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는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시선과 기대 속에 살아간다. 부모의 따뜻한 눈빛, 상사의 믿음 어린 말 한마디, 친구의 조용한 격려는 순간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서서히 바꿔 놓는다. 반면, 반복되는 실망의 표정과 지적, “넌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라는 말은 내 안에 그런 사람이라는 낙인을 새기고, 결국 그에 맞는 정체성과 행동을 따라가게 만든다. 이처럼 타인의 기대가 실제 행동과 성과에 영향을 주어, 결국 그 기대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 이 개념은 1968년, 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과 레노어 제이콥슨(Lenore Jacobson)의 실험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Pygmalion in the Classroom’으로 불리는 이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아동들의 지능 검사 후 초등학교 교사에게 일부 학생들의 리스트를 주며, “이 아이들은 앞으로 학업 성취도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지능검사 결과와는 전혀 무관하게 무작위로 선정된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몇 달 뒤, 정말로 그 학생들의 성적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향상되었다. 교사의 기대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켰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자아개념과 동기, 실제 행동이 변해간 결과였다. ‘우수한 학생’이라는 믿음은 교사의 말투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실수에 대해 더 관대하게 반응하게 했으며, 더 많은 기회를 주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작은 차이들이 학생들에게 ‘나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을 심어주었고, 그것이 행동과 성과의 변화로 나타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기대가 아이들의 가능성을 바꾸는 심리적 조각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 조각상도 살아 움직이게 한 ‘기대’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되었다. 피그말리온은 여인들이 너무나 많은 결점을 지닌 존재라 생각해 독신을 결심한 조각가였다.
    그래서 그는 이상적인 여인을 스스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아름다운 상아를 깎아 완벽한 여인상을 조각했다. 그는 조각상에 옷을 입히고 보석을 채우며,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사랑을 쏟았다. 그리고 신전에서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비너스 여신은 그의 기도에 응답했고, 조각상은 실제 여인이 되어 눈을 떴다. 피그말리온은 그녀에게 ‘갈라테아(Galatea)’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사랑을 이루게 됐다. 이 신화는 단순한 낭만적 이야기가 아니다. 간절한 기대가 생명을 흔들고, 가능성을 일으키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깊은 은유다. 고대의 신화는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기대가 얼마나 강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 보이지 않는 믿음의 굴레
    그러나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긍정적인 기대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부정적 심리 기제를 상대에게 투사하며 상대를 제한할 수도 있다.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에 의해 제시된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는 한 개인이 자신의 감정, 두려움, 결핍 같은 내면의 요소를 타인에게 무의식적으로 투사하고, 그 투사된 이미지에 상대가 실제로 영향을 받아 행동하거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말한다. 즉,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내면의 불안이나 결핍을 마치 상대가 가진 것처럼 던져놓고, 그 상대가 점점 그렇게 반응하게끔 만든다. 이것은 말 그대로 ‘상대 안에 나의 부정적 믿음을 심는 것’이며, 상대는 그 심어진 이미지에 따라 자신을 형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넌 참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야”라고 말한다면, 어렸을 적부터 이런 말을 들어온 아이는 실제로 자신이 예민하고 까다롭다고 생각하게 되고,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자녀가 예민한 기질이 아니라 부모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자녀는 부모의 불안 심리를 투사받아 왜곡되게 자아를 형성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상대를 향한 말과 기대가 ‘긍정적 자원’이 아닌 ‘부정적 제한’의 도구로 작동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주변의 갈라테아들을 깨어나게 만들 수 없다.
  •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피그말리온이다
    가장 강력한 피그말리온은 사실 바깥에 있지 않다. 내가 나에게 어떤 기대를 품느냐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나는 언제나 부족해”라고 믿는 사람은 자기 가능성을 스스로 지우고, “나는 아직 가능성이 있어”라고 여기는 사람은 기회를 알아보고 도전할 힘을 가진다. 기대는 타인이 던져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선택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상아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었듯,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을 조각하며 살아간다. 중요한 건, 그 조각이 누군가의 그림자 아래에서 빚어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선택한 믿음으로 다듬어진 것인지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피그말리온이다. 격려의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일으켜 세운 적도 있고, 실망의 눈빛으로 마음을 닫게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품는 기대는 언제나 관계 속에서 조용히 작동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은 곧 내일의 나를 조각할 도구가 된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품고 있는 기대는 그 사람의 가능성을 조용히 빚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어떻게 조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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