생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모든 종에게 같은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숲에 많이 분포한 흔한 종은 더 강한 경쟁과 견제를 이겨내야 했으며, 개체 수가 적은 희귀한 종은 상대적으로 살아남을 기회를 얻었다. 흔한 종은 더 흔해지는 길이 막히고, 드문 종은 사라지지 않을 틈을 얻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숲속 관계를 ‘나무 A와 나무 B의 경쟁’으로만 보지 않는 데 있다. 연구팀은 특정 나무를 기준으로 주변에 어떤 종의 나무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그 나무들이 얼마나 큰지를 함께 계산했다. 그런 다음, 이웃 나무 하나가 주는 직접적인 영향과 여러 이웃 나무가 함께 있을 때 달라지는 영향을 통계 모델로 분리했다. 다시 말해 이웃 나무가 하나의 개체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는 데서 나아가, 세 번째 나무가 두 나무 사이의 경쟁 관계 자체를 바꿀 수 있는지를 검증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위도에 따른 차이다. 연구팀은 고차 상호작용의 강도가 적도에 가까운 숲에서 더 강하고, 고위도로 갈수록 약해지는 경향을 확인했다. 이는 열대우림의 높은 나무 다양성이 따뜻하고 습한 기후 조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열대우림에서는 수많은 종이 촘촘하게 뒤섞여 살아가며, 그만큼 나무들 사이의 관계도 더 복잡하게 얽힌다. 한 종이 많아지면 경쟁과 병해충의 압력이 커지고, 세 번째 나무가 그 경쟁 관계를 다시 흔든다. 이런 상호작용이 반복되면서 열대우림은 한두 종의 독점을 막고 다양한 나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
전 세계 32개 산림 조사구를 분석한 결과, 적도에 가까울수록 숲의 헥타르당 나무 종수가 많은 경향을 보였다. 출처 네이처(중국 중산대 국제공동연구팀 연구 논문)
- 숲이 스스로 지켜온 오랜 방식,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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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멀리서 보면 고요하고 안정적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다시 맞춰지는 생태계다. 열대우림의 삼각관계는 숲이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지를 보여준다. 풍성한 초록빛은 고정된 질서가 아니라, 수많은 생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낸 동적인 균형의 결과나 다름없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숲의 회복력도 약해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6차 평가보고서를 통해 1990~2020년 전 세계에서 4억 2,000만 헥타르 이상의 숲이 사라졌고, 그중 90% 이상이 열대지역에 집중됐다고 보고한 바 있다. 열대림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무 몇 그루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종이 얽혀 만든 관계망이 끊어지고,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 숲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 기후 충격에 대한 회복력까지 함께 흔들린다는 뜻이다.열대우림처럼 수천 종의 나무가 한 공간에 뒤섞여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산림도 여러 층위와 관계로 이루어진다. 산림청 산림기본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림은 침엽수림, 활엽수림, 침엽수와 활엽수가 함께 자라는 혼효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숲길을 걸으면 키 큰 나무 아래 어린나무가 자라고, 그 사이로 관목과 풀이 자리를 잡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규모와 종수는 달라도, 여러 식물이 자리를 나누고 겹치며 만들어지는 숲의 풍경은 닮아 있다.
앞으로의 숲 보전과 복원도 나무의 수를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숲이 어떤 구조와 관계를 회복하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단일 수종을 대규모로 심는 방식은 짧은 시간 안에 숲처럼 보이는 공간을 만들 수는 있지만, 병해충과 가뭄, 폭염, 산불 같은 충격 앞에서는 다양한 종이 층을 이루는 숲보다 취약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몇 그루를 심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나무들이 함께 자라 숲의 기능을 회복하느냐다. 실제로 2025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국제공동연구도 나무 종의 조합과 공간 배치가 숲의 생산성과 물질 순환 등 생태계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좋은 숲은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있는 숲만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나무와 풀, 곤충, 미생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관계를 맺을 때 숲은 더 건강해진다. 개체 수가 많은 종은 견제를 받고, 개체 수가 적은 종은 기회를 얻으며, 주변의 다른 존재들은 그 관계를 계속 바꾼다. 경쟁과 공존이 반복되는 이 복잡한 질서 속에 열대우림은 건강한균형을 찾는다. 생물 다양성은 그렇게 숲이 스스로를 지켜온 오래된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