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력 직접구매제도를 생각한다
Text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길은 전력으로 통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소득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사용하는 모든 전자, 가전 기기, 인공지능 AI나 chatGPT, 데이터 센터, 전기차 등 모든 산업은 전력에 의존하고 있다. 전력도 일반 상품처럼 거래된다. 주로 한국전력이나 전력거래소를 통해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요즘 핫한 이슈인 ‘전력 직접구매제도’는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때 전기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고 전력시장의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도입되었다, 주로 김포공항이나 대형 병원 수준의 수전설비 3만kVA 이상의 전기사용자가 한전을 통하지 않고 전력시장에서 직접 전기를 구매하는 제도다(「전기사업법」 제32조, 시행령 제20조). 직접 구매 참여가능 대상은 설비가 큰 대기업들이며, 전기사용자 수는 500여 호로 전체 소비자 2,500만 호의 0.002%이지만, 국가 전체 전기 사용량의 28.3%이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중요한 것은 판매사업자가 요금 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연료비 등 비용의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적절히 반영하는 것을 전제로 이 제도가 설계됐다는 점이다. 이런 전제가 있게 된 이유는 시장원칙에 따른 요금체계 기반 환경에서 전기 소비자가 도·소매간 전력 구입비용을 비교하여 구매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판매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다. 다수의 판매사업자들이 서로 경쟁함으로써 부당하게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행위를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력시장 구조 개편이 중단되면서 오랫동안 정부의 요금 규제로 인해 연료 가격의 변동분을 적절하게 전기요금에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건전하고 공평한 전력시장이 형성되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정부의 요금 규제로 인해서 한국전력은 오랫동안 낮은 전기 요금을 유지하여 왔다. 그 결과 산업, 농업, 가정, 건물 등 모든 부분에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전력 직접구매제도는 제도가 존재하긴 했으나 산업체에서는 실제로 이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전이 수십 년 동안 원가 이하 전력 공급을 하면서 2024년 연결기준으로 205조 원의 부채가 쌓이고,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고육지책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렸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3년간 7번, ㎾h당 최대 80원 올랐다. 가정용 주택·일반용(40.4원/㎾h)의 두 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기요금 인상 민감기업 112개 대상으로 조사 결과에서 평균 전기요금 납부액은 2022년 약 481억 5,000만 원에서 2024년 약 656억 7,000만 원으로 36.4% 증가했다. 이와 같은 산업용 요금 인상으로 인해 기업의 원가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개선된 제도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구매제도가 성공하려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직접구매제도란?
직접구매제도는 전기사용자가 한전을 통하지 않고 전력시장에서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제도로, 수전설비용량 3만kVA 이상 전기사용자가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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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kW 이상 소비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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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P 전력 도매가와 한전 산업용 전기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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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직접구매제도 주요 개정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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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구매제도는 전기사용자인 기업이 한전이 아닌 전력거래소로부터 시장계통가격(SMP)에 직접 전기를 구매할 수 있는 제도인데 2025년 전기위원회의 주요 개정 내용은 직접구매 의무거래기간 확대 및 책임 강화라고 본다. 직접구매자는 3년의 의무 거래기간동안 직접구매 의무가 발생하며, 의무 위반 시 9년간 직접구매 재신청이 불가하고 거래소 회원에서 제명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채무불이행에 대한 재정보증 강화다. 직접구매자의 기업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재정보증을 의무화하고, 재정보증 규모를 40일에서 80일분으로 확대하였다.
세 번째는 전력구매 이외의 추가비용 공동부담 원칙의 신설이다. 직접구매자가, 전력량 정산금 외에 판매사업자 및 구역 전기사업자 등이 부담하는 비용(예컨대 신재생에너지 관련 RPS 비용) 등을 동등하게 부담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복지특례 할인비용 부담 규정의 신설인데 전기의 보편적 공급을 위해 소요된 복지 특례 할인 비용을 직접구매자도 공평하게 분담하고 이를 판매사업자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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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의 전력 직접구매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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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전력 직접구매제도는 소매시장이 자유화되고 판매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요금제를 운영하는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싱가포르, 아일랜드, 스페인, 호주 등이다. 캘리포니아는 2001년 전력위기 시 판매사업자의 원가상승분 회수를 위해 고객의 직접구매 전환을 제한하고 ‘전력조달 비용’ 요금을 신설하였다. 또 직접구매자에게 전력구매 계획 수립, 시장입찰 등을 수행하도록 자격을 요구하고 있다. 스페인은 직접구매자가 취약계층 보호나 에너지효율 기금 등 의무분담이 면제되어 형평성 이슈로 규제기관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용량 소비자의 직접구매제도가 존재하더라도 활용은 제한적인데 보증금·IT시스템 비용 부담이 큰 것도 이유다.
직접 거래제도의 핵심은 요금제도다. 해외 주요 국가들의 전기요금 규제 현황을 살펴보면 영국은 발전·판매부문이 자유화되어 두 개를 겸업하는 6개사가 판매의 73%를 점유한다. 가스, 전력 시장위원회가 일반 가정용 판매 전력에 한해 요금 상한제를 도입 중이지만 이외 소비자는 자유 요금제를 운영 중이다.
독일은 4대 전력회사 중심으로 소규모 시영과 민영회사들이 운영 중이다. 다수의 판매회사가 복수의 지역에서 영업하고 있어 판매 사업자를 교체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2007년 판매시장 전면 개방 후 요금 규제가 전면 폐지되었다. 현재는 발전원별 요금 고정 옵션에 따른 다양한 자유 요금제다. 프랑스에서는 2007년 소매시장을 전면 개방하였으나, EDF사가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에너지 규제위원회에서 주택용 등 소용량 고객에 한정적으로 요금 규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2025년 일몰 후 전면 자유 요금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일본은 2016년 발전 및 소매시장 전면 자유화로 10대 전력사를 포함한 다수 판매사업자들의 출현과 모든 소비자가 다양한 자유 요금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50kW 미만 소비자를 대상으로 규제 요금을 유지 중이며, 판매사업자는 초고압 및 고압 소비자 대상으로 맞춤형 요금제의 설계가 가능하다.
에너지 위기 시 각국 전기요금 인상률 비교(2021~2022년)
최근 3개년 전기요금 인상 내역(2022~2024년)
단위: 원/kWh구분 2022년 2023년 2024년 누계 4월 7월 10월 1월 5월 11월 10월 산업용 6.9 5.0 13.9 13.1 8.0 9.6 16.1 72.6 일반용 6.9 5.0 9.7 13.1 8.0 - - 42.7 주택용 6.9 5.0 7.4 13.1 8.0 - - 40.4 -
- 직접구매제도의 고려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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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구매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은 전기요금의 현실화이다. 코로나19 시기가 대표적인데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였지만 국내 전기요금은 원가 인상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2021년에서 2022년 동안 한국은 산업용 전기요금만 21.1% 인상하였지만 이탈리아는 702.7%, 영국은 173.7%, 일본은 44.1% 인상하였다. 이렇게 낮게 인상한 결과 한전은 2024년 말까지 34.7조 원 누적적자와 200조 원 이상의 부채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적자는 투자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된다. 2033년까지 원자력 발전과 양수발전소, 신재생에너지 등을 위한 투자가 17조 5,069억 원 남아 있고, 2024년 투자비 집행률은 91%로 이연된 투자도 진행해야 한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이행을 위해 2038년까지 350조 원을 투자해야 하며, 송·배전망에만 100조 원의 투자를 예상한다. 2024년 투자집행 실적에서도 송·배전망 건설에 5조 4,633억 원, 유지보수 2조 5,174억 원 등 약 8조 원을 사용했다. 전체 투자금액의 전체 47%에 해당한다. 이는 결국에 한전의 주가에 영향을 줄 것이다.
두 번째는 한전의 적자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나가면 남은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이다.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 제도 활용이 불가능한 소비자들의 요금 인상 가능성이 커 소비자 형평성의 문제가 되므로 일반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지 않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가격 변동성을 고려해야 한다. 단기적인 이익만 본다면 위험한 리스크에 처할 수 있다. ㎾h당 전력 도매 판매단가는 하루에도 70원에서 150원으로 변화가 심하다. 언제, 얼마나 구매하느냐에 따라서 가격 변동성이 크지만 한전을 통해서 변동성을 줄여 왔다. 직접구매는 가격 변동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없다.
네 번째는 기존 제도와의 상충성이다. 2024년에 정부는 전력시장 가격 결정에 판매사업자와 소비자가 참여하는 양방향 입찰(수요 입찰제)을 고려한 ‘전력시장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시간대별 전력수요에 따라 소비자들이 가격을 정하기 때문에 전력시장 효율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구매제도 도입 후에 양방향 입찰 제도에 기업이 들어올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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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과 요약
- 전력시장 선진화는 시대의 흐름이다. 판매사업자가 요금 결정의 자율성을 갖고 원가 변동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소비자 맞춤형 요금제의 운영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시장원칙에 따른 요금 결정 체계의 개선, 소비자 간 공평한 비용 부담과 선택권 강화, 그리고 형평성 확보를 통한 공정한 판매 경쟁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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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미, ‘전력직접구매제’ 개정… 전기 다소비 기업들 ‘탈한전’ 본격화?, 전기신문, 2025. 03. 31.
김성화, 정부는 “한국전력 빼고 ‘전기’ 거래해라” 시장은 “수익성 아직 더 개선해야 한다”, 중소기업신문, 2025. 04. 02.
김정인, 전력 직접구매 제도, 관건은 요금제 개선과 형평성, 중앙일보 비즈컬럼, 2025. 04. 21.
서일원, “전기요금 너무 비싸”… 직접 구매 검토하는 기업들, 조선비즈, 2025. 04. 03.
윤대원, 논란의 산업용 전력 직접구매제도(하) 제도 핵심은 결국 ‘형평성’, 전기신문, 2025. 04. 06.
윤준식, 직접구매·자가발전하면 최대 40% 절약… 전기요금 아끼려 脫한전 옵션 준비하는 기업들, 국민일보, 2024. 11. 28.
윤혁준, 국내 전력시장의 직접구매제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에너지경제연구 2021 vol.20, no.2, pp.207–242, 전력거래소, 직접구매 제도 정비를 위한 규칙개정(안), 2025. 01.
최호, 한전없이 전기 사는 ‘전력직접구매’ 허용… 대형 전기 소비처 ‘직구’ 시작, 전기신문, 2025. 03. 28.
최호, 脫한전 전력직접구매, 요금혁신 VS 시장편식 논란, 전자신문, 2025. 0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