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세계 최초
초전도 스테이션
상용화 현장을 가다
폭염과 전기 수요 급증 전력망에 비상이 걸린 여름의 초입. 임진강이 지척인 문산~ 선유 산업단지 한복판에 콤팩트한 4층 건물이 서 있다. 외관상으로는 도심의 흔한 다세대 주택처럼 보이는 이 미니멀한 건물의 정체는 미래전력산업을 이끌 꿈의 송전망을 이루는 문산~선유 초전도 스테이션이다.
글 장은경
사진 이동진
서버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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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계측기들이 가득하고 3층에는 기존 변전소에서 볼 수 있는 GIS설비들이 들어차 있다. 건물의 지하에는 세계 최초로 실제 전력계통에 적용되어 상용화를 눈앞에 둔 23kV 60MVA 3상 동축형 초전도케이블이 조용히 가동되고 있다. 이곳의 초전도케이블은 선유변전소와 문산변전소로 연결된다.
초전도송전망의 핵심은 냉각시스템. 선유변전소와 문산변전소 내에는 액체질소를 쉼 없이 순환시키는 거대한 냉매장치와 영하 200℃의 극저온을 소수점 단위로 유지하는 냉동기 시스템이 정밀하게 가동되고 있다.
- 전력 포화 속의 게임 체인저, ‘초전도체’ 등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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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로 인해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다. 하지만 혁명도 전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데이터센터 등 최첨단 설비들은 온통 어마어마하게 전기 먹는 하마들이다. AI시대의 전력수요를 감당하려면 전력설비의 집중적 건설이 절실하다. 하지만 전력설비 건설에는 수많은 현실의 벽이 존재한다. 기존 변전소는 거대한 부지가 필요하고 외관상 눈에 잘 띄어 대부분 도심과 멀리 떨어진 외곽에 건설해야 한다.
전력설비에 대한 지역사회의 민원도 갈수록 극심해져, 수요가 밀집된 도심에 제때 전력을 공급하는 문제는 국가적 난제로 대두되는 상황. ‘초전도 스테이션’은 이 난제를 해결하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영하 200℃의 마법, 초전도 기술을 송전망에 적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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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란 특정 물질을 영하 200℃의 극저온 상태로 냉각했을 때 전기 흐름을 방해하는 저항이 사라져 ‘0’이 되는 현상이다. 초전도체를 송전선로에 적용한 초전도케이블은 저항이 0에 가까워져 기존의 구리케이블보다 손실을 1/10로 줄이고 송전용량은 5~6배까지 늘어난다. 이처럼 높은 효율로 인해 초전도케이블은 미래를 이끌 꿈의 송전망이라 불리며 주목받고 있다.
한전은 바로 이 초전도케이블을 활용해 복잡한 도심에 변전소를 건설하지 않고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획기적 대안을 마련했으니, 이것이 바로 초전도 스테이션 사업모델이다.
초전도 스테이션은 도심에서 떨어진 154kV 변전소의 전기를 초전도케이블로 받아 수용가들에게 송전하는, 일종의 개폐소 역할을 수행한다. 154kV 변전소는 도심 외곽에 위치시키고 23kV 초전도케이블을 활용해 대용량 전력을 초전도 스테이션으로 전송하여 부하 중심지에서 전력을 직접 공급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초전도 스테이션의 규모다. 97㎡, 즉 30평형에 불과한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지어진 초전도 스테이션에는 계전기실, GIS실, 냉각설비 등이 짜임새 있게 들어차 있다. 그야말로 주택 한 채 크기의 부지만 있으면 도심 한복판 어디든 쏙 들어갈 수 있어 부지 확보가 어려운 도심지에 최적이다. 대규모 토목공사나 송전탑 건설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전자파도 없기 때문에 지역사회 민원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주목받는다.
“한전이 이번에 상용화하는 문산~선유 초전도 스테이션 사업은 특히 지난 2020년에 연구개발을 마친 23kV 동축형 초전도케이블을 실제 전력망에 적용하여 상용화하고, 초전도 기술을 스테이션모델로 결합해 세계 최초로 사업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라며 양형석 전력연구원 초전도송전기술 총괄 수석연구원은 자랑스럽게 설명을 덧붙인다.
-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세계 최초’ 기록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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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전선으로 불리는 초전도케이블 기술은 정부와 한전을 중심으로 20여 년간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발전되어 왔다.
사실 초전도 송전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처음에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후발주자였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의 주도하에 끈질긴 연구개발과 실증투자를 20년간 이어온 결과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시작은 200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전, LS전선 등이 참여한 DAPAS사업이었다. 약 10년간 1,4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원천기술을 개발하였고, 이어 2013년 이천변전소 실증, 2016년 제주 실증사업을 거치며 초전도케이블을 실제 계통에 연계하는 독보적인 노하우를 쌓았다.
마침내 변곡점이 찾아온 것은 2019년 11월. 한전은 신갈~흥덕변전소 구간 1㎞의 23kV 모선을 초전도케이블로 연결하며 세계 최초로 상업운전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 성과로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발행하는 공식 『초전도백서』에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 초전도 상용국으로 명시됐다.
현재 미국(2021년, 2㎞)이나 중국(2021년, 0.4㎞) 등 전력 강대국들도 초전도 송전기술의 상용화 사업을 맹렬히 추진하며 추격해 오고 있다. 하지만 초전도 기술을 단순한 선로 연결을 넘어, 도심 맞춤형 스테이션 비즈니스 모델로 진화시켜 실제 계통에서 상용화 시킨 사례는 이번 문산~ 선유 스테이션 사업이 세계에서 단연 최초이다.
이들은 올해 9월 문산~선유 초전도 스테이션을 성공적으로 준공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24년 6월 착공을 시작하여 본사 계통기술실을 중심으로 전력연구원, 경인건설본부, 경기북부본부 등 수많은 직원들이 땀 흘려 노력해 온 값진 결실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7월부터 시운전을 거쳐 9월 전격적인 준공과 상업운전 개시를 앞둔 현장은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 꿈의 전력망, 미래 에너지 수요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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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넘어야 할 산도 존재한다. 초전도 기술이 확산되려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케이블의 길이를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장선화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고 그동안 해외 의존도가 높았던 냉각시스템을 국산화하여 단가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한전 계통기술실 손혁찬 부장은 언급한다. 또 현재 냉각기술 수준으로는 초전도 케이블 선로의 안정적인 구축 한계가 약 3㎞ 내외로 제한된다는 단점도 극복해야 한다. 한전은 이번 문산~선유 초전도 스테이션 사업 상용화 성공을 발판 삼아 중장기적인 기술 고도화에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AI,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등 눈부신 기술 발전과 문명의 도약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근간은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력공급이다.
극저온 세계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꿈의 전력망, 20년간의 꾸준한 연구개발과 실증을 거쳐 발전해 온 한전의 초전도 스테이션 비즈니스 모델이 폭발적인 미래 에너지 수요에 답하는 완벽한 솔루션으로 당당히 활약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