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나아가는 것뿐

《요시고 사진전: 끝나지 않은 여행》

끝나지 않은 여행의 기록

사진작가 호세 하비에르 세라노는 ‘요시고(Yosigo)’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2021년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으로 처음 한국 관객을 만난 그가 이번에는 ‘끝나지 않은 여행(Miles to go)’이라는 주제로 다시 우리 곁에 찾아왔다. 그의 활동명 ‘Yo sigo(계속 나아가다)’처럼 그는 멈추지 않고 새로운 장면을 통해 나아가고 있다.
이번 사진전에는 2021년부터 최근까지 작가가 세계 여러 도시와 해변을 여행하며 촬영한 신작 300여 점이 전시된다. ‘휴일’, ‘도시’, ‘골목’, ‘도로’ 등 주제별로 구분돼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해변에서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을 담은 대형 작품이다. 요시고는 한 사람의 얼굴보다는 전체적인 풍경에 시선을 두고, 인물을 클로즈업할 때도 주변 사물과의 조화를 세심하게 담아냈다.
빛과 색, 구도의 미묘한 변화도 그의 사진에 특별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빛의 각도와 밝기에 따라 같은 장면도 전혀 다른 표정을 띠며, 높은 시점에서 내려다보는 순간과 물에 비친 인물을 포착한 장면들은 때로는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중앙 포토존을 지나면, 어두운 조명 아래 라이트 박스에 설치된 사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명 덕분에 마치 깊은 물 속에서 사진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 순간만큼은 사진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풍경 안으로 들어간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방인의 눈에 담긴, 낯선 도시의 풍경

‘휴일’의 빛나는 장면과 달리 ‘창문 속 풍경’에서는 일상의 풍경이 조금 더 조용하고 사색적으로 다가온다. 도쿄의 도시를 창문 너머로 바라본 사진에는 사람들의 사소한 습관과 표정이 담겨 있다. 이를테면 지하철 손잡이를 쥔손의 모습은 평소에 어떻게 손잡이를 잡고 있는지 문득 생각하게 만든다.
‘골목’에서는 서울의 흔한 풍경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온다. 떡볶이와 순대, 수저와 국자 같은 익숙한 물건들이 사진 안에서는 색다른 빛을 띠며 우리의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요시고의 사진은 관람객에게 함께 여행하는 듯한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미국, 헝가리, 일본, 두바이 등 서로 다른 풍경 속에서 삶의 온기와 작은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가 말하듯,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리 남아 있다. 달성해야 할 목표,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남아있는 여정. 요시고는 그 길 위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에 머물며, 또 다른 풍경을 향해 묵묵히 걸어간다.

  • 장소 그라운드시소 센트럴
  • 기간 6월 6일~12월 7일
  • 관람 10:00~19:00(입장 마감 18:00)
  • 이용료 1인 20,000원
  • 문의 1522-1796

역사의 발자취 위에, 미술이 있다

《뉴욕의 거장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
<어반 캔버스 | 뉴욕, 추상으로 물들다>, 미디어 영상, 2024
바넷 뉴먼, <무제>, 1995, 18x7 inch
잭슨 폴록, <수평적 구조>, 1949

예술가의 도시가 된 뉴욕

《뉴욕의 거장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 전시는 단순히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둔 자리가 아니다. 작품 사이를 거닐다 보면 문득 ‘예술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을 파고든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시대를 이끌던 하나의 정신이자 숨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거친 붓질과 색의 울림, 화면을 가득 채운 공간마다 그 시대의 불안과 희망, 인간 존재에 관한 물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잭슨 폴록의 <수평적 구도> 앞에 서면, 거대한 작품이 품고 있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혼돈의 질서에 압도당한다. 붓 대신 물감을 쏟아붓고 흩뿌린 그의 몸짓은 하나의 저항이자 울분이며, 전쟁이 남긴 상처를 온몸으로 표현한 기록처럼 다가온다.
리 크래즈너의 <무제>는 그에 비해 차분하지만, 켜켜이 쌓인 문자와 형상 속에서 정체성과 언어에 대한 사유가 조용히 피어난다. 작품을 가로지르는 격자와 기호에는 작가로서의 고뇌와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촘촘히 배어 있다. 마크 로스코의 <십자가>는 전시장 가장 깊은 곳에서 관람객을 기다린다. 거대한 색들이 서로 마주 보듯 서 있다. 그 앞에 서면 누구나 마음속에 숨겨둔 믿음과 상처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마크 로스코, <십자가>, 1941-42, 27x23 inch

시대를 살아간 고민과 흔적

미리엄 샤피로, <팡파르>, 1958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참혹함, 급격하게 변해가는 사회, 인간의 존엄과 자유에 대한 메시지가 이들의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전통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고, 오롯이 개인의 자유와 존재를 드러내려 했다. 솔 르윗의 <붓놀림(무제)>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서 받은 영감을 현대적 추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고전이 지닌 균형과 질서를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선의 움직임에 담아, 낯설고도 새로운 화면으로 되살려 낸다.
전시는 후반부로 갈수록, 20세기 후반을 관통하는 미니멀리즘으로 진화한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본질만 남기는 이 경향은 감정을 가능한 비워내고 순수한 형태의 구조에 집중한다.
리처드 세라는 <동양(오리엔트) #9>을 통해 거대한 검은 사각이 주는 압도적인 무게와 미니멀리즘 특유의 고요하고 강렬한 존재감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단순함 속에서 오히려 생각이 깊어지고, 존재의 본질에 한층 가까워진다.
레베카 호른의 <예언자(들)의 장미(빛)>는 단순한 시각적 재현을 넘어 퍼포먼스를 수행하던 신과 시간이 남긴 궤적이 화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감정의 흔적이 마치 잔향처럼 머물며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뉴욕의 거장들》은 시대와 맞서 싸워온 예술가들의 용기와 실험의 흔적이 담겨 있다. 뉴욕이 어떻게 예술의 도시가 되었는지, 그곳에서 예술가들이 어떤 역사를 함께 만들어냈는지를 이 전시는 말없이 증명한다.

  • 장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기간 7월 18일~10월 9일
  • 관람 화~일 10:00~18:00
    / 수, 토 10:00~20:00 *매주 월요일 휴관
  • 이용료 성인 13,000원
  • 문의 1899-5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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