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족사진
외교부 장관상장
큰아이 완치 이후 한국 복귀 전 케이프타운 테이블마운틴을 배경으로
  • 발령받고 처음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공항에 도착했을 때 긴장감을 잊을 수 없다. 몇 해 전 한국 출장팀이 도착하자마자 권총 강도를 당했다는 일화를 들은 터라 공항 직원들의 호된 짐 검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긴장이 풀리는가 싶었는데 신호 대기마다 차창으로 달려드는 구걸하는 사람들 때문에 임시숙소 도착 첫날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 마음이 착잡했다.
    가족들에게 호언장담했던 새로운 세상과는 괴리가 컸다. ‘동물의 왕국’처럼 몇 발짝만 나가면 야생동물들을 흔히 만나게 되는 ‘리얼 야생’이 아닌 것은 다행이나, 집마다 전기 펜스 담장을 둘러치고 길거리를 마음대로 걸어 다니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했다.
    우리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순환정전’이었다. 부정부패로 석탄발전소 정비를 제때 못해 발전소 가동이 멈추는 일이 잦아지면서 전국별로 구역을 나눠 돌아가면서 매일 8시간 정도 순환정전이 몇 년간 지속됐다. 음식은 상하고, 생필품은 동나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안 되고, 초를 켜고 우두커니 저녁 시간을 보내다가 잠드는 일상이 계속됐다.
    코로나19 시기엔 군과 경찰을 동원해 통행금지를 하는 바람에 전 국민이 몇 개월간 재택근무를 했었다. 병원이 포화상태라 다치면 안 된다면서 술·담배 판매가 금지됐다. 이 와중에 전직 대통령 구금에 반대하는 군중들의 대규모 폭동으로 상점과 공장들이 불탔다.

  •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안 되는 놀라운 일들이 일상이 되니 모두가 지쳐갔다. 이 무렵 힘내보자며 독지가 한 분이 코로나19를 주제로 교민 온라인 백일장 대회를 개최했다. 수상작을 모아 책을 발간하신단다. 뭔가 인상적인 사건을 적어보고 싶었는데, 가족들과 24시간을 붙어 있어야 하는 코로나19 일상 외에 특별한 것이 없었다. 아니다. 내 인생 최대 사건, 가족 이야기를 적자.
    한국에서 주말부부로 주말에만 잠깐 만나는 생활이 몇 년간 이어지다 보니, 아이들이 커가면서 같이 있는 걸 어색해했다. 모여 살자고 남아공으로 왔는데, 여기서도 주말부부처럼 살고 있으니, 신께서 정신 차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명령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족과 보내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소회를 적은 ‘가족과 같이 지내야 하는 시간 총량의 법칙’ 이라는 글이 국내에 출시된 책에 실렸다.
    그 후로 이 소중한 순간을 가족들과 최대한 밀도 있게 보내자며 주말마다 케이프타운 와이너리 투어, 사파리 여행, 드라캔스버그, 골든게이트, 파노라마 루트 등 대자연을 말 그대로 샅샅이 훑고 다녔다. 지역 행사나 벼룩시장에서 즐기는 아프리카 특유의 바이브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가족들과 같이 느껴보는 여유와 낭만도 좋았다.
    그리고 그 다음 해, 큰아이가 병으로 위중한 상태에 빠졌을 때 코로나19로 한국에 들어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남아공에서 여러 차례 큰 수술 후에 무사히 살려내고 나니 인생의 최우선 순위가 가족으로 더욱더 공고해졌다.큰아이를 살리려고 주재공관 관계자들께서 한마음으로 도와주셨던 고마운 마음에 보답해야겠다고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차에 외교부 공모전 개최 소식을 접했다. 해외에서 영사조력을 받았던 사건·사고 경험담이라는 주제에 이보다 더 부합하는 이야기가 있으랴 생각했었지만, 대상까지 받을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마이클 잭슨이 가족과 사랑에 대해 성찰 같은 말을 남겼다.
    ‘사랑받고 있음을 알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사랑받고 있음을 알면서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참고 견딜 수 있다.’
    학원 빨리 안 가냐고 아이들에게 잡도리 중인 아내의 잔소리마저 소중한 저녁이다.

  • 큰아이 완치 이후 한국 복귀 전 케이프타운 해변에서
    외교부 공모전 시상식_외교부제공
    남아공 교민 백일장 대회 수상작
    모음집_희망봉에서 그대에게
  • *이권철 차장은 7월 7일 외교부와 경찰청, 소방청이 공동 개최한 ‘제5회 해외에서 겪은 사건사고 경험담 공모전’에서 ‘희망봉, 그곳에 대한민국이 있었다’라는 수기로 대상을 수상해 외교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 스토리는 『월간kepco』 2023년 4월호 ‘할말 있습니다’ 코너에도 게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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