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의 계절감을 더한
시원한 예술 처방전
무더운 여름,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7월의 열기는 걸음을 무겁게 하고 생각마저 흐려지게 만든다. 시원한 공기와 함께 여름의 나른함을 날려줄 처방전이 필요하다. 다채로운 색채가 무더위를 식혀줄 특별한 전시를 소개한다.
Text 최설화 Photo 황지현
미술사 속을 걷는 산책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가 한국에 도착했다. 경주, 부산, 제주를 거쳐 서울에서 그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바로크 미술의 역동적인 형태부터 팝 아트의 대담한 색채까지,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는 서양 미술의 400년을 단숨에 건너는 여정이 담긴 전시다.
시대별 공간마다 조명과 색과 강도가 다르다. 그림 앞에는 당시 작가들의 삶을 요약한 설명도 놓여있다. 전시는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미술 그리고 오늘날까지 남아공의 예술 현장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전시된 작품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설립자인 필립스 부부의 초상화이다. <리오넬 필립스>의 초상화를 그린 지오반디 볼디니는 역동적인 인체를 빠른 붓질로 유려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토니오 만치니의 <필립스 부인> 초상화는 거침없는 붓 터치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의 시작점인 필립스 부부를 통해 전시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작품은 보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거니는 것
모네의 초기작인 <봄>은 전시장 한가운데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연의 인상을 담는 데 집중했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담기보다는 보는 순간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한다.
전시 중 유일하게 입체적 감상을 할 수 있는 오귀스트 로댕의 <이브>도 시선을 끈다. 무릎을 반쯤 굽힌 채 양팔로 상체를 감쌌다. 특히 조각 뒤 파란색 배경과 함께 빛에 따라 생긴 그림자가 고요함을 느끼게 한다.
자연을 담은 따뜻함과는 다른 결로 20세기로 넘어오면 대중문화와 고전 미술의 충돌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앤디 워홀의 <요셉 보이스>는 실크 스크린 기법을 사용해 반복적으로 찍어내면서 이미지가 대량 생산되고 있는 현대의 불안을 담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은 남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주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윌리엄 켄트리지의 <물에 잠긴 소호>는 거친 목탄과 간결한 파란색 파스텔로 그려졌다. 한 남성의 가슴에서 새어 나온 파란 물줄기는 바닥으로 흘러 그를 어디론가 잠식시키고 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는 단지 고전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는 유럽 미술을 다루면서도, 출발점이 아프리카라는 점에서 특별한 무게를 더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서울까지. 공간을 넘어 시간을 여행하는 기분을 준다. 여름날의 미술 산책으로 예술의 국경을 넘어보자.


- 장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 기간 5월 16일~8월 31일
- 관람 10:00~19:00(입장 마감 18:00)
- 이용료 성인 20,000원
- 문의 02-399-1000
대담하고 넘치는 에너지, 화려한 색의 향연
《캐서린 번하드 展》
익숙한 것들의 낯선 변신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물기
어릴 때 본 만화, 매일 마시는 커피, 오늘 신은 양말, 무심코 쳐다본 쓰레기통. 머릿속 어딘가에 뒤섞여 있는 익숙한 물건들이 벽에 걸려있다. 대담한 붓질과 강렬한 색채. 낙서 같아 보이는 것들이 자유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며 유머를 더한다. 《캐서린 번하드 展》의 이야기다. 미국 화가인 캐서린 번하드는 무의식 저장소에서 꺼내 온 사물에 독창적인 감각을 불어넣는 작가다. 특히 심슨, 포켓몬, 핑크 팬더 등 다양한 캐릭터와 일상적 물건들을 거칠게 담아낸다. 빈틈없이 그려진 캔버스는 작품을 보는 내내 시선을 압도한다.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게 한다.
전시 초입에는 작가의 초기 대표작인 <슈퍼모델> 시리즈가 걸려있다. 패션 매거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여성들이 형체만 남은 윤곽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번진 화장, 어색한 자세 등 어딘가 불편한 이질감 사이에서 붉은 입술만이 강렬하게 시선을 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캐서린 번하드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여성 이미지, 패션계의 비현실성 등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상업적 아이콘의 재탄생
맥도날드 로고, 나이키 운동화 등 일상에서 소비되는 상징적인 아이템들을 캔버스 위에 등장시킨다. 사회적 의미나 상업적 가치를 평가하진 않고, 브랜드가 가진 색을 이용해 캐서린만의 예술을 재창조할 뿐이다.
가필드, 피카츄, 메타몽 등 흔히 알고 있는 캐릭터의 모습을 실험적인 색감과 형태로 재해석해 자유롭고 도발적인 느낌도 준다. 특히 바트 심슨의 발칙한 조형물은 관람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캐서린 번하드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핑크 팬더> 시리즈의 신작도 최초 공개한다. 격자무늬를 배경으로 핑크 팬더가 샤워하고 있는 모습은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팬더의 몽환적 분위기와 색감의 혼돈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캐서린 번하드의 작품은 머릿속 생각 조각들이 캔버스 위에서 뱅뱅 떠다니는 것처럼 제멋대로다. 그 배치에는 규칙도, 논리도 없다. 캐서린 번하드의 작품들은 가장 밝고 강렬한 색을 사용해 기발한 조합과 충동을 일으킨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이미지를 정확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딘가 어긋나 있지만, 그것을 봉합해 놓은 듯하다.
특히 전시장 바닥에서 캐서린 번하드의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스프레이 페인트와 물감 등을 총동원해서 빠르게 그린다. 그래서인지 작품뿐 아니라 바닥에도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다. 놀라울 만큼 리듬감 있어 보인다. 정확하지 않아서 더 자유롭고, 그래서 더 유쾌하다.



Munch, 2024, Acrylic and spray paint on canvas, 304.8x243.8cm


-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 기간 6월 6일~9월 28일
- 관람 10:00~19:00(입장 마감 18:00)
- 이용료 성인 22,000원
- 문의 1668-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