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수도권 전력공급의 중심, 당인리발전소
일제는 증가일로에 있던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마포구 당인동에 당인리발전소를 건설했다. 당인리발전소는 경성전기에서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9년 6월 착공해 마포구 당인동에 1930년 11월 1호기(10MW)를 준공하며 일약 수도권 전력공급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당인리발전소는 동대문발전소, 마포발전소, 용산발전소 등 앞서 건설된 발전소들과 규모 면에서도 크게 달랐다. 1호기만으로 발전용량이 10MW며, 1936년 10월 2호기(12.5MW 화력), 한국전쟁 후인 1956년 5월 미국의 원조자금에 의해 3호기(25MW급 석탄화력) 등이 준공되어 총 시설용량이 47.5MW에 달했다.

이후 당인리발전소는 1961년 7월 1일 전기 3사 통합으로 발족된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조선전업으로부터 인수하여 운영하다가 1969년 11월 1일 발전소 명칭을 서울화력발전소로 변경했다. 이후 수도권 전력공급을 담당하였으나 전국적으로 전력 사정이 안정권에 들어섬에 따라 1970년대 들어 노후시설인 1·2호기, 1982년에 3호기를 폐지하였으며, 1980년대 중반 에너지절약 방안의 일환으로 4·5호기를 열병합 발전방식으로 개조하여 남서울 일원에 난방용 열공급을 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처음으로 지역난방시대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4·5호기도 2016년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현재 서울화력발전소 부지였던 마포구 당인동에는 지하에 화력발전소, 지상에 복합문화시설인 마포새빛문화숲이 조성돼 있다.
장진강수력 제1발전소
(4개 발전소 시설 용량 33만 4,000kW, 1935~1938년 준공)
허천강수력 제1발전소
(4개 발전소 시설 용량 35만 4,000kW, 1940~1943년 준공)
동양 최대를 자랑했던 수풍댐과 발전소
(설비용량 60만kW, 1941~1944년 준공)
일제강점기 수력발전사업과 수풍수력발전소
1932년 일제 조선총독부는 「조선전기사업령」을 공포했다. 「조선전기사업령」의 주요 내용은 발·송 배전사업을 각각 분리하고, 발·배전 사업은 민영으로, 송전간선은 국영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이 법령으로 많은 전기사업체를 강제적으로 통폐합시키면서 전국을 4대 배전권으로 묶었다.

이러한 가운데 1932년부터 1942년 사이에 대용량 발전소들이 집중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들 발전소들은 조선전력(주)이 건설한 10만 7,000kW의 영월화력발전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수력발전소였다.

최초의 수력발전은 1905년 평안북도 운산금광에 전력공급을 위해 건설한 500kW 운산수력이었다. 1929년 부전강 수력 1~4호기 20만kW, 1935년 장진강 수력 1~4호기 33만 4천kW, 1940년 부령강 1~3호기 2만 8천kW, 1940년 허천강 수력 1~4호기 33만 8천 80kW 등 대용량 수력이 건설됐다.

그중 1944년에 완공된 수풍수력발전소는 준공 당시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댐이었다.

압록강에 수풍댐 건설이 시작된 것은 1937년 10월, 중일전쟁이 발발한 지 3개월만으로, 일본의 대륙침략 야욕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일제는 중국 대륙침략의 일환으로 만주국과 공동으로 동양 최대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댐 공사를 위해 먼저 조선압록강수력발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또한 압록강 건너 만주국에도 만주압록강수력발전주식회사를 만들어 이 두 회사로 하여금 공동 출자 형식으로 댐 공사를 시작하도록 했다. 그리고 물과 바람을 이용한다는 의미를 담아 수풍댐이라 이름 지었다.

1단계 공사는 1943년 11월 완공되었다. 길이 900m, 낙차 106.4m, 용적 330만㎥의 댐이 건설되어 담수면적 345㎢, 유효저수량 76억㎥의 거대한 인공호수가 조성됐다. 평균 초속 66m로 흘러내리는 물이 7개의 철관로를 통해 당시 세계 제일로 알려진 10만kW 발전기 7대를 가동해 최대 출력 70만kW에 연간 42억 5,700kW가 발전되도록 건설되었다.

수풍수력발전소는 준공 당시 풍부한 수량에 힘입어 총 설비용량 64만kW, 최대 출력 54만kW의 발전을 하였으며, 전력은 만주와 반씩 나누어 사용했다. 이 방대한 전력은 관서공업의 기초를 이루어 댐 서쪽에 위치한 청수에는 석회질소, 카바이드 공업이 발흥했다. 수풍댐 준공을 계기로 정주에서 수풍 청수에 이르는 평북선이 개통되기도 했다.

일제에서 해방된 후 수풍댐은 북한이 인수해 운영했다. 그러나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수풍댐의 발전기 가운데 몇 기를 소련이 약탈해 갔고, 한국전쟁 당시 미군기의 공격을 받아 70% 정도의 시설이 파괴되어 발전이 어렵게 됐다.

1954년 1월 북한의 전후복구사업 시작과 함께 소련의 자금과 기술 원조로 수풍수력발전소의 복구공사가 착수되었다. 1956년 6월에는 제방개수공사로 저수량이 크게 늘어났으며 1958년 발전기 1·7호기까지 보수공사가 완료되었다. 보수공사 이후 발전용량이 늘었지만 북한의 전력수요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최대 발전능력이 70만kW였는데, 남한의 원자력발전소 1기당 평균발전용량인 100만kW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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