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흑백의 대비가 공간을 가득 채워, 마치 한 장의 흑백 사진 속을 거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화질이 갈수록 좋아지는 요즘, 사진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매체가 됐다.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예술적 울림을 전하는 특별한 표현 방식이다. 그런 사진의 다양한 가치를 직접 마주하고, 깊이 있는 역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다.
Text 강지형 Photo 황지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지난 5월 29일, 북한산 아래에 검고 네모난 건물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10여 년의 긴 기다림과 준비 끝에 문을 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다. 외형은 단순히 네모에
머물지 않는다. 앞에서 바라보면 정육면체가 살짝 비틀어져 직사각형 모듈이 계단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마치 카메라의 셔터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열리고 닫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 독창적인 디자인은 2019년 공모를 통해 선정됐으며, 오스트리아 건축가 믈라덴 야드리치(Mladen Jadric)와 한국 건축가 윤근주가 함께 완성했다. 건물의 외벽은
시간이 흐를수록 검은빛에서 회색으로, 그리고 다시 어스름한 어둠으로 스며들 듯 변해간다. 빛과 시간을 붙잡는 사진의 본질을 건축으로 풀어낸 것이다.
실내로 들어서면, 마치 한 장의 필름 위에 발을 디딘 듯한 기분이 든다.
1층에는 카메라 프레임과 조리개의 형태를 모티브로 한 공간이 펼쳐지고, 포토북 카페에는 빨강, 초록, 파랑의 RGB 색이 공간을 채운다. 건물의 외관과 어우러져, 방문객을
사진의 깊고 입체적인 세계로 이끈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국내에서 유일한 사진 전문 공립미술관으로, 소장 작품과 귀중한 자료를 2만여 점이나 품고 있다. 4층에는 사진 전문도서관인 포토라이브러리와 2개의
교육실, 그리고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암실이 자리해 누구나 사진의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포토라이브러리에는 국내 작가들의 사진집부터 사진사 연구 서적, 학술 전문지가 가득 꽂혀 있다. 마음 가는 대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빛으로 순간을 기록해 온 깊고도 넓은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곳에서는 소장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도서 연계 프로그램도 열려, 책과 사진이 만나 새로운 영감을 피워낸다.
2·3층 전시실에서는 사진의 역사와 이야기가 차분히 이어지고, 공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관람객이 사진을 입체적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1·2교육실에서는 사진 강좌와 실습 프로그램이 열려 누구나 사진의 기초부터 심화까지 체험할 수 있다. 특히 2교육실은 소규모 워크숍과 전문 실습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암실은
전문 장비와 설비가 마련돼 있어, 사진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나만의 암실’을 직접 경험하며, 빛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순간을 만날 수 있다.
현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는 ‘광(光)적인 시선’을 주제로 개관특별전이 한창이다. 《스토리지 스토리》와 《광채 光彩: 시작의 순간들》 두 전시로
구성됐다. 《스토리지 스토리》는 6명의 사진작가가 사진미술관의 태동하는 과정을 각자의 시선으로 기록한 전시로, 공간이 탄생하는 시간과 의미를 다채롭게
되새길 수 있다.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은 소장품 전시로, 한국에서 사진이 예술로 싹트던 시절의 작품들을 통해 빛으로 순간을 포착해 온 여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흑백의 단순함 속에 오히려 더 풍부한 이야기가 번져 나오듯, 이곳에서는 빛과 어둠이 쌓아 올린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관람객의 마음에 고요하게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