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해력’ 충전하는
6월의 문화 콘텐츠
적당한 온도와 살갗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걸어보는 6월의 거리는 유독 청량하다. 우리는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아주 잠깐 즐길 수 있는 이 날씨를 누리지 않을 수 없다. 산뜻한 걸음으로 다녀오면 좋을 전시를 소개한다.
Text 허승희 Photo 황지현
우리 마음 한편의 이야기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한 사람의 삶에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도 생각하게 만드는 동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한 인터뷰에서 작품 활동에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어린 시절의 경험들과 풍부한 상상력이 만나 완성된 작품들은 전 세계 어린이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 덕분에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세계적인 동화 작가로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은 주로 가족, 사랑, 우정 등 따뜻한 주제를 다룬다. 이야기 속의 인물은 동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어른들은 텍스트 속에 숨겨진 의미로 깊은 감동을 전한다. 그의 작품 중 첫 케이트 그린어웨이상(Kate Greenaway Medal)의 영광을 누리게 만들어 준 그림책 『고릴라』는 바쁜 아버지와 딸 ‘한나’의 이야기인데, 성인이 되고서 책을 읽게 된 독자들이 눈물을 글썽였다는 감상평이 많은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이렇듯 사람들의 솔직한 감정을 이끄는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은 우리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그 이야기는 분명히 힘을 갖고 있을 테다. 그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무해력’이라는 힘을.

빛바래지 않은 동심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을 보면 여느 동화책에 비해 삽화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인물의 모습이 아주 세밀하게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고릴라를 예로 들자면 털의 가닥이나 주름이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삽화의 특징은 그가 평소에 말하는 ‘관찰’의 중요성을 그대로 나타낸다. 작가가 관찰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하는 만큼 전시를 관람할 때도 작품을 요목조목 뜯어서 잘 관찰하면 더욱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 등 미공개 최신작 원화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미공개 원화를 감상하며 그의 손길이 닿은 붓 터치를 관찰하자.
그림 외에도 미디어아트 및 설치물로 다양한 시각 자료가 마련되어 있어, 관람하는 내내 마치 그림책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전시장을 한발씩 따라갈수록 복잡한 세상은 단 1초도 떠오르지 않는 요술 같은 시간이 계속된다. 아이들은 꾸며진 벽과 천장, 바닥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작품에 더 깊이 빠져들고, 어른들은 빛바래지 않은 그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간다.
전시 프로그램 중에는 앤서니 브라운이 어릴 적 즐겨하던 ‘Shape Game’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준비돼 있다. 자유롭게 그린 선이나 도형을 보고 어떤 이미지를 상상해 그리는 게임인데, 작가가 자신의 친형과 자주 하던 놀이라고 한다. 앤서니 브라운이 마련한 상상의 바다에서 헤엄친 후 그에 못지않은 창의력을 뽐내는 시간을 가져 보자. 언젠가 당신의 그림이 누군가에게 무해력을 충전해 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 기간 5월 2일~9월 28일
- 관람 10:00~19:00(입장 마감 18:10)
- 휴무일 매주 월요일 휴관
- 이용료 성인(만19~64세) 22,000원
- 문의 02-730-4368

하나둘 모인 점은, 우주가 되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뉴욕시대》생의 끝까지 만들어 낸 예술
김환기 화백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다. 그는 일본과 한국에서 미술 활동을 하다가 195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파리에서 활동하며 서구의 현대미술을 접하고, 이후 50세의 나이인 1963년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추상화 작업을 시작했으며, 그의 작품은 더욱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뉴욕시대’는 그의 예술적 전환점이었으며, 이 시기에 그는 점과 선, 면을 이용한 독창적인 추상 표현을 완성해 나갔다. 그의 예술혼은 마지막 작품 『7-VII-74』에서 더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병원에 가기 전까지 작업하던 그 작품에는 밑그림으로 보이는 희미한 연필 선이 있다. 이번 전시는 그가 뉴욕에서 활동하던 1960년대부터 1974년 작고할 때까지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개 한다.


무해한 점, 선, 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상상할 때 좋은 것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하거나, 아주 어릴 적 기뻤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작품도 그렇다. 맑고 청량한 색으로 번지는 점들과 짙고 깊게 번지는 선들이 만난 작품들은 감상하는 이들에게 편안한 마음을 먹게 한다. 그가 작업할 때 떠올린 반짝이는 고향 앞바다와 새카만 밤하늘을 보며 느낀 감정들이 작품에 스며들어 관람객들에게 전해지는 건 아닐까?
김환기 화백의 작품들은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의 '점화' 시리즈는 수많은 작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화면을 구성하는데, 이 점들은 마치 우주의 별들처럼 무한한 확장이 느껴진다. 이러한 작품들은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단순함과 고요함을 추구하는 무해력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무해력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 특징 중 하나를 꼽아 보자면 과장된 색채나 복잡한 구성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있다. 대신 담백한 색감과 단순한 형태가 돋보이며, 이는 마치 맑고 깨끗한 자연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점에서 김환기의 작품은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평온을 주는 무해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마음의 평온을 얻고, 삶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김환기 화백이 추구했던 미학적 가치를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 장소 강릉시립미술관 솔올
- 기간 4월 2일~6월 29일
- 관람 10:00~18:00(입장 마감 17:30)
- 휴무일 매주 월요일 휴관
- 이용료 성인 10,000원
- 문의 033-660-24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